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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도 예술도 예외 없이 나의 삶

영화 <쇼잉 업 Showing Up>

by 김정현



갤러리에 들어선다. 어느 조각가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줄지어 늘어선 작품 사이로 걸어 나오는 여자. 옅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며 전시 소개와 작가의 말이 적힌 종이 묶음을 쥐여 준다. 작품 감상하기 전에 한 번 읽어보세요.



이 작업 노트를 스크린에 옮긴 것이 영화 <쇼잉 업>이 아닐까, 나는 극장을 나오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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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한 창작욕. 주변을 향한 치열하고 끈질긴 관찰. 한 끗 다른 시선에서 나오는 통찰과 사유. 스케치가 완성품으로 탄생하기까지 견뎌야 하는 인고의 시간… 우리가 전시장에서 떠올리는 예술가란 대개 비범하고 숭고한 형상에 둘러싸여 있다. 그 이미지는 현실의 반쪽에 지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는 게 이 영화다. <쇼잉 업>은 새 전시를 앞둔 조각가 리지를 따라가며 예술에 들러붙은 일상과 일상을 파고드는 예술의 맨얼굴을 포착한다.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것은 원망의 표적이 된다. 이 방해물들만 없었어도! 리지 또한 작품에 몰입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세상의 억까(?)에 한숨을 내쉬고 미간을 찌푸린다. 온수가 끊겼대도 고쳐줄 기미가 안 보이는 집주인이자 동료 예술가 조. 반려묘 리키의 공격으로 부상을 입어 졸지에 임시 보호를 맡게 된 비둘기. 경우도 염치도 없이 아버지 집에 놀러 붙은 캐나다 출신의 노부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정한 오빠 숀…



그러나 그녀는 이 억까 역시 자기 삶과 떼어 놓을 수 없는 현실이자 일상임을 안다. 버리는 대신 돌보고 어르며 안고 가야 하는 것임을. 예술이 바로 그런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이러나저러나 전시는 열려야 하고 작품은 관객을 만나야 한다. 리지는 골머리를 앓는 와중에도 틈틈이 스케치를 하고 점토를 붙이고 칼로 조각을 도려내며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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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사건과 감정을 넘어 전시장에 당도한 작품들. 오프닝 행사 당일, 진지하게 전시를 감상하는 이들과 작품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자기 말만 하는 이들 사이로 건강을 회복한 비둘기가 날아오른다. 멀어져 가는 날갯짓을 바라보던 리지의 마음에는 묘한 해방감이 일렁였을 것이다. 이렇게 또 끝이 났구나. 이렇게 또 시작되겠구나.



머리 아프게 만드는 자질구레한 일들도, 머리를 깨끗이 비우게 만드는 예술 작업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일상도 예술도 예외 없이 나의 삶. 리지가 포기한 건 아무것도 없다. ‘일상도 예술도 포기하지 않는 나는 그 전부를 품은 삶을 지켜내는 사람’이란 사실은 그녀가 오래도록 품고 살아갈 생의 비밀이리라.



재능과 실행을 지탱하는 건 태도다. 예술은 삶을 버리고 달아난 자의 도피처가 아니라 삶을 직면하고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자의 언어다. 앞으로도 리지의 작업 노트에 웃음과 한숨과 멍때림과 스트레스가 적나라하게 기록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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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잉 업 Showing Up

감독 켈리 라이카트

주연 미셸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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