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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Mar 16. 2024

모임 1

봄 글쓰기모임 숙제 3

내 첫 모임은 서른 살에 인스타그램 홍보글을 접하며 시작됐다. 내가 팔로우하는 독립서점의 계정에서 단편소설쓰기 클럽활동 참여자를 모집한다기에 마침 글쓰기에 관심도 있고 뭔가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에 신청해서 참여하게 됐다. 석 달간 기간이 정해져 있는 짧은 모임이었고, 그 모임 이후 또 그 독립서점에서 진행하는 비슷한 결의 모임에 참여했는데 그때는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힘들어서 하루 나가고 그만뒀다.


사실 첫 모임에서도 사람들과 썩 잘 어울리지는 못 했고 그저 글만 썼다. 인간관계는 서툴지만 그래도 직장 외에 어떤 일정이 있다는 것과 숙제가 있는 느낌 정도가 좋았다. 그 뒤로도 모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내 태도를 두 차례 겪고 나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몇 년이 흘렀다.


역시나 또 인스타그램 홍보글을 접했다. 이번에는 단골 라면가게 계정이다. 이 라면가게는 앞서 언급한 독립서점과 같은 동네에 위치해 있다. 독립서점에서 진행하는 짧은 모임활동을 처음 시작하고 그 주변 상권에 관심을 가지던 시기에 우연히 이 라면가게 사장님이 내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면서 가게의 정체를 알게 됐다. 가게를 홍보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이 계정 저 계정을 팔로잉하는 느낌이었다.


계정을 구경해 보니 가게에 한번 가보고 싶어 져서 맞팔했다. 내가 그 주변 상권에 대한 게시물을 올리고 해시태그를 달아서 우연히 검색해 보다가 내 계정을 알았을 수도 있고 혹은 내가 독립서점 팔로워 목록에 있어서 내 계정을 알았을 수도 있겠다. 주변 상인들끼리 친구처럼 지내는 것 같았다.


아무튼 내가 팔로우하는 이 단골 라면가게 사장님의 계정에 영화심리학에 관한 모임 홍보글이 올라와서 재밌어 보여서 신청했다. 라면가게 사장님이 알고 보니 심리학 석사 출신의 상담심리사였다. 심리학과 관련된 특정 주제의 영화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었다.


무슨 진흥원에서 지원받아서 운영하는 거였고 거의 공부하는 분위기였다. 매주마다 과제가 있었고, 매번 과제를 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뭔가 퇴근 후 학원에 다니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던 것 같다. 회기가 정해져 있었고 반년에 걸쳐서 모임이 진행되었다.


영화심리학 모임에 갔더니 웬 사교적으로 보이는 타모임 운영진이 나와서 자기 모임 홍보를 하기에 호기심이 생겨서 거기도 가입했다. 처음에는 타로, 미술상담 등을 하는 모임으로 알고 가입했는데 자꾸 있다 보니 미라클모닝이니 독서모임이니 온갖 잡다한 것들을 다 했다. 대략 친목모임 같은 거였다.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을 운영했고 거기서 시도 때도 없이 쓸데없는 잡담이 이뤄졌는데 일하면서 무료한 시간에 종종 들어와 보기에 꽤 재밌었다.


이 모임의 경우 소모임이라는 어플에 등록돼 있었는데 소모임 어플에는 온갖 모임들이 가득했다. 모임활동을 한번 하기 시작하니 다른 모임활동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글쓰기 모임을 발견하고는 거기에 가입했다.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앞서 가입했던 모임은 더이상 지속할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하겠어서 탈퇴했다.


글쓰기 모임은 매주 토요일마다 카페에 모여서 글을 쓰고 정해진 기간에 그 글을 제출하고 마지막에 합평을 하고 마무리하며 계절마다 시즌제로 모임원을 모집하는 방식의 모임이다. 수필 혹은 단편소설, 각자 원하는 글을 쓰면 된다. 나는 주로 수필을 썼다. 모임활동에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특별한 부담감 없이 어딘가 소속되어 있는 느낌이 좋았다.


딱 내가 원하는 수준의 느슨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굳이 가까워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 모임에서 제명 당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편안함과 자유로움이 있었다. 그냥 글만 쓰면 됐다. 그 시절 내가 딱 원하는 깊이의 모임이었다. 한 시즌을 마치고 다음 시즌에도 참여하려다가 사정이 생겨서 관뒀다.


그 뒤로 거의 반년 넘게 아무런 모임 활동을 하지 않았다.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생각났는데 딱 하루 나갔다가 그만둔 모임이 하나 있긴 하다. 이 모임 역시 소모임 어플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삼십대 후반의 남자가 운영하는 독서 모임이었다. 남자는 독서모임을 하고 싶은데 마음에 드는 모임이 없어서 본인이 직접 모임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솔직하게 여자를 만나고 싶은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런데 남자는 본인도 독신이면서 자신은 독신이 싫다, 혼자인 사람들은 다들 문제가 있다, 라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그동안 사귀었던 여자들에게 당했던 기분 나쁜 일들에 대해서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세상에 도대체 어디서 그런 여자들을 만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루 나가고 나니 더 이상 나가고 싶지 않아 져서 탈퇴했다. 그 뒤로 소모임 어플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어서 어플을 삭제했다. 그러다가 모임을 통해 알게된 지인들 소식이 궁금해서 다시 깔았지만 더이상 다른 모임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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