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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Jul 08. 2019

우리가 여행을 기억하는 법



얼마 전 다른 기사에서 “여행을 떠나는 이가 다섯 명이라면, 여행을 준비하는 방법도 다섯 가지다”라고 썼다. 준비하는 방법만 그럴까. 여행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방식은 또 얼마나 다양할지. 아이폰 기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정방형으로 업로드하는 것만이 여행의 전부는 아닌 거니까. 문득 궁금해졌다. 당신은 어떤 과정을 통해 여행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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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크고 작은 여행 계획을 세우는 휴가철 시즌. 점점 다가오는 디데이를 세어보며 설레는 마음을 달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인스타그램을 가득 채울 풍경들 역시 쉽게 예상된다. 뉴욕과 도쿄, 보라카이와 치앙마이 등 다양한 도시의 이름이 적힌 위치 태그와 함께 하와이안 셔츠나 비키니를 입은 이들의 사진이 하루에도 수십 장씩 올라오겠지. 언뜻 보기엔 솔직히 다 거기서 거기다. 하지만 정사각형의 프레임 너머를 생각해보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다른 여행의 과정들이 펼쳐지고 있을까. 그만큼 자신의 여행을 기억하고 기록하려는 방식 또한 성향과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요컨대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이 자기만의 방법으로 여행의 순간을 붙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여행을 기억하는 다양한 방법


그럼 나는 무엇으로 나의 여행을 기억하고 있는가. 사진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그리움을 가져다주는 건, 음악이다. 상황과 분위기에 맞는 선곡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나는 여행을 갈 때마다 그곳에서 들을 여러 버전의 플레이리스트를 준비한다. 상상으로만 그렸던 순간이 다가오고, 실제로 그 풍경과 분위기 속에서 음악을 듣게 되었을 때 벅차 오르는 희열과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감동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이어진다. 한 번씩 지난 여행이 그리워질 때마다 플레이리스트를 꺼내 듣는데, 어느새 나는 그때 그 순간의 구체적인 느낌과 감정들을 만나게 된다. 짙은의 ‘백야’를 들으면 오스트리아 할슈타트의 물안개 가득한 호수가 펼쳐지고, Jon McLaughlin의 ‘I'll Follow You’가 재생될 때마다 스무 살 여름에 즉흥적으로 찾았던 정동진의 밤바다가 떠오르는 식이다.




사진 :  KBS2 <대화의 희열 2> 14회 김영하 편


음악이 아닌 현장의 소리로 그 순간을 기억하는 이들도 있다. 소설가 김영하와 김중혁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보이스 레코더나 휴대폰의 녹음 기능을 활용해 여행 과정에서의 다양한 소리를 채집한다. 광장을 가득 채우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나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대화 소리, 덜컹거리는 기차의 소음과 정갈한 목소리의 안내 방송까지, 그때그때 자신의 흥미를 잡아끄는 소리를 녹음해 두는 것. 시간이 지나 여행의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묵혀둔 녹음 파일을 꺼내 들어보자. 공기를 가득 채우는 듯한 사운드 틈에서 순간적으로 그곳에 다시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아무래도 생생한 감각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훨씬 더 풍성하고 입체적일 수밖에 없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내 여행의 조각들이 마치 3D로 펼쳐지는 거다.


사진 : James Coleman


그럼 특정한 물건에서 의미를 찾는 경우는 어떨까. 이를테면, 여행지별로 수집한 물건을 통해 추억을 환기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겠다. 예기치 못하게 새로 발견한 것이나 애타게 찾아 헤매다 구매에 성공한 것, 혹은 현지의 친구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 등 그곳에서의 기억이 담겨 있는 물건은 강력한 기억 소환의 도구가 되어줄 수 있다. 누군가는 20대 내내 여행 중에 설탕을 그렇게 모았다고 한다. 카페나 식당에 갈 때마다 제공되는 설탕을 갖고 나왔는데, 하나둘 모은 것이 몇백개가 넘게 쌓였단다. 물론 혼자서 다 모은 건 아니고 주변 사람들이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그를 위해 가져다준 것도 많다. 크기와 모양과 색깔이 다 다른 설탕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가 느꼈을 기분을 짐작해본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여행을 반추하고, 또 상상하며 얼마나 즐거웠을지. 설탕뿐만 아니라 각종 티켓이나 영수증, 카탈로그 등 사소하고 별 쓸데없는 것들을 모으는 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거다. 여행에서의 작은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이야말로 결코 작지 않은 의미를 선물해준다는 걸.


사진 : 출판사 비컷



한편으로는 손재주만 뛰어났다면 여행지의 풍경들을 그림으로 기록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장면들을 직접 내 손으로 그려가며 묘사한다면 훨씬 더 기억에 잘 남지 않을까. 자연스레 매 순간을 더 자세히, 더 색다르게 관찰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뉴욕규림일기>의 김규림 작가나 <트래블북 교토>를 발행한 문제이 작가를 보다 보면,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나를 스쳐 가는 것들을 포착하는 과정에 대한 욕구가 늘어난다.




여행은 어떻게든 남는다


뭐가 됐든 결국 여행에 정답은 없다. 여행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을 이어가면 되고, 싫으면 안 해도 된다. 여행이라고 무조건 뭘 남겨놔야 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누구에게나 지난 여행을 그리워하며 사진첩을 뒤적거리는 순간이 한 번쯤은 찾아온다는 것을. 미래의 행복한 추억팔이를 위해서라도, 나에게 맞는 여행의 기록 방식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은 틀렸다. 내가 기록하는 방식에 따라, 무엇이든 남게 된다.





                                                                                                                      * The ICONtv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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