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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Dec 12. 2023

2022년 12월 일기모음 2

12월 25일 일요일


토요일날 퇴근하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짤막하게 하고 장례식장에 갔다. 그곳에서 친척어른과 함께 둘이서 소주 3병을 마셨다. 심지어 나는 그전에 식사를 하면서 이미 맥주 1병을 마신 상태였다. 내 주량은 맥주 1캔, 소주 3잔이 고작인데 이날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결국 뒤늦게 취기가 올라왔고, 새벽 내내 구토를 하며 밤을 새웠다. 몸이 너무 괴로워서 속으로 '내 다시는 술 안 마신다' 를 몇 번이고 되뇌었다. 스스로 주량을 잘 알면서도 이렇게 자제력을 잃고 술을 마신 것도 몇 년 만이다. 그것도 무려 장례식장에서, 거의 6년 만에 뵌, 평소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도 않던 친척어른이랑 같이 말이다. 상황이 우습다.


장례식장은 밤에 여러 가지로 소음이 심해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결국 날밤을 새고 새벽 첫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상주가 아니라 계속 있을 필요가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손만 씻고 침대에 누웠다가 곧바로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저녁 6시. 장장 12시간을 잤다. 요즘 휴일마다 계속 이런 패턴인 것 같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잠만 자고 싶다. 특히 이 날은 술병이 나고 밤까지 새워서 더 했다.


휴대폰을 보니 몇 통의 카톡이 와있었고, 때마침 간만에 지인에게서 전화도 걸려왔다. 지인은 내게 뭐 하냐고 물었고 나는 자고 있었다고 했다. 지인은 내게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왜 자냐고 물었고, 나는 아프다고 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는 질문에 술을 마셨네 의욕이 없네 구구절절 얘기하기 싫어서 그냥 몸살 기운이 있다고만 둘러댔다. 알겠다고 몸조리 잘해라고 하고 통화가 끝났다. 전화를 끊고 가만 생각해 보니 오늘이 크리스마스라는 걸 알게 됐다. 지인이 오늘 같은 날 나에게 연락이 오는 것을 보니 여전히 만나는 사람이 없고 외롭구나 싶었다.


계속 더 누워있고 싶었다. 뇌에 문제가 생겼나 싶을 정도로 의욕이 없다. 조금 있으니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어 졌고 그나마 식욕이라도 생겨서 일어날 수 있었다. 수도가 또 얼어서 물이 안 나오는 관계로 조리가 힘든 상황이다. 화장실 물을 가져다가 쓰자니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고 어차피 마땅한 식재료도 없다.


돈은 좀 나가더라도 편하게 시켜 먹자 싶어서 우동과 만두를 배달시켜서 먹었다. 유튜브로 재벌집 막내아들 드라마 요약본을 몇 편 보고는 양치를 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하루종일 그렇게 잤는데도 또 잠이 왔다. 잠시 깨서 일기를 쓴다. 시체처럼 잠만 자는 것도 이날까지 만이다. 각성하자. 보고 싶은 얼굴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12월 26일 월요일


자취 N년차에 전자레인지도 뭣도 없이 대충 막살다가 최근에 드디어 에어프라이어를 하나 장만했고, 오늘 퇴근하고 집에 와서 첫 개시했다. 라쿠진이라는 소형 가전 브랜드에서 나온 3리터짜리를 골랐다. 소문으로는 3리터가 작다는 얘기가 있던데 막상 받아서 써보니까 1인용으로는 부족함이 없다. 일단 첫 메뉴는 냉동치킨과 떡이고 기대 이상으로 결과물이 좋다. 이제 배달음식은 완전히 졸업할 수 있을 것 같다.


내친김에 요리책도 몇 권 샀다. 인터넷으로 찾아봐도 되지만, 잘 정리된 레시피를 종이를 슥슥 넘겨가면서 읽고 싶어서 돈을 썼다. 아니면 굳이 돈을 쓰지 않고 도서관에서 무료로 빌려봐도 되지만, 대부분 중고랑 특가로 구입해서 책값이 많이 비싸지는 않다. 목요일에 배송될 예정이다. 가전도 장만했겠다, 요리책도 샀겠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내년부터는 부디 집밥 위주의 식생활을 해내야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내년에는 제발 식비 좀 줄여야겠다.


12월 27일 화요일


내년 봄에 폰요금제를 알뜰폰요금제로 바꿀 계획이다. 아직 약정이 5개월가량 남아서 위약금 문제도 있고 해서 조금만 더 있어보려고 한다. 위약금을 물더라도 하루라도 빨리 바꾸는 게 오히려 더 이득일 정도로 알뜰폰요금제가 굉장히 저렴하기는 하다마는, 한번 바꾸면 다시는 메이저통신사로 돌아오지 않을 각오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장단점을 따져가며 조금만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이게 뭐 각오까지 할 일인가 싶겠지만, 내가 모르는 어떤 뭔가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정보를 더 찾아볼 생각이다.


위약금이 얼마가 나올지 알아보려고 마이케이티에 접속했다가, 내가 (5년 이상) 장기고객으로서 여러 쿠폰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게 됐다. 개중 밀리의 서재 한 달 무료쿠폰에 가장 눈길이 갔고 당장 밀리어플을 다운받아서 한 달 이용을 시작했다. 일단 첫 책은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시리즈' 다. 한 달 동안 과연 몇 권을 읽을 수 있을까. 욕심이지만 한주에 2권씩, 총 10권은 읽었으면 싶다. 그럼 1월 한 달 동안은 밀리와 함께 하는 것으로.


오늘 근무 중에 갑자기 어지러워서 쓰러질 뻔했다. 약간 술 취한 느낌 같기도 하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얼굴과 머리 쪽이 후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리면서 눈앞이 빙빙 돌았다. 증상은 오래가지 않았고 가만히 앉아있으니 금방 괜찮아졌지만, 그 이후로 오랫동안 속이 더부룩하고 호흡이 불편했다. 뭔 일이래 진짜. 잘은 모르지만 일요일의 과음이 몸 여기저기에 스크래치를 남긴 게 아닌가 싶다.


증상은 점심식사를 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타났는데, 사실 점심때 위장에 자극적인 음식인 신라면 컵라면과 믹스커피 따위를 먹었고, 먹는 동안 속이 살짝 아프다는 느낌을 받긴 했다. 위장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자 받으니까 탈이 난 게 아닌가 싶다. 내장기관이 나쁠 때 어지럽기도 하니까. 앞으로 진짜 과음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밤에 드라이기로 언 수도를 녹였다. 다행히도 많이 언 게 아닌 건지 10분인가 15분 만에 빠르게 해결됐다. 빨래도 조금씩 쌓이기 시작하고, 먹고 제때 설거지 안 한 그릇들도 너무 꼴 보기 싫고, 슬슬 악취도 나기 시작하는 것 같고,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귀찮지만 힘을 냈다. 날씨를 확인해 보니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날은 이제 없다. 설마 수도가 또 얼까 싶지만 만약을 위해 조치를 취해놓고 자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저번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정도로 수도를 열어놨는데도 밤새 언 것을 보니 물방울 가지고는 안되나 보다. 물은 아깝지만 조금 더 열어서 물줄기가 떨어지게 해 두었다. 파이프에 보온재를 씌우면 괜찮을 거라는데 싱크대 뒤 벽면에 붙어있어서 손을 잘 못 보겠다. 수도를 녹였으니, 밀린 설거지를 해치우고, 세탁기도 돌렸다.


12월 28일 수요일


퇴근길에 박준 시인 초청강연을 듣고 왔다. 도서관에서 열리는 행사라, 도서관 간 김에 요리책도 열 권이나 빌려왔다. 할 말이 많은데 피곤해서 못 쓰겠다.


12월 29일 목요일


퇴근하고 집에 와서 손 씻고 만둣국 끓여 먹고, 빨래를 해서 널고, 수건을 걷어서 개키고, 앞머리를 자르고, 양치를 하고, 전기장판을 켜서 따뜻하게 덥힌 이불속에 안착했다. 집에 와서 이불속에 들어오기 전까지 내내 '불편한 편의점' 오디오북을 들었다. 이 책이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지 직접 읽어보니까 (들어보니까) 알 것 같다. 편의점이라는 배경이 굉장히 친숙해서 그런지 상황묘사도 잘되고, 편의점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에피소드가 재밌다.


12월 30일 금요일


오랜만에 늦게까지 남아서 월말재고조사를 하고 귀가했다. 집에 와서 내년 목표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내년 목표는 책 50권 읽기, 영어학습지 풀기, 건강관리, 자산관리다.


1. 독서하기 : 책을 읽으니 확실히 멘털관리에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내 기준에서 조금 과하지만 한 해 동안 주 2권씩 총 50권의 책을 읽을 생각이다. 권수 따져가며 읽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이렇게 숫자로 목표를 설정해 두면 의식해서라도 책을 읽지 않을까 싶다. 조금만 부지런 떨면, 시간이 부족해서 책을 못 읽을 것 같지는 않다. 독후감에는 너무 연연하지 말자. 이제 올해도 며칠 안 남았고, 책 50권 읽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일단 와카타케 나나미의 일상시리즈는 읽기를 포기했다. 제목과 표지디자인에 끌려서 읽기 시작했으나, 기대와는 달리 이야기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취향의 문제려니. 그에 비해 불편한 편의점은 너무 재미있게 잘 쓰인 작품인 것 같다. 대중소설이라는 게 이런 책을 가리키는 건가보다. 1월 한 달 동안은 밀리의 서재에서 이북과 오디오북 위주로 독서를 하고, 또 구입 및 대여해 놓은 열댓 권의 요리책도 하루 한 권씩 휘리릭 읽을 예정이다. 2월부터는 무슨 책을 읽을지는 또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2. 영어학습지 풀기 : 오래전에 12개월 할부로 덜컥 질러놓고 제대로 보지도 않고 계속 방치하던 96권의 영어학습지를 이제는 풀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주 2권씩 풀면 1년 동안 충분히 완주 가능하다. 영어를 공부해 두면 언젠가 분명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 한국에서는 언어능력, 특히 영어능력을 학력의 지표로 삼기도 하니까. 어느 날 갑자기 무슨 시험이 보고 싶어질 수도 있을 거고, 영어는 공부하고 익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놔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이 생각을 도대체 몇 년째하고 있는 건지 참. 어쨌든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것 같다.


3. 운동, 건강관리 : 새벽헬스, 등산, 안과정기검진, 산부인과암검사, 치과스케일링, 정형외과 무릎엑스레이, 직장인건강검진


4. 자산관리 : 삼쩜삼에서 올해 환급금 조회를 하는 과정에서, 내 소득이 내 또래 평균소득에 한참이나 못 미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심지어 이 돈은 주 6일 근무에 추가근무 (월말재고조사) 와 식비까지 합쳐진 금액인데도 그렇다. 밖에서 사람들에게 내 월급 얘기를 했을 때, 내가 돈을 못 번다고 쓴소리를 하던데, 비교수치를 보니까 이제야 납득이 간다. 하지만 나는 돈을 더 많이 벌 능력도 의지도 없으므로 그냥 지금 수준에서 만족하기로 한다. 근데 저 평균치도 결국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에 한해서 나온 수치가 아닐까 싶다. 내가 아는 사람만 해도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뭐 어쨌거나 물가는 점점 오르고 내 인생은 돈이 없어 쪼들리기 시작하니, 생존 차원에서 강제 짠테크를 실시하도록 하겠다. 요즘은 금리가 많이 올라서 적금도 들만한 것 같다. 내년에는 적금이나 열심히 들고, 최대한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자산관리를 해야겠다. 일단 한 해 동안 옷, 신발, 가방, 미용실 등에는 일절 돈을 쓰지 않을 생각이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매가 보기 좋아지면 외적인 것에 돈을 쓰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 같다. 아래에 내 지출목록을 나열해 보았다.


주민세 : 년 1회 내는 거 굳이 적어야 하나 싶지만 어쨌든 돈 나가는 건 모두 기록해 본다. 정확한 금액이 기억이 안 나는데 대략 1-2만 원선이었던 것 같다.


전기세 : 희망사항은 2만 원 대지만, 적당히 3만 원대로 합의를 봐야겠다. 그동안 특히 여름에는 난방도 안 하고 온수도 안 빼쓰니까 2만 원대가 가능했다. 계속 전기세가 오르니까 앞으로는 저 금액대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일단 여름 3만 초반, 겨울 3만 후반으로 4만 원을 넘지 않는 선으로 신경 써야겠다. 그나저나 내년 전기료 인상이 역대 최고라고 하네. 한 2천원 내지 3천 원 더 나오려나.


수도세 포함 관리비 : 30,000원 고정. 올린다고 할까 봐 조마조마하다. 시세에 비해 싼 편이긴 하다.


주택청약 : 20,000원 고정. 별 의미 없어 보이기는 한다마는 사람 일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예전에 가입해 뒀다.


실비, 암보험 : 지금껏 둘 다 합해서 3만 원 후반대를 내왔었는데, 내년에 갑자기 5만 원대로 오를 예정이다. 갱신으로 인해 보험료가 오르기 때문이다. 실비보험 10년 차에 이제 두 번의 갱신을 맞이한다. 5년 만기 갱신으로, 첫 갱신 때는 1만 원대에서 2만 원대로, 두 번째 갱신 때는 2만 원대에서 4만 원대로 올랐다. 이거는 뭐 제곱으로 오르는 건가. 이러다가 다음 갱신 때는 10만 원대로 오르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아무튼 1만 원대 암보험과 합하면 대략 5만 원 후반 정도로 책정될 것 같다.


휴대폰요금 : 사람이 멍청하면 헛돈을 쓰게 된다는 걸 십수 년간 이쪽 세계에서 참 많이도 경험했다. 지나간 일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얼마 전에 할부가 끝났고, 3만 원 정도 (4만 원 미만) 나올 예정이다. 알뜰폰요금제로 갈아탈 경우 월 5천 원 미만. 금액만 보면 위약금을 내서라도 당장 옮겨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도대체 뭘 고민하는 걸까.


식비 : 식비는 월 20만 원 이하로 책정했다. 가끔 카페에 가서 쓰는 커피값도 모두 포함하기로 한다. 주 1-2회 계획적으로 장을 보고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집밥 (+회사찬스) 으로 해결해야겠다.


생필품 : 샴푸, 린스, 폼클렌징, 비누, 페이스로션, 바디로션, 자외선차단제, 치약, 칫솔, 생리대, 팬티라이너, 세탁세제, 주방세제, 청소세제, 평소 조금이라도 쓰는 (생각나는) 모든 품목을 다 적어봤다. 한번 살 때 대용량으로 넉넉하게 사두는 편이라 앞서 적은 모든 품목들이 아직 여유가 있다.


기타 : 교통비, 등산회비, 모임회비, 병원비, 헬스이용료, 경조금


넉넉잡아서(?) 월 최저생계비를 월 40만 원으로 책정해 보았다. 자.. 잘할 수 있겠지?


12월 31일 토요일


올해 마지막날이랍시고 점심회식을 했다. 저번에 회식할 때 갔던 한우집에 또 갔다. 회식은 불편하지만, 그래도 평소 잘 못 먹는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공짜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연말 회식도 하고 연말 안부 문자도 몇 통 받고, 약간이나마 훈훈한 기분을 느꼈다. 올해를 10분 남겨두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 불 끄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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