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기록하는 당신의 오늘

<글월> 문주희 대표 인터뷰

by 김정현




여전히 편지를 쓰는 이들이 있다. 느리고 수고로울 때 더 오래 기억될 거라 믿는 사람들이다. 글월 문주희 대표는 느리고 수고로운 편지 속에 누군가의 오늘을 담는다. 작고 깨끗한 편지지 위로 적히는 가벼운 고민과 무거운 고백들. 대화의 기억이 흐려질 무렵 어느새 이야기는 우편함으로 도착한다.



수요일 이른 아침, 문 대표를 글월에서 만났다. 비가 오는 연희동은 조용했고, 그는 유독 ‘기록’이란 단어를 자주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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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이하 생략): 먼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문(이하 생략): 안녕하세요, 글월의 대표 문주희입니다. 글월은 편지라는 주제 아래 글을 쓰고, 인터뷰하는 작업 공간이자 제품과 서비스를 제안하는 편지 가게, 두 가지 역할을 하는 곳이에요.


편지 가게라는 컨셉이 다소 독특해요. 어떤 계기로 글월을 구상하고 기획하셨나요?

첫 출발은 인터뷰 형식의 편지를 써드리는 프로젝트였어요. 이전에 잡지 에디터로 일하며 인터뷰를 진행했던 데서 착안한 건데요. 저는 인터뷰 기사를 정리할 때마다 인터뷰이에게 러브레터를 쓰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분을 만났던 장소라든지, 그분의 표정이나 스타일, 그날의 분위기 같은 것들을 돌아보면서 상상하게 되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면서 글을 쓸 때 많은 상상을 하는 것처럼요. 인터뷰이 입장에서 ‘그런 글을 받으면 얼마나 기쁠까’, ‘그럼 다른 많은 사람들 역시 자기를 인터뷰한 내용이 편지로 기록된다면 정말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 아이디어가 편지 가게까지 이어진 거네요.

처음에는 단지 인터뷰할 공간이 필요했어요. 약속을 잡고 카페에 가거나 인터뷰이가 원하는 장소에서 만나기도 해봤는데, 그게 되게 어색했거든요. 두 사람 다 그곳이 생소하고 익숙지 않다 보니 안정적인 분위기가 안 만들어진 거죠. 더 편하게 진행할 수 있는 작업 공간이 필요했어요.


인터뷰 진행 문제라면 개인 작업실을 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오프라인 스토어까지 열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우선, 인터뷰 내용을 편지 형식으로 정리하다 보니 그 글을 담는 편지지가 필요했어요. 공통 포맷의 편지지와 봉투가 필요해서 직접 만들어봤더니 주변 사람들한테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럼 이걸 한 켠에 두고 작은 스토어를 열어볼까 싶었는데, 하다 보니까 ‘이것도 있으면 좋겠다’, ‘저것도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다’ 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웃음)


‘인터뷰를 통해 타인과 대화하며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이를 어떻게 기록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편지의 형식을 빌려왔다’ 이렇게 글월의 방향성을 정리해볼 수 있을까요?

네, 맞아요. 아주 정확해요. (웃음) 지금 보시면 저희가 인터뷰하는 공간과 제품들을 진열해둔 공간의 지면 비율이 거의 비슷하거든요. 거기다 제품들도 최소한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서랍 안으로 다 넣어놔서 대화를 나누거나 편지를 쓸 때는 잘 보이지 않도록 의도했어요. 이것도 글월의 정체성을 보여주고자 한 선택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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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Service : 한 사람을 위한 편지



레터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신청자와 1시간가량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내용을 편지로 정리해 보내주는 글월의 메인 콘텐츠인데요. 에디터 시절 경험했던 인터뷰가 그 시작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에디터라는 직업의 가장 큰 메리트는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들을 만나면서 인터뷰 형식의 매력을 크게 느꼈거든요. 내가 하는 일에 누군가 관심을 갖고 질문을 만들어서 대화를 나누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조금 더 생각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으니까요. 저는 그게 셀럽이나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럼 매체 인터뷰와 글월이라는 플랫폼 안에서 진행하는 인터뷰를 비교하면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겉으로 보이는 형식은 다 똑같아요. 그 안에 이야기하는 것들이 좀 다르죠. 매체 인터뷰는 어떤 이슈가 있는 분과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집요하게 얘기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다면, 레터 서비스는 확실히 (인터뷰이분들이) 본인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특별한 이슈가 없어도 그냥 내가 살아가는 모습, 나의 오늘을 기록하기 위해서 오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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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요. 재밌고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이 많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주변 분들이 걱정했어요. 일종의 상담 서비스인데 되게 위험한 일이지 않겠냐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계속 들어야 하는 제 입장에서도 그렇고, 상대방도 제 사소한 답변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진행하다 보면 신청자 중에서도 상담이라고 느끼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근데 확실히 다른 건, 상담전문의는 처방을 내리거나 해결책을 주지만 저는 질문만 던져요. 기록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질문만 하지, 답변을 드리진 않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꼭 말씀드리죠. 이건 전문 상담이 절대 아니고 기록에 불과한 시간이라고요.


대화를 나누고 그걸 정리하는 과정에 있어서 특별히 신경 쓰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그 사람에 대해 지나치게 감정을 쏟지 않고, 조언이나 충고가 되는 말들을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절제해요. 정말 ‘기록’이 될 수 있게요.


듣는 역할에 충실하려고요?

네, 그렇죠. 지금은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지만, 그냥 사진 찍으러 가듯이 내 모습을 기록하러 간다고 편하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꼭 정신적으로 힘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명인들이 자서전 만들 듯이 누군가의 오늘을 기록해줄 수 있는 공간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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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하신 분들의 반응도 궁금한데요. 이후에 연락을 주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고요.

본인의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분도 계셨어요. 부모님에게 보여줬더니 같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셔서 저도 감동했죠. 또 어떤 분은 당시 고민하던 부분이 있었는데, 글을 읽고 난 후에 바로 비행기표를 끊었다고도 하시더라고요.


자기 모습을 객관적으로 다시 보게 돼서 그런 걸까요. 대화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지만, 더 나아가 언제든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편지라는 기록으로 남으니까요.

그런 것 같아요. 이걸 말로 했을 때와 활자로 기록해서 볼 때는 또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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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읽고, 사고, 쓰는 곳



편지 가게인 만큼 편지와 관련된 제품도 다양하게 있습니다. 자체 제작한 편지지나 엽서도 눈에 띄던데 혼자서 디자인을 다 하신 건가요?

대개는 제가 쓰고 싶은 것들을 만들어 둔 거거든요. 그래서 되게 심플해요. 편지 쓰는 사람의 글과 그 글씨체가 도드라지는 디자인이었으면 해서 기본적인 것들은 직접 만들었고요. 그 외에 디테일이 다양하게 들어가는 엽서나 일러스트, 로고 같은 부분은 다른 디자이너분이 도와주시고 있어요.


편지지나 봉투 외에는 ‘프롬노바디’도 인상적이었어요. 브랜드 ‘장롱’에서 진행하는 편지 프로젝트라는 건 원래 알고 있었는데, 그걸 여기서 판매한다고 하니까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싶었어요. 편지 가게니까 당연히 편지 자체를 팔 수도 있는 건데요.

어떻게 마침 또 그런 프로젝트를 하는 분이 가까이에 있어서… (웃음) 근데 입점하고 나서 생각보다 빠르게 나갔거든요. 편지가 상품이 될지에 대해서는 편지를 직접 쓰신 장롱의 이혜인 대표도 걱정했는데, 품절된 호수도 꽤 많아요. 구입한 분들의 반응도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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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월은 편지를 구입할 뿐만 아니라 직접 써볼 수도 있는 공간이죠. 주인장으로서 사람들이 편지를 고르고 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꽤나 쏠쏠한 재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실제로도 많이들 편지를 쓰고 가시나요?

그냥 편지도 많이 쓰는데, 특히 모르는 사람과 편지를 주고받는 ‘펜팔 서비스’의 참여도가 굉장히 높아요. 사실 글월이 그냥 편지 가게로서 물건만 사는 곳이었다면 그다지 매력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문구 제품 셀렉을 훨씬 더 잘해 놓는 곳도 많고, 인터넷으로도 편하게 구매할 수 있으니까요. 근데 여기에 와야 하는 이유는 결국 내가 직접 편지 한 통을 써볼 수 있다는 것, 일종의 체험인 거죠. 그 부분이 지금 펜팔 서비스로 터진 것 같아요.


펜팔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겐 새롭고 재밌는 경험이, 해보신 분들에겐 추억을 소환하는 시간이 되겠죠. 참여하신 분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가장 흥미를 많이 느끼시는 부분은 내가 누군가의 편지를 가져갈 수 있다는 거예요. 모르는 사람이 적어 놓은 편지를 읽어본다는 데 호기심을 느껴서 한 번 써보겠다고 하시거든요. 편지를 가져가려면 무조건 한 통을 써야 하는 조건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처음에는 어떤 내용을 쓸지 본인도 모르게 시작을 하지만, 결국 쓰다 보면 요즘 자기의 고민이 무엇이고 마음에 품고 있던 질문이 어떤 건지 적어 내려가세요. 그 쓰는 과정 자체만으로도 되게 좋은 경험이 되었다는 말씀들을 종종 해주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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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의 작은 편지 가게



오프라인 공간을 준비하며 여러 가지 고민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우선 연희동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하네요.

사실 처음부터 연희동을 원해서 연희동에 온 건 아니에요. 작은 평수의 공간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보고 결정한 곳이 연희동인 거죠.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양쪽에 보이는 창의 느낌이 ‘아, 이거다’ 싶었거든요. (웃음) 근처 카페에서 고민을 좀 했는데, 그 창으로 보이는 장면을 놓치기가 너무 아까워 결국 다른 곳들은 아예 둘러보지도 않고 결정해버렸어요.


의외인데요. 연희동이 가진 한적하고 따스한 분위기랑 글월의 컨셉이 잘 어울려서 제대로 고르셨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럼 인테리어는 어떻게 구상하셨나요? 너무 과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심심해도 안 돼서 어려웠을 것 같아요.

컬러 같은 경우에는 그냥 깔끔한 느낌의 흰 벽이나 베이지 톤을 생각했는데요. 이 창밖으로 보이는 연화 아파트의 이미지가 너무 포근해서 그 느낌을 따라 살구색을 선택했어요. 확실히 편안함을 주는 것 같아요.


듣기로는 디자인 스튜디오 ‘더 퍼스트 펭귄’과도 같이 작업하셨던 것 같던데요.

더 퍼스트 펭귄의 공식적인 작업은 아니고요. 거기 직원분들과 친분이 있어서 제가 따로 작업을 요청한 거예요. 작지만 내실 있게 잘 만들고 싶었거든요. 공간 및 가구 디자인은 남편이자 더 퍼스트 펭귄의 디렉터 하진구(@jinguu__) 씨가 도움을 줬고요. 덩굴을 비롯한 식물 큐레이팅은 조남인(@simone_cho), 로고나 제품 디자인은 현대카드의 심석용(@soquud.psd), 테이블 가구 디자인은 COM의 신유미(@uummeeee) 씨가 작업해주셨어요. 공간 내부 사진은 ‘PHDTD’라는 포토 스튜디오의 오름(@_oreum) 씨가 촬영해주셨고요. 함께해주신 모두가 글월에 필요한 부분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작업해줘서 너무 감사하고 든든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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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경험으로 남는 일



서울에는 정말 다양한 편집숍과 소품숍 등이 포진해 있어요. 차별화된 지점이 필요할 텐데, 그건 앞에서 말한 서비스 측면에 있는 걸까요? 그 외에 다른 부분이 있다면요?

차별점이 되어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웃음) 저는 글월이 단지 편지 가게로만 존재하지 않고 많은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제품을 만들고, 전시를 기획하는 일종의 스튜디오처럼 나아가기를 바라거든요. 뭔가를 기획하고, 선보이고, 사람들이 와서 그걸 보고 느끼는 일들이 겸해지는 곳이었으면 해요.


그럼 현재 계획하고 계신 제품이나 서비스, 외부 프로젝트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우선, PHDTD라는 포토 스튜디오와 함께 사진 엽서, 마스킹 테이프를 만들 예정이고요. 믿음문고에서 기획하고 있는 헤르만 헤세를 주인공으로 한 팝업 행사에 참여하기로 돼 있어요. 그리고 연말에는 보통 연말 카드, 새해 카드를 많이 쓰니까 여러 브랜드에서 나온 연말 카드들을 모아서 구매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에요.


확실히 다른 편집숍이나 소품숍에 비해 글월에서의 시간은 훨씬 더 경험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잠깐 머물다 가더라도, 서랍 곳곳을 들춰보며 엽서를 고르던 기억이나 집중해서 편지를 쓰던 사람들의 모습 같은 게 오래 남아있을 거 같거든요.

조금 놀라웠던 건데, 간혹 부모님들이 아이를 데리고 오실 때가 있어요. 근데 아이들이 편지를 써본 경험이 전무한 거예요. 편지를 어떻게 써야 할지, 우표는 또 어디에 붙이는지 다 모르더라고요. 그걸 부모님이 하나하나 가르쳐주는데, 어떻게 보면 이게 그 아이들한테는 이벤트나 체험 같은 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저와 제 윗세대에서는 되게 일상적인 것이었는데, 새로운 세대한테는 영화 한 편 보러 가는 느낌의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도 있겠죠.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걸 좋아하는 건 세대로 나뉘기에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부분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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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까요?

요즘 글월의 방향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가게와 작업 공간으로서 어떻게 보면 되게 큰 욕심을 부리고 있는 상황인데요. ‘아, 여기는 편지 관련 물건도 사면서 이런 작업도 할 수 있는 곳이구나’ 하는 게 다른 분들에게도 잘 받아들여지기를 바라요. 그 두 가지가 균등하게 인식될 수 있는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문득 이곳이 겨울에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지네요.

저도 정말 궁금해요. 오늘처럼 비 올 때도 좋은데, 겨울이 되면 난로도 놓고 초도 많이 켜 둘 거고. 되게 좋을 것 같아요.




글월(@geulwoll.kr)

주소: 서울 서대문구 증가로 10 403호

영업시간: 월-수 13:00 ~ 18:00 (예약 방문) 목-토 13:00 ~ 18:00 (일 휴무)

문의: 02-333-1016







에디터 l 김정현 (@kimjeonghyeon_)

포토그래퍼 l 정찬웅 (@go_easy__)



* The ICONtv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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