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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는 것은 없다>

육아휴직 330일차

by 허공

지금은 2021년이 끝나기 전 10분, 2022년이 시작하기 10분 전이다. 내가 시간을 딱 정하는 순간 이미 시간은 가고 있다. 똑딱, 똑딱, 똑딱 이미 3초가 지나갔다.

그렇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치열하게 살았던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한 해가 온다. 오고 감이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 우리가 그리고 사람이 정할 뿐. 시간은 항상 흘러가며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흘러간다.


네이버 블로그를 보니 사람들이 올해 한 해에 대해 생각하고 복기하며, 내년을 계획하는 글을 많이 쓴다. 아이들을 재우고 맥주 한잔 마시며 글을 써내려 간다.

거창하게 투자에 대해 쓰고 이런 깜냥도 안 되고 그냥 올해 내 삶에 대해 써보겠다.


올해는 참 중요한 한 해였던 것 같다.

2008년 다니던 직장에 입사하여 쉴 새 없이 달려왔던 12년의 직장생활을 잠시 멈췄다. 쉴 새 없이 굴러가던 인생이라는 톱니바퀴가 잠시 멈춘 것이다.

육아휴직을 썼다. 정확히는 2021년 2월 15일부터였지만 실제로는 2월 3일부터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출근하지 않은 날이 내 생일이었다. 정확히 기억한다. 아내와 함께 맛있는 점심을 먹고 혼자서 호수공원을 걸어오던 그 길, 육아휴직을 축하하듯이 하늘은 구름 하나 없이 맑았고 공기는 폐 속 끝에서 온 몸을 돌아 다시 하늘로 날아가듯 했다.


십 몇 년 동안 돌아가던 톱니가 다시 멈췄으니 어땠을까? 뭔가 어색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휴직이 낯설었다. 아이들과 등하원을 하는 것도, 놀이터에서 다른 엄마들과 대화하는 것도, 미술학원에 다른 엄마들과 함께 가서 커피숍에서 대화를 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을 하는 듯했다.


그냥 그렇게 보냈을 수도 있었지만 하나의 큰 변화가 있었다. 바로 글쓰기 강의를 듣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과 도서관에 가서 우연히 보게 된 책, 그 책의 저자인 이은대 작가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강의를 들으면서 용감하게 바로 책을 쓰기 시작했다. 글의 주제, 목차를 생각하고 각 목차에 맞는 글을 썼다. 주제는 바로 육아휴직, 지금 현재 경험하고 있고 고민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 쓰니 쉬울 줄 알았다. 쉽기는커녕 글쓰기는 쉽지 않았다. 단순히 글 한편을 쓰는 게 아니었다. 책 한권을 내기 위한 글이었다.

바늘에 실을 꿰어 한 땀 한 땀 옷을 만들 듯이, 40여개의 단락에 맞게 하나 하나 글을 써갔다. 글을 쓰는 것도 힘들었지만 퇴고는 2배로 힘들었다. 그리고 작가님의 조언과 지도에 힘입어 출간 계약을 했다.

드디어 나도 작가가 되는구나 하고 뛸 듯이 기뻐했다. 아직 책이 나오지 않았다. 7월에 계약을 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직 출판사 사정으로 제대로 퇴고도 하지 않았다.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언젠가 나올 책이면 연락이 올 것이고 나올 것이다. 그건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또 하나의 변화, 바로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이다. 출간 계약을 하면서 가지고 있던 원고 내용으로 작가 신청을 하니 감사하게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아직 책이 나오지 않은 사람의 글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렇게 하루 하루 내 삶을 기록하고 육아에 대해 적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요새는 꼭 일상이 아니더라도 서평을 쓰더라도 매일 쓰는 것에 대해 의의를 두고 쓰고 있다. 매일 쓰는 게 바로 작가라는 말을 기억하며.

개인적으로 슬픈 일도 있었고, 기쁜 일도 있었다. 나에 대해, 그리고 가족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었던 한 해였다. 삶이 아무 의미가 없이 느껴졌을 때도 있었고, 삶이 곧 선물임을 느꼈을 때가 있었다. 결국 모든 게 내 탓이고 내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한 결과임을 깨닫기도 했다.


원래 계획은 내년에, 아니 이제 올 상반기에 복직을 하려고 했으나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고 복직을 하기로 했다. 복직을 하면 한 달 살기는 꿈도 꿀 수 없다. 가족과 함께 길게 여행을 하면서 많이 먹고, 보고, 느끼고 싶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무언가는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하면서 무언가를 포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


남들이, 부모가, 그리고 사회에서 시키는 대로, 정해진 대로 사는 것이 답이 아니다. 때로는 전혀 대책 없이 보이는 행동일 지라도, 미친 것처럼 보일 지라도 나중에 보면 그게 최선의 선택일 수가 있다.


우리는 로봇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의지가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은 과거의 결과요, 미래는 지금 현재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다. 시간은 물처럼 계속 흐른다. 멈출 수 없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나에게 달려있다. 부모도, 친구도,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일초 일초가 소중하다. 일분 일분이 소중하다. 소중한 시간을 소중한 일에,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자.

한 해가 바뀌었어도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이만 한 살 더 먹었을 뿐.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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