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235일차
추석 연휴 때 어머니 집에서 예전 일기장과 편지들을 봤었다. 그 중에 몇 년 전 갑작스럽게 하늘나라에 갔던 친구의 편지를 보았다. 2009년도에 친구가 썼던 편지인데 마치 지금 친구가 옆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당시 친구는 내가 취업을 해서 축하 편지를 보내줬었다.
to 00
2009년 새해가 밝았구나. 뭐 내 경우엔
조금 걱정스런 맘으로 시작하는 새해지만
너로썬 참 희망찬 2009년이 아닐까 생각한다
00 00! 부럽고, 또 자랑스러워.
그동안 고생 많았어 정말..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기에 그런 니가
더 대단해 보이는 것 같다.
시간이란 게 워낙 훌쩍 흘러가는 거니깐
그동안 햇수를 세어본 적이 없었는데 문득 생각해보니
너와 내가 만난 지 벌써 10년이 넘었더라.
그동안 늘 곁에서 내 친구로 남아준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인데,
알게 모르게 내가 신세를 또 많이 져 왔잖냐.
평소엔 못 하던 말, 연말연시를 빌어 꼭 하고 싶었다. 고마웠네 친구 ~
새해 복 많이 받고 너의 건강과 행복을 늘 기원할게.
이젠 직장도 구했으니 꼭 좋은 애인 만들었으면 한다. GOOD LUCK~!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편지 내용을 보니 지금도 약간 눈시울이 붉어지려고 한다. 지금의 직장을 구하기 위해 친구들과 거의 만나지 못했었다. 노량진에서 공부, 공부만 했었다. 그게 특별히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근데 한 놈은 그게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늘 곁에서 내 친구로 남아준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했었다. 친구란 그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사이다. 내가 그 친구에게 감사할 정도였을까. 친구는 나에게 알게 모르게 신세를 져 왔다고 했다. 00야, 뭔 신세를 졌다는 거냐? 기억이 나지 않아.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오늘은 잠시 꿈에 나타나서 뭔 신세를 졌는지 한 번 얘기해주라. 그리고 네가 나한테 신세질 일이 뭐가 있었겠냐?
직장도 구했으니 꼭 좋은 애인 만들라고? 너는 어떠냐 친구야? 나는 네가 다른 세상으로 떠난 뒤에 애 둘 낳고 잘 살고 있어. 물론 애들이 말을 안 들어서 속상할 때도 많아. 누굴 닮았냐고 하면 부부가 서로 나는 안 그랬어 하고 있단다. 너는 그 세상에서 잘 살고 있니? 너희 부모님과 동생도 잘 살고 계셔, 당연히 알고 있지? 내가 생각하는 좋은 곳에서 살고 있니? 아니면 벌써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서 친구들을 만날 인연을 기다리고 있나? 궁금하다.
항상 마지막에는 굿 럭이라며 행운을 빌어주던 너였지, 이젠 내가 너에게 행운을 빌어줄게, 다시 좋은 모습으로 꼭 다시 만나자. 그때까지 나도 이 세상에서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고 있을게. 이 세상에서 만약 못 만나면 다음 세상에서 만나면 되고.
인생은 유한하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우리의 능력으로는 알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주위의 사람들을 따뜻한 눈으로, 말로, 행동으로 대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다면 앞으로 그러면 된다. 이미 지나간 건 바꿀 수 없으니.
친구야. 꼭 다시 만나자. 이제 애들이 깨어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