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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육아휴직 362일차

by 허공

우리는 늘 ‘누군가’로 규정된 채 살고 있다. 이를테면 가족관계에서는 아버지나 아들딸로, 사회적으로는 국민 혹은 시민으로, 회사에서는 직책으로, 그것도 아니라면 누군가의 친구나 동료로 살아간다. 관계는 우리를 수십, 수백 가지의 속성의 틀로 재단하고 있으며 이것을 피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들도 어쩌면 이런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피라미드의 좀 더 상위에 서고자 하는 욕망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래서 혹여 우리가 피나는 노력으로 스스로의 성취에 도달했다 해도, 그때부터 우리를 덮치는 것은 고독이다.


인간은 관계에 사로잡혀 질주하며 그 관계 속에서 상대적 서열을 규정하면서 스스로 자위한다. 그러나 그것이 학업이건 돈이건 권력이건, 모든 행위는 서열 짓기에 불과하다. 내 서열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나를 규정하는 관계어는 점점 늘어난다. 그리고 그 복잡한 층위의 관계 속에서 점점 나를 잃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궁극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늘 물어야 한다. 속성 속에서의 성취는 지극히 찰나적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로또에 당첨돼 한 10년쯤 행복하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행복에 몸부림치는 기간은 길어야 3개월이다. 그 후 부터는 새로운 고민을 안고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새로운 자동차를 사건,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하건 성취의 행복은 그것을 의식하는 잠깐의 순간뿐이다. 결국 우리가 획득한 것들은 찰나적으로 불쑥불쑥 떠오르는 자기만족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오히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우리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열심히 뛰고 있지만,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을 덮치는 고독과 소외와 갈등 역시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내야 한다. 만약 그것이 힘들다면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일어나면 된다. 누군가 말했듯, 넘어짐은 단지 일어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한 것일 뿐이다.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 혁명(68~78)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저의 이름은 00입니다.

저는 누구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며,

누구누구의 아들이자 딸이며,

누구의 남편이자 아내이며,

어느 회사에 다니거나 회사를 운영하고 있거나

어디에 살고

취미는 무엇인 사람입니다

라고 일반적으로 대답할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나는 무수히 많은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속에서 살고 있기에 관계 속에서만 나를 규정한다.

그 안에서 살고 있기에 남들보다 잘 살려고, 부자가 되려고, 자식들을 잘 키우고자 한다. 거기에는 ‘남들보다’라는 단서가 붙는다. 그렇게 남과 비교하며 조금이라도 위로 올라가고자 고군분투를 하면서 살아가지만 그 길은 끝이 없다. 나보다 나은 사람은 항상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남들보다’를 빼면 어떻게 될까?

누구와도 비교를 하지 않고 바로 어제의 ‘나’와 비교를 한다면 어떨까?

관계 속의 나이지만 관계 밖에서의 나를 진짜로 자각할 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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