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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Nov 06. 2023

책리뷰 : 사피엔스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종은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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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었다. 일단 이 책의 저자 유발 하라리에 대한 예찬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종교, 정치, 역사, 과학, 사회학, 생물학, 심리학까지, 정말 안 다루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지식이 방대하다. 책날개에 있는 프로필 사진을 보니까 외모부터가 뭔가 뇌용량이 많게 생겼다. 뇌섹남이란 이런 남자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인류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시작해서 호모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몇 단계에 걸쳐 진화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애초에 여러 명의 인종이 함께 살고 있었고 그중 하나인 호모 사피엔스만이 현재까지 살아남아 지구를 정복했다고 말한다. 듣고 보니 끄덕끄덕하게 된다. 사실 지금 우리가 역사라고 알고 있는 것들은 모두 남겨진 기록들과 학자들의 주장일 뿐 ‘진짜 역사’ 는 과거에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을 것 같다.


어쨌든 개중 가장 신빙성 있어 보이는 하나를 진실로 받아들일 뿐이다. 뭐 어쨌거나 개중 살아남은 호모사피엔스, 다른 말로 인간. 이 인간은 세 개의 혁명을 통해 놀라운 발전을 하게 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주제가 바로 이 세 개의 혁명을 바탕으로 인간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나아가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1. 인지혁명


과거 인간은 지구상에서 다른 동물에 비해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존재였다. 이례적인 특징이 있다면,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유독 뇌가 컸다는 것. 이 큰 뇌는 신체가 쉬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모하였기에 식량을 찾아다니는데 많은 시간을 쓰게 하고 또 근육을 퇴화시키는 단점이 있었지만, 어쨌든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게 했다. 결국 인간은 머리를 굴려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하기에 이르렀고, 우연히 불까지 발견하게 되면서 다른 동물에 비해 한없이 작고 약한 그 몸을 가지고도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올랐으며, 더 나아가서 언어까지 사용하게 됐다. 이렇게 인간이 스스로의 지능을 인지하게 된 것이 ‘인지혁명’ 이다.


2. 농업혁명


인간은 아주 오래전에는 땅을 옮겨 다니며 자생한 식물을 캐 먹거나 동물을 사냥하면서 수렵채집인으로 살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 땅에 정착하여 직접 동식물을 기르며 농부와 목축인으로 살기 시작했다. 먹고사는 방식이 달라진 것, 이것이 바로 ‘농업혁명’ 이다. 농업혁명에는 여러 가설이 있는데 우선 ‘삶의 질 향상’ 이다. 하지만 과연?


인간은 점점 똑똑해져서 결국 자연의 비밀을 파악하고 동물을 길들여서 가축화하거나 식물을 재배할 수 있게 되었기에, 힘들고 위험한 방랑 생활을 접고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 한 땅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가설은 과연 그럴듯하다. 하지만 농부들은, 힘들고 위험할지언정 기아와 질병의 위험이 적고 활기차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던 수렵채집인들보다 오히려 더 힘들고 불만족스럽게 살았다.


농부들은 하루 종일 땡볕에서 등이 굽도록 일해서 디스크나 관절염 등의 질병에도 쉽게 노출되고, 또 농사라는 게 뿌린 만큼 거두는 것 같아도 기후에 따른 흉작도 결코 피해 갈 수 없으니까 늘 미래를 걱정해야만 했고, 아픈 몸으로도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고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을 포기하고 다시 수렵채집인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사회가 바뀌는 데는 여러 세대가 걸리고 그때쯤이면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한마디로 덫에 걸린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이 농업혁명을 두고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말한다. 물론 인간을 개인으로 봤을 때 이 농업혁명이 최대의 사기이겠지만, 진화학적 관점으로 본다면 과연 혁명이 아닐 수 없다. 이 농업혁명이 인구폭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이 관점으로 본다면 닭, 돼지 같은 가축들이야말로 진짜 이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종이다. 어쨌든 후세에 유전자를 아주 많이 남겼으니까. 물론 잡아먹히기 위해 존재하겠지만. 하지만 행복도는 보호받는 멸종위기종이 훨씬 더 높을 것이다.


특히 밀을 경작함으로써 단위 토지 당 식량생산이 크게 늘어났고, 그 덕에 인간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 생활방식이 전환되면서 방랑하는 생활을 접자, 여자들은 매년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 밭에는 늘 일손이 부족했기에 여자들은 아이를 낳고도 다시 일을 하러 나가야 했고, 아이들은 일찍이 젖을 떼고 면역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어른이 되기도 전에 참으로 많은 아이들이 질병으로 사망했지만 그래도 출생률이 사망률을 증가했기에 인구는 점점 늘어갔다. 이렇게 농업혁명은 열악한 환경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살아남게 만들었다. (질보다는 양...)


농업혁명의 또 다른 가설은 ‘사원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서’ 다. 확실히 농업혁명이 시작된 이후부터 인간사회는 점점 더 규모가 크고 복잡해졌다. 농업혁명에는 수많은 희생자가 따랐다. 인간이 저마다 땅에 정착하고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지키거나 혹은 빼앗기 위해 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혹은 일을 시키는 사람과 일을 하는 사람, 즉 사람 간의 계급 또한 생겨났고 그것을 통치하기 위해 실제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믿는 상상의 질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경제(돈), 정치(제국), 종교가 그것이다.


농업 혁명이 없었으면 그다음 단계의 혁명으로 넘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을 예로 들자면, 미국에서 현재 농업으로 먹고사는 인구는 2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이 2퍼센트가 미국 인구 전체를 먹이고 남은 것은 수출할 만큼의 어마어마한 양을 생산해내고 있다. 농업에서 풀려난 수십억 명의 인간들은 다른 분야에서 생산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3. 과학혁명


1945년 7월 16일 미국의 과학자는 앨러머고도 사막에 첫 원자폭탄을 터뜨리고, 1969년 7월 20일 미국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지구를 벗어나 달에 착륙했다. 인간을 앨러머고로로 혹은 달로 이끌며,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능력을 믿고 과학연구에 힘을 쓰기 시작한 것을 ‘과학혁명’ 이라고 한다. 과학 혁명은 지식 혁명이 아닌 무지의 혁명이다. 인간은 사실 진짜 중요한 것의 해답은 전혀 모른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하며 과학 혁명은 시작됐고, 이것은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행복


행복은 신경, 뉴런, 시냅스, 그리고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 등의 생화학 물질에 의해 결정된다. 행복은 결국 신체 내부의 쾌락적 감각이다. 하긴 뭐 지금도 이미 약물로 감정을 조절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어떤 일로 인해 행복을 느끼는 것도 결국 혈관 속을 흐르는 호르몬과 뇌에서 오가는 전기신호의 폭풍에 반응하는 것뿐이다. (544p)


행복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즐거운 생화학 시스템이 결정한다. 이런 시스템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금방 행복해지는가 하면, 우울한 생화학 시스템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그때뿐이고 늘 우울한 상태가 지속된다. (546p)



죽음


이제 인간은 죽음까지 극복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신이 그렇게 정해놓았기 때문이 아니라 심근경색이나 암, 감염 같은 다양한 기술적 실패 때문이다. (379p)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 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 일 것이다. (586p)


인간은 이제 신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 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5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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