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문상훈 인터뷰
그런 말을 들었다. 아카데미나 그래미, 에미 같은 해외 유명 시상식의 성패는 ‘호스트 코미디언의 농담이 웃겼냐 안 웃겼냐’에 달려 있다고. 그만큼 유머는 중요하고, 코미디언은 충분히 권위와 자부심을 가질 만한 직업이다.
코미디언 문상훈은 자부심을 숨기지 않는다. 우리는 때로 웃는 행위를 너무 가볍게 여겨 웃음을 주는 일의 가치를 절하하지만, 그는 여전히 코미디의 힘을 믿는다.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를 통해 다양한 코미디 영상을 제작하는 문상훈. 평소 즐겨 찾는다는 동네 단골 카페에서 만난 그는 다소 경직된 상태에서도 틈만 나면 농담을 던졌다.
Q(이하 생략): 늘 본인을 소개할 때 ‘코미디언’이라고 하죠. 흔히 코미디언이라고 하면 <개그콘서트>나 <코미디빅리그> 같은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모습을 떠올릴 텐데요. 그러다 보니 다소 낯설게 느끼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문(이하 생략):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배우도 방송사 공채로 뽑았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그냥 연기 활동을 해도 배우 타이틀을 얻잖아요. 코미디도 마찬가지예요. 아직도 존재하는 공채 시스템이 익숙하지만, 저처럼 그냥 코미디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코미디언’이라고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강남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분들도 스스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고 이야기하시고요. 본인이 스스로 코미디언이라고 표현하고 다니다 보면 그게 점차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요.
코미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이 일을 하기까지의 스토리를 들려준다면요?
코미디를 하게 된 건, 결국 몇 안 되는 제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게 ‘웃기는 일’이었기 때문이에요. 제대하고 나서 이것저것 다양한 걸 해봤거든요.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결국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사람들 웃기는 거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프랑스로 교환학생 가기 전에 서구권 코미디언들의 영상을 정말 많이 찾아봤고, 갔다 온 뒤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죠.
서구권 코미디언의 영상을 많이 봤다고 했는데, 키 앤 필이나 릭키 제바이스 같은 코미디언들을 좋아한다고 밝힌 적이 있죠. 그들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훌륭한 코미디는 사람을 타지 않는, 그러니까 유머의 대사가 너무 완벽해서 연기 못하는 사람이 와서 읽기만 해도 재미있는 코미디거든요. 대사가 죽여주는 코미디요. 특히 키 앤 필은 미술이나 연기까지 훌륭하고, 릭키 제바이스는 특유의 냉소적이고 러프한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요. 저는 확실히 ‘어, 저게 뭔 얘기지?’하고 생각해봤을 때 더 웃긴 스타일을 좋아해요.
현재 빠더너스라는 코미디 콘텐츠 팀으로 유튜브에서 8만 3천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어요. 빠더너스는 처음에 어떻게 결성된 거예요?
같은 학교 동기였던 홍석이(기존 멤버였던 강홍석은 현재 팀을 잠시 떠나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꿈이 영화감독이었고요. 교환학생 다녀오고 나서 처음 만나게 된 진혁이는 좀 더 감각적이고, 영상미를 드러낼 수 있는 것들에 궁금증을 갖고 있었어요. 저는 코미디를 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셋이서 ‘같이 한 번 해보자’라면서 의기투합하게 됐죠.
팀 내에서의 역할도 궁금하네요. 화면 속에 등장해 농담을 던지고 연기를 보여주는 역할에만 한정되지 않는 거로 알고 있거든요.
기본적으로 작가와 연기자의 역할을 겸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저는 대본을 직접 쓰는 걸 지향하거든요. 전체적인 방향이나 카테고리는 같이 구상하되, 구체적인 상황이나 대사는 제가 짜요. 그걸 가지고 영상화하는 작업은 연출을 하고 싶어하는 진혁이가 맡는 거고요.
그럼 콘텐츠를 내보내는 창구로 유튜브를 선택한 것도 각자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한 나름의 절충안이었던 걸까요? 아니면 애초에 유튜버라는 방향성을 잡고 그걸 중심으로 이런저런 작당 모의를 한 건가요.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것 자체였죠. 우리의 작업을 보여줄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쌓으려 했고, 유튜브도 마찬가지였어요. 유튜버가 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우리의 작업물을 아카이빙하고, 거기에 관심 가지는 이들의 눈에 띄는 게 더 중요했죠.
포트폴리오 개념이라면 결국 다음 스텝으로 생각해둔 것들이 있다는 뜻일 텐데요. 그건 뭘까요?
쉽게 얘기하면 유료 콘텐츠 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넷플릭스나 유튜브 오리지널 콘텐츠처럼 더 규모 있는 플랫폼에 진출해서 자체 콘텐츠를 만드는 거죠. 최근에 저희가 엠넷과 외주 격으로 계약을 맺어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는데요.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었어요. 3, 4년 전에 바랐던 것처럼 저희가 해온 작업이 포트폴리오가 돼서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었으니까요. 앞으로는 어느 정도 진입장벽이 있는 플랫폼에 진출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빠더너스 채널을 통해 여러 콘텐츠를 시도했죠. 그중에서도 최고의 히트작은 <한국지리 일타강사> 시리즈입니다. 처음 구상 단계를 비롯한 제작 비화를 듣고 싶어요.
이 시리즈는 2016년에 한 번 만들어봤던 포맷이에요. 기본적으로 패러디 컨셉이다 보니 구상 과정에서 패러디에 관한 나름의 기준들을 확실히 했죠. 사람들이 많이 아는 소재에 활용할 패러디 요소도 많아야 했고요. 인터넷 강사는 칠판 앞에 서 있는 그림 자체가 임팩트 있었어요. 1초 만에 어떤 상황인지 알아볼 수 있잖아요. 인강 강사들의 팬덤도 상당한 만큼 여러모로 괜찮은 소재다 싶었죠.
이 정도의 뜨거운 반응을 예상했어요?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사실 우리 팀 아이덴티티에 제일 적합한 콘텐츠는 <문대만 프로젝트>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외에 유튜브에 적합한, 다소 쉽게 찍을 수 있는 사이드 디시 같은 콘텐츠를 <한국지리 일타강사> 시리즈로 잡았어요. 근데 막상 문대만 프로젝트는 김으로 전락하고, 이 시리즈가 제육볶음이 되어버린 상황이… (전원 웃음)
그럼 그 외에 특별히 애정하거나 아쉬움이 남는 콘텐츠가 있다면요?
아픈 손가락이 있죠.(웃음) ‘평양냉면’을 다룬 초기의 스케치 코미디(10분 내외의 짧은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코미디)인데요. ‘면스플레인’ 같은 유머 코드를 탈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컨셉이라 저희는 되게 재밌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어요. 예상보다 반응이 별로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문대만 구하기’ 같은 페이크 다큐나 일상을 보여주는 브이로그 등 다양한 성격의 콘텐츠가 있지만 채널을 시작할 때 가장 핵심으로 생각한 콘텐츠는 어떤 거예요?
평양냉면이나 강형욱 훈련사를 패러디한 영상 같은 스케치 코미디요. 근데 스케치 코미디가 품도 많이 들고 노력 대비 사람들이 편하게 웃기도 쉽지 않은 형식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자꾸 미뤄두고는 있는데 가능하면 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구독자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꽤 탄탄한 팬층이 형성돼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빠더너스 팀 그리고 본인이 사랑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뚱뚱하다는 게 제일 크고요.(웃음) 그리고 제 유머 코드가 뭔가를 대놓고 하기보다 은은하게, 넌지시 표현하는 방식이잖아요. 냉정하게 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또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어떻게 하면 그들이 좋아해줄까를 저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귀여움’이야말로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라고 보는데.(웃음) 브이로그를 향한 구독자들의 뜨거운 반응도 비슷한 맥락일 것 같고요. 전 솔직히 본인들이 그 요소를 분명히 잘 알고 영리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되게 ‘딥’한 부분이 있거든요. 생각도 깊어지고 감상적일 때도 많은데, 그런 게 브이로그에서도 다 드러나니까 좋아해 주시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제가 너무 과하거나 부담스러울 정도로 표현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진혁이가 잘 지적해주고 막아줘요. 서로서로 적절하게 중화시켜주는 거죠.
<비디오스타>를 비롯한 방송 프로그램이나 CF에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진출이 어떻게 이뤄졌고, 당시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주변 반응도 컸을 것 같은데요.
제가 넷플릭스 콘텐츠 <YG전자>에서 작가로 일했거든요. 이후에 (유)병재 형이 유튜브에서 진행한 <문학의 밤>에 함께 했는데, 그중 한 편이 <전지적 참견 시점>에도 나왔어요. 그걸 계기로 <비디오스타>에도 섭외됐죠. 아, 근데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빠르게 치고 빠지거나 조리 있게 말을 잘하는 스타일도 아니라 너무 어려웠어요. 저랑은 잘 안 맞는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앞으로의 방송 진출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겠네요?
네, 좀 그렇죠. 그게 제 첫 번째 목표도 아니고요.
그럼 본인에게 더 잘 맞는 역할은 어떤 걸까요? 딱 분리될 수는 없겠지만, 유튜브든 방송이든, 전면에 나서서 연기하고 농담을 던지는 것과 직접 내용을 기획하고 대본을 쓰는 것 중에서요.
앞에서 연기하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웃긴 말 던지는 게 더 쉽긴 해요. 하지만 마음 깊이 동경하고 좀 더 욕심이 나는 건 직접 대본 쓰는 일이죠. 솔직히 멋있잖아요. 아시죠? 카페에서 커피 마시면서 노트북 켜놓고 글 쓰고, 말 걸어주길 바라면서. (전원 웃음)
근데 생각해보면 내가 쓴 걸 다른 사람이 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 내가 제일 잘 이해하고 있는 내 캐릭터를 바탕으로 쓰고, 직접 연기까지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이를테면, 싱어송라이터는 보컬만 놓고 봤을 땐 아주 뛰어나지 않을 수 있지만, 자신이 쓴 가사와 멜로디를 가장 잘 이해하고 표현하는 사람이잖아요. 코미디도 그런 것 같아요. 당연히 저는 작가로서 뭔가를 쓰는 능력이 여전히 부족해요. 내가 연기자가 된 것처럼 캐릭터를 형성하고, 그걸 완벽하게 표현해주는 게 정말 중요한데요. 저는 그냥 제가 하는 말투와 표현 방식을 옮겨 적을 뿐이거든요. 다른 사람 것을 할 정도의 깊이는 아직 없어요. 당연히 노력해야 할 부분이지만, 어쨌든 제가 연기하는 거니까 제가 쓸 수 있고, 제가 쓴 거니까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작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어요? 그러고 보니 요즘 빠더너스 채널은 업로드가 너무 뜸하네요. (웃음)
지금 발등에 불이 엄청 떨어져서 발등이 완전 시꺼메졌고요. (전원 웃음) 아이템도 많이 쌓여 있고, 이제는 매주 업로드할 것들을 준비 중이에요. 걱정이 좀 되긴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빨리 예전 템포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입니다. 확실히 방송도 그렇고, 외부 일들을 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는데, 요즘엔 다시 우리 자체 콘텐츠를 쌓는 데 주력해야겠다는 필요를 크게 느껴요. 당연히 구독자분들께도 죄송한 마음이 크고요.
기존 채널 외에 또 목표로 삼는 부분이 있다면요?
제가 꿈이 하나 있는데요. 시즌제 시트콤을 만드는 거예요. 왜, 미드 보면 보통 시즌제로 진행하니까 1년에 한 번 정도 방영하잖아요. 그럼 대충 계산해봐도 1년에 3개월 대본 회의하고, 3개월 촬영하고, 3개월 편집하고, 마지막 3개월은 쉬는 거죠. 해외로 떠나서 찌든 몸과 마음을 풀어내고 영감을 얻으며 구상한 뒤에 다시 1년을 반복하는… 저는 그 사이클을 한 번이라도 살아보는 게 소원입니다.
빠더너스 채널의 정보란에 보면 ‘In the end, everything is a gag.’라고 적혀 있죠. 개그, 코미디, 그리고 그걸 직업으로 삼고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또, 코미디언으로서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가치나 목표는 어떤 걸까요?
일단 코미디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의 집약체예요. 저한테는 가장 궁금한 것, 배우고 싶은 것, 그래서 잘하고 싶은 것이죠. 아직은 코미디언이라는 수식어가 쉽게 달 수 있는 타이틀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저는 ‘누가 봐도 쟤는 코미디언이지’라고 여겨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우울감을 컨트롤하는 법에 관심이 많거든요. 거기서 되게 중요한 게 ‘언제 봐도 재밌고 웃긴 걸 찾아보는 것’이에요. ‘천 번 봐도 웃긴 짤’ 이런 거 있잖아요. 삶의 활력이 되거든요. 잠자는 거나 먹는 거만큼 웃는 게 중요하니까. 제가 하는 코미디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누군가에게 언제 봐도 웃긴 것, 그래서 언제라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걸 어떻게 최대한 내 방식대로, 다르게 멋있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편하게 해주세요.
지금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코미디언분들 한 명 한 명 정말 대단하지 않은 분이 없어요. 직접 대본 쓰고 하는 것도 저뿐만 아니라 코미디언 대부분이 그렇고요. 그만큼 코미디에 관해서는 늘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어요. 아, 그리고 제가 공개 코미디 하시는 분들처럼 못할 뿐이지, 무슨 다른 차별화된 노선을 걷겠다고 하는 건 아니라는 거 알아주세요. (웃음)
에디터 김정현
포토그래퍼 김해서
* The ICONtv에 실린 인터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