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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Dec 12. 2023

2022년 12월 일기모음 1

12월 3일 토요일


12월 한 달 동안 실험적으로 해보겠다고 큰소리 떵떵 쳤던 짠테크와 무지출챌린지는 사흘 만에 막을 내렸다. 일단 휴대폰요금, 전기세, 관리비, 보험료 등의 고정지출은 제외하기로 했다. 그럼 쓸게 생필품이랑 식비뿐인데, 생필품은 웬만한 건 다 있어서 한동안 버틸만하고, 식비도 집에 사다 놓은 재료들로 연맹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했다.


그렇게 지난 이틀간 돈 안 쓰고 잘 버텼고, 사흘째 되는 날인 오늘 푸라닭 파불로치킨을 시켜 먹으며 12월의 무지출챌린지는 끝이 났다. 역시 뭐든 작심삼일이지. 거금 20,900원을 들였다. 하지만 즐거운 소비였다. 간만에 먹는 치킨이 엄청 맛있었기 때문이다. 치킨은 한번 배달시키면 최소 이틀은 먹는다. 냉장보관을 해놓고 최대 삼일까지도 먹을 수 있지만, 맛이 떨어져서 이틀이 지나면 대게 남아도 버리게 된다.


친구가 도서관에서 빌려서 준 인테리어 관련도서를 읽고 책에 나온 인테리어공식을 내 방에 적용해 봤다. 간단한 공식만 지켰을 뿐인데 결과가 좋다. 내 집이 아니더라도 손재주가 없어도 돈을 들이지 않아도 누구든 공식만 알면 집을 예쁘게 꾸밀 수 있다는 게 그 책이 강조하는 부분인데, 진짜 그런 것 같네. 설득이 된다.


작은 원룸이긴 해도, 벽에 뭔가를 장식하고 싶다. 큰 그림을 붙이고 싶다. 혹은 액자를 이용해서 세워두고 싶다. 지난 달에 그림 모임을 통해서 내가 그린 작은 그림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시중에 판매하는 그림을 알아봤더니 생각보다 너무 비싸다. 다시 직접 그려볼까 싶다가도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사실 그림은 그리라면 어떻게든 그릴 수는 있다. 하지만 쉽게 대충 그린 그림은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몸을 쓰고 시간을 들여서 노동하듯 그려야 하는데 그럴만한 (노력을 할만한) 동기가 잘 생기지 않는다. 확실한 동기라면 역시 '돈' 이겠다.


12월 16일 금요일


퇴근길에 자전거를 타고 영화관에 가서 아바타 2를 보고 왔다. 가족센터에서 지원하는 1인가구 복지 서비스의 일종인데, 연말에 혼자 사는 사람들을 모아서 영화도 보여주고 간식과 소정의 선물도 주는 프로그램이다. 문자가 왔길래 신청해서 참여하게 됐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로 극장이 꽉 찼다. 아바타 1을 안 봐서 이해가 잘 안 가는 내용들이 있었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웅장한 자연광경, 액션씬, 가족서사 등이 볼만했다.


러닝타임이 무려 192분이다. 요즘 영화값이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 길이에 이 정도 퀄리티의 영화라면 영화관 가서 봐도 돈이 안 아깝지. 돈을 몇천 원 더 쓰더라도 다리 뻗고 봐야 할 것 같다. 길이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마지막 황제가 영화관에서 재상영한다면 돈 내고 다시 볼 의향이 있다. 아바타 1은 지금 유튜브 요약본을 틀어놓고 보고 있는 중인데, 이걸 진작 봤으면 더 재밌었을 뻔했다. 역시 2를 제대로 즐기려면 일단 1부터 봐야 할 것 같다.


12월 19일 월요일


토요일에 저녁식사 후 갑자기 배가 아파서 애를 먹었다. 도저히 일어나서 앉아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고, 가만히 누워있으면 그나마 견딜만했다. 자고 일어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했지만 배가 아파서 쉽게 잠들지 못했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고, 새벽에 배가 너무 아파서 깼다가 뒤늦게 생각난 상비약을 꺼내먹고 다시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여전히 배가 아팠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전날밤처럼 심하게 아프진 않았다.


기력이 없어서 도저히 일어나지를 못 하겠어서 계속 누워있다가 낮 2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대략 16시간에서 17시간 정도는 누워있었던 것 같다. 한심하긴 해도 몸이 너무 좋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었고, 역시 잠이 보약인 건지 더 이상 배가 아프지 않았다. 급성위염 정도로 예상되긴 하는데, 오른쪽 윗배에서 느껴진 통증은 위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것 같아서 조금 신경이 쓰인다.


평소에는 '아프면 죽어야지' 라고 자주 생각하는데, 막상 실제로 아프면, 아프기 싫어, 죽고 싶지 않아, 살려줘, 하면서 태세전환하는 꼴이 우습다. 앞으로 먹는 거 신경 쓰고 건강 관리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가끔씩 아플 때마다 혼자라는 게 실감이 난다. 혼자 사는 방 안에서 갑자기 돌연사를 하게 된다면 건물주인에게 그리고 이웃에게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일요일날 전등을 갈았다.


12월 20일 화요일


일요일 아침에 주방 수도가 언 것이 확인되었다. 토요일 밤 사이에 기온이 영하 10도로 떨어진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고, 전날에 수도를 열어서 대비를 했어야 했는데 몸이 아파서 집안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일요일날 기력이 없어서 도저히 해빙작업을 할 엄두가 안 나서 자연해빙을 기대하며 하루정도 방치해 봤으나, 얼음이 녹을 만큼 날이 풀린 것도 아니니 수도가 알아서 녹을 리가 없다.


월요일 저녁에 해빙작업을 시도했다가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30분 만에 포기했다. 꽝꽝 얼었는지 30분 가지고는 택도 없는 모양이다. 이번주 내내 날이 차다. 심지어 금요일날은 또 영하 10도로 기온이 내려간다. 당장에 물을 못 쓰는 불편함도 있지만 동파가 걱정되어서 하루빨리 해결을 봐야 할 것 같다.


여기까지 써놓고 해빙작업을 했다. 시간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30분 정도 소요됐고 결과는 성공적이다.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서 금방 녹은 것 같다. 이제 한시름 놓을 수 있겠다. 사실 이 집에 사는 동안 매년 겨울마다 수도가 얼고, 내가 직접 녹인다. 돈을 들여서 사람을 부르기에는 상황이 애매하다. 가끔 누군가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손 내밀 곳이 없다.


직장동료와 집얘기를 하다가, 수도가 어는 집은 처음 본다 라는 얘기가 직장동료 입에서 나왔다. 사실 나도 수도가 어는 집에서 처음 살아본다. 어릴 때 수도에서 콜라색 녹물이 쏟아져 나오는 집에서 살 때도, 적어도 수도는 안 얼었다.


좋은 집에서 쾌적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빈곤과 불편함에 익숙해져서 생활력이 강해지고, 웬만한 시련에는 쉽게 불행을 느끼지 않는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래도 나는 앞으로 지금보다 더 잘 살 자신이 없는 것 같다. 수도를 녹인 후 곧바로 밀린 설거지를 했고, 저녁식사도 해 먹었다. 어묵을 꼬치에 꽂아서 그냥 맹물에 삶아서 간장에 찍어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12월 21일 수요일


마땅히 하는 일도 없이 주말 내내 잠을 너무 많이 자서 그런가, 일하는 평일에는 오히려 잠이 안 온다. 자려고 누웠는데 잠은 안 오고 갑자기 몇 달 전 추석에 받은 신세계상품권이 생각이 났다. 계속 놔두면 뭐 하나 빨리 쓰자는 생각에, 어제 열한 시경부터 시작해서 무려 새벽 두 시까지, 장장 세 시간 동안이나 이마트몰에서 인터넷쇼핑을 했다.


장바구니에 물건을 넣었다 뺐다 하며 한참을 고르다가, 최종선택을 마치고 결제를 하려던 찰나에, 장바구니에 담아놨던 물건들이 갑자기 줄줄이 품절이 되는 걸 보자 진이 빠졌다. 쇼핑을 관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직접 매장에 가서 물건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다시 마음이 바뀌었다. 내가 갈만한 매장은 아래 세 군데가 있는데, 적어놓고 보니 역시 인터넷쇼핑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물건을 다시 골라 담았다.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것들을 빼고 묵직하게 에어프라이어(3L)를 하나 담았다. 쓱배송은 내일 올 거고, 에어프라이어는 일반택배배송이라 언제 올지 모르겠다. 주말에 해 먹게 이번 주 중에는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전 내내 눈이 왔었다.


트레이더스 : 지류상품권을 사용하고 현금을 거슬러 받기에 가장 편한 곳이며, 생필품 위주의 꼭 필요한 것들만 살 수 있는 곳이지만, 역시 집과 거리가 먼 대형마트까지 굳이 대중교통을 타고 수고스럽게 다녀오고 싶지 않다.


스타벅스 : 삼품권을 쓰고 거스름돈을 받기 위해 최소 6만 원을 써야 하는데, 이 금액을 스타벅스에서 쓰려면 낭비를 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 상품권을 쓰기 위해 스타벅스에서 6만 원어치 결제한 적이 있다. 디저트를 아무리 골라도 금액을 채우기가 어려워서 1-2만 원 상당의 티백차와 인스턴트커피를 '굳이' 샀다.


티백차는 맛은 좋았지만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느껴졌고, 인스턴트커피는 너무 입에 맞지 않아서 결국 버렸다. 카페에서 마시는 음료는 나한테 자릿값의 개념이므로 테이크아웃은 하고 싶지 않고, 텀블러 종류는 욕심이 나지 않았다. 불필요한 것을 굳이 고르는 행위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노브랜드 : 비교적 집과 가까운 매장에 전화를 해보니 지류상품권은 받지 않는다고 한다. 대구에서는 월성점 딱 한 군데에서만 상품권 사용이 가능하다고 하고, 그 외에는 어플을 다운받아서 충전 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상품권을 머니로 전환해서 사용하는 거면 차라리 그냥 인터넷쇼핑이 나을 것 같다. 남는 돈을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12월 22일 목요일


어제는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싶었지만 마땅한 대상이 없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 내가 잘못하거나 책임질 부분은 없는지 혼자서 한참을 생각해 봤다. 어제는 굉장히 날이 서있었는데 하루가 지나고 나니 무뎌진다. 고민이 많은 요즘. 먹고살 길이 막막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당장은 문제가 없다마는. 퇴근 후 감바스를 포장해 와서 먹었다. 맛은 좋았지만 역시 가격이 비싸다. 저녁식사 후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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