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246일차
우리는 살면서 비교를 끊임없이 한다. 높이는 전 세계의 세계 부자에서부터 가까이에는 형제자매, 친한 친구들과도 비교를 한다.
이제는 나만 하는 게 아니라 내 자식도 나와 동일시하여 주변 친구들과 비교를 한다. 아이들은 그 자체만으로 빛나야 하는데도 말이다.
형은 어렸을 적부터 나와 달랐다. 아이큐는 150이었고, 공부를 잘해서 항상 앞에 나가 상장을 받고는 했다. 지금은 법조인이 되었다.
“야, 너희 형은 저렇게 매일 상 받는데 너는 뭐 하냐”
“나? 나는 이렇게 박수 쳐주고 있지”
정확히 언제 누가 나에게 물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근데 친구 중 한 명이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형에 대한 자격지심은 특별히 없었다. 형은 형이고, 나는 나라고 생각을 했었다. 부모님은 공부 잘하는 형에 대해 칭찬은 했지만, 특별히 형과 나를 비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렸을 적 공부 잘하는 형에게 공부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형이 수업을 들을 때 칠판을 뚫을 듯이 보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다음 한동안 교실에서 선생님이 수업을 할 때 칠판을 노려봤던 기억이 난다.
형과 비교하지는 않았지만 형만큼 팍팍 돌아가지 않은 내 머리를 탓한 적은 있다. 왜 같은 피를 타고 났는데 내 머리는 요 모양일까?
내 아이들은 6살, 5살 공주님들이다. 부모는 아이들을 비교하면 안 된다고 말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는 아닌 것 같다.
어제 우연히 부동산스터디라는 카페에서 ‘시크릿브라더’라는 사람이 올린 글을 보았다. 제목은 ‘자식 자랑하지 않기로 했다’였다. 자기 친구와 자기 자식들에 대해 얘기하다가 영어 유치원을 보내고, 뭐 처음에는 아니었지만 비교하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그 생각을 하고 남의 아이가 영어유치원을 가던지 말던, 3살에 한글을 읽던 말든 무슨 상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시크릿브라더는 이렇게 말했다.
제 자신을 남과 비교하며 비참해지는 것보다,
제 자식을 남과 비교하며 비참해지는 것이
훨씬 더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제 딸과 아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주며
어떤 것이 되거나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자식에게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 부모
혹시 실패하거나 좌절하더라도
늘 같은 자리에서 묵묵하게 응원해줄 수 있는 부모
자식 자랑을 통해 느끼는 행복감보다 본인 삶의 만족감으로부터 오는 행복감이 더 우선시 되셨으며 좋겠다. 자식들을 오롯이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해주고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
위의 글을 읽고 뭔가 띵 하고 머리가 울렸다. 내 아이들의 주변에도 영어유치원을 가고, 한글을 읽고 쓰는 아이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것과 내 아이들하고 무슨 상관일까? 나름대로 집에서 영어 영상도 노출시키고, 영어 책을 읽어주고 있다. 아이들은 아는 단어가 하나씩 생기고 있고, 영어 발음도 내 귀에는 꽤 구수하다. 한글은 하나씩 하나씩 때면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때면 된다.
아이 친구와 비교, 아이 친구 부모들과도 비교, 어느 새 나 역시 비교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끊임없이 비교를 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그림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고, 노래 부르기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 중에 자기 재능을 발견해서 그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
이런 말이 있다. 너나 잘하세요!
아이들에게 잘하라고 하지 말고 나부터 잘해야겠다. 비교는 어제의 나와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