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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Sep 27. 2023

딸에 대하여

망할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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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 를 읽었다. 만약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꼭 보러 가고 싶다. 흥행할 소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취향에는 맞을 것 같다. 배역이 누가 정해지느냐에 따라서 관람을 할지 안 할지가 결정될 것 같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특히 '레인' 의 배역이 누가 될지가 제일 궁금하다.


너무 매력적이고, 내게는 이상형이 딱히 없지만 굳이 만들어내라면 레인 같은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 당당하고 예의 바르고 연인을 이해하고 관계에 확신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할 줄도 알고 요리까지 잘하고. 진짜 이런 사람은 어디서 어떻게 만나는 걸까. 아니면 내가 레인이 되어서 나의 헌신을 고맙게 받아줄 '그린' 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사실 그린이 그만한 가치 있는 연인인지는 잘 모르겠다.


레인은 마음에 들지만 화자인 엄마의 딸, 그린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린의 입장도 들어봐야겠지만은, 일단 소설에서 보여지는 그린은 너무 철이 없고 이기적이다. 물론 그린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에게서 서운함을 느끼고 상처받았을 수도 있지만, 그러는 본인은 단 한 번이라도 엄마를 이해하고 배려한 적이 있었을까 싶다.


엄마의 죽지 못해 살아가는 현재에, 뻔하디 뻔한 불안한 노후에, 아주 작은 희망이나마 가져다줄 능력도 의지도 없으면서, 필요하고 아쉬울 때만 찾아와서는, 엄마에게 유일하게 남아있는 집마저 자식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내놓으라는 식이라니. 엄마의 독백이 육성으로 들리는 것 같다.


"망할년"


월세 사는 사람들을 내보내고 전세를 받으면 당장에 목돈을 만들 수 있을 거라니, 갑자기 쫓겨나는 세입자들은 갑자기 웬 날벼락이냐. 동성애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강사들을 부당하게 내보내버리는 대학교 집단과, 자신이 급전이 필요하다는 이유 하나로 세입자들을 내보내버리라는 말을 쉽게 하는 그린은 뭐가 다른 걸까. 이거야말로 내로남불 아닌가 싶다.


엄마는, 젊은 날 독신으로서 온갖 활동을 하며 남에게 봉사하고 베풀며 살았지만 결국 나이 들어 돌봐줄 가족 하나 없는 치매노인이 되어 요양원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젠' 이, 젊은 날 무의미한 것들에 아까운 인생을 허비했다고 안타까워 하지만, 사실 나는 독신의 젠이 기혼의 다른 노인들에 비해 특별히 더 가여운지는 잘 모르겠다.


늙어 죽는 건 다 똑같은 것 같다. 옆에서 자식이 든든하게 임종을 지키고 예의껏 장례를 치러준다고 한들, 죽는 게 덜 무섭다거나 외롭지 않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어차피 결국에는 혼자서 가는 거. 아무도 같이 따라가 줄 수 없다. 잘 살다가 편히 가네 마네 하는 건 그저 옆에서 바라보는 아직 살아있는 자들의 상상력일 뿐이다.


인생의 가치는 마지막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편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 혹은 잘 죽기 위해서 사는 건 아니지 않은가. 젠이 비록 화려했던 젊은 날과 너무나도 대조되는 비참한 노후와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들, 그는 그냥 젊은 날 찬란하게 잘 지내다가 누구나 그렇듯 그저 때가 되어 세상을 떠난 것뿐이다.


이 소설을 읽고, 인생, 생로병사, 연인, 부모, 이해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얻었다. 아 잘 읽었다 즐거웠다, 는 아니고 어쩐지 살짝 우울해진다. 인생은 짧다고들 하지만 사실 짧은 건 젊은 시절뿐이지, 인생 자체는 징그럽게 긴 것 같다. 늙고 병들고 죽어갈 생각을 하면 여전히 무섭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독백으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이 글은 어쩐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어 한참을 읽어보게 된다.


"한숨 자고 나면, 아주 깊은 잠에서 깨어나면, 이 모든 일이 다 거짓말처럼 되어 버리면 좋겠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와 있으면 좋겠다.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순조롭고 수월한 일상. 그러나 이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끊임없이 싸우고 견뎌야 하는 일상일지도 모른다. 그런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견뎌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으면 고집스럽고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늙은 노인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


다시 눈을 감아 본다. 어쨌든 지금은 좀 자야 하니까. 자고 나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삶을 또 얼마간 받아들일 기운이 나겠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아득한 내일이 아니다. 마주 서 있는 지금이다. 나는 오늘 주어진 일들을 생각하고 오직 그 모든 일들을 무사히 마무리하겠다는 생각만 한다. 그런 식으로 길고 긴 내일들을 지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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