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작고 나른한 기쁨
_ 카페 Idle Moments 길희경 대표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창밖을 본다. 초록빛 나무들의 움직임을 가만히 마주하게 되는 시간.
서교동을 걷다 보면 그 작고 느린 기쁨들로 채워진 공간을 만날 수 있다.
혼자만의 나른한 순간을 바라는 모든 이들을 위한 곳.
유난히 녹음이 짙은 여름날, 카페 Idle Moments의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안녕하세요. 저도 오픈 초기부터 종종 다녔던 곳인데 이렇게 뵙게 되어 기분이 새롭네요.
그러게요. 최근에는 발길이 좀 뜸하셨던 것 같지만(웃음), 저도 오랜만에 뵈어 반가워요.
먼저 이 카페 공간을 시작하시기 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원래 카페와 관련된 일을 하셨나요?
아니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일을 했어요. 원래는 일본어 관련된 일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이후에는 학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럼 어떤 계기로 카페를 열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신 거예요?
명확한 계기라기 보다, 일본을 오고 가며 접했던 드립 커피와 이전에 배워놨던 베이킹을 같이 해보고 싶다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흘러흘러왔어요. 처음 카페라는 공간에 마음을 붙이게 된 건 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요.
십여 년 전부터 카페를 즐겨 다니셨던 건가요?
네, 원래는 카페 자체에 별 관심이 없었거든요. 개인 카페나 개성 있는 소규모 공간 등 그런 문화와 거리가 먼 동네에 살다가 10년 전쯤 상수동으로 이사 오면서 조금씩 바뀌었어요. 지금이야 핫플레이스지만 그때만 해도 아무것도 없는 주택가였는데요. 낯선 동네에 마음 붙일 데가 없어 방황하다가, 당인리 발전소 앞에 있던 ‘카페 플랫’이라는 곳에 처음으로 다니게 됐어요. 자주 드나들며 혼자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그게 참 좋았네요.
본격적으로 카페 공간을 구상하시면서 따로 준비하시거나 배우신 게 있다면요?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집 근처 또 다른 단골 카페였던 ‘카페 스톡홀름’에서 2,3개월가량 일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요. 당시 사장님의 개인 사정 때문에 제가 아르바이트 신분임에도 가게에 혼자 나와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혼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해야겠다 마음먹은 상황에서, 미리 한 번 경험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죠.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를 배울 수 있었어요.
그럼 이제 이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름이 ‘Idle Moments’입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나른한 순간’인데, 이를 공간의 정체성이나 지향점 등과 연결 지어 설명해주신다면요?
가장 중요한 건, 손님들이 이곳에서 몸도 마음도 편히 쉴 수 있는 거예요. 제가 처음으로 다닌 ‘카페 플랫’에서 혼자 두세 시간씩 커피 마시며 책 읽고 멍 때리고 했던 것처럼, 기본적으로 혼자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번화가에서 다소 먼 위치나 소박한 분위기의 인테리어, 차분한 음악 선곡 등도 그 연장선에 있겠네요.
그렇죠. 애초부터 이곳을 핫플레이스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냥 지나가다가 잠시 들러 쉴 수 있는, 혹은 일부러 쉬고 싶어서 찾아오는 공간이었으면 했죠. 그래서 조금 멀더라도 한적한 위치를 택한 거고, 인테리어의 경우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는데 규모가 작아 이것저것 욕심부릴 처지는 아니어서 시공해주시는 분께 ‘나무’와 ‘흰색’이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만 말씀드렸네요.
핫플레이스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아이들 모먼츠도 많은 카페들처럼 핫플레이스로 불리는 곳 중 하나입니다. 손님이 늘어나면서 여러 변화도 있었을 거고 그에 따른 딜레마도 생겨났을 것 같은데요.
오픈한지 4년이 지난 요즘은 그래도 ‘핫한’ 시기가 꺾여서 비교적 한산한 편인데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핫플레이스가 되면 딜레마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당연히 경제적으로는 여유로워져서 운영 면에서의 걱정은 없어지는데, 그 외에 다른 걱정들이 늘어나게 되죠. 일단 회전율이 높아져서 제가 쉴 시간이 줄어드니 체력적으로 힘들고요.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오다 보니 여러 가지 트러블이 나기도 합니다.
손님과의 트러블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게 있을까요?
가장 대표적인 게 사진 촬영이에요. 플래시를 터뜨리거나 자리까지 옮겨가며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르고 하는 것들인데, 이게 정도를 지나치면 다른 손님들의 쉼을 방해해요. 결국 제가 자제해달라는 부탁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지만 간혹 이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표시하는 경우가 있어 저도 스트레스를 받죠.
손님에게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참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저도 사람인지라 힘들죠. 하지만 여기는 공적인 공간이고 작은 규모다 보니까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이 공간의 정체성이 점점 훼손될 텐데, 결국 그 정체성을 지켜낼 수 있는 건 주인장인 저 아니겠어요. 제가 적절하게 나서지 않으면 여기는 무너지겠죠. 어렵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딜레마나 애로사항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되는 데는 단골손님들의 역할도 크지 않을까 싶어요. 아이들 모먼츠를 찾아주시는 단골손님들이 대표님께는 어떤 의미일까요?
운영하는 입장에서, 애정을 갖고 이 공간을 지속적으로 찾아주시는 분들이 정말 감사하죠. 더더욱 그분들이 편안한 시간을 누리실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하고요. 다만 저는 손님들과 막 친하게 지내는 편은 아니에요. 먼저 말을 거는 일도 별로 없고 보통은 서로 눈 인사만 하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요. 저는 이 공간 안에서 사장과 손님의 관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적당한 거리감을 가지려고 해요. 단골손님들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아 다행이죠.
단골 손님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게 재밌네요. 저 같으면 단골 가게의 주인장과 친해지고 싶어서 이런저런 말들을 건네볼 것 같은데.(웃음)
그런 분도 간혹 있기는 하죠. 실제로 친해진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대체로 정말 인사만 나누고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곤 하세요. 그걸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불필요하게 친근한 행위는 자제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요즘은 비교적 한산하다고 하셨는데, 분명 걱정되는 부분도 있으시겠죠?
모든 게 적당해야 하는데 그게 유지되는 게 참 어려워요. 어떻게 또 손님들은 특정 시간대에만 몰리는 건지… 나름 4년 차인데 아직도 그 타이밍을 예측하지 못하겠어요. 뭐랄까, 저는 그냥 최대한 편차가 없었으면 해요. 늘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앞으로 이 공간과 관련해서 변화를 주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요?
아직은 딱히 없어요. 이것저것 자주 변화를 주고자 하는 성향도 아니고요. 지금처럼 계속 쭉 흘러갈 수 있게 하고 싶네요.
혼자 와도 편안한 공간으로요?
그렇죠. 이전과 크게 다를 것 없이, 손님들과의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적당히 편안한 공간이라는 정체성을 지켜 나가고 싶어요. 혼자 와서 눈치 안 보고 자기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곳. 제가 참 좋아하는 게, 혼자 온 손님들이 책을 읽다가 문득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이거든요. 사실 그건 우리한테 정말 소중하고 그래서 꼭 필요한 순간이잖아요. 그런 순간들로 채워지는 공간이었으면 해요.
* 하이드어웨이 매거진 Vol.1 The Lazy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