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ssa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현 May 16. 2019

써 주세요, 쓰겠습니다

나는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싶은 걸까



써 주세요, 쓰겠습니다




20대의 휴대폰 속에는 어떤 애플리케이션들이 있을까요.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이것저것 재미난 게 많이 등장한다. 자연스레 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눈에 띄는 강렬한 주황빛. 알바의 신기술, 알바몬. 이제는 그만 좀 누르고 싶다.   



9개월 전인가, 모 플랫폼에서 글쓰기 공모를 진행했다. 다양한 뜻을 내포한 ‘쓰다’라는 단어에 관해 자기만의 시선을 담아내라는 주제였다. ‘쓰다’라니. 놓치고 싶지 않다. 잘 쓰고 싶었고 잘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얼마나 글을 쓰는 행위를 좋아하는지, 그 과정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최적의 소재 아닌가. 깊은 사유와 짙은 감성이 버무려져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설명해낼 수 있는 글이 나올 거라고 기대했다. 바람이 잔뜩 들어갔다.   



못 썼다. 마감이 며칠 안 남은 시점까지 한 줄도 안 나왔다. 머릿속을 맴도는 파편들이 정돈되지 않는다. 얼른 나를 보여줘야 하는데. 글을 통해 존재를 증명해 나가는 멋진 나를 자랑해야 하는데. 그러나 열심히 궁리할수록 떠오르는 건 엉뚱한 말뿐이었다. “나를 좀 써주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가오 한 번 안 사는 말이다. 가오는 안 사는데, 차라리 그게 더 솔직하고 정확한, 그래서 덜 부끄럽고 민망한 쪽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러분, 제발 나 좀 써주세요.’  



쉬운 게 없다. 지금 당장 먹고사는 것도, 나중에 먹고 살아갈 것도. 아르바이트에 대한 스트레스와 취업에 대한 불안으로 점철된 시기를 산다. 말하자면 요즘의 내 삶이란 누군가가 나를 그럴듯한 자리에 써 주길 바라며 지원하고 요청하는 과정이다. 관심을 받고, 선택되어, 합격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있는 것 없는 것 모조리 끌어 모아 나를 포장한다. 원하시는 방향과 스타일에 맞춰 나를 분해하여 편집한다. 어쩌면 나의 사유와 감정을 글로 적어내는 순수한 일도, 궁극적으로는 간택(?) 당하기 위한 그럴듯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디서 어떻게 쓰이고 싶은 걸까. 인턴 채용 소식들 틈에서, 하루에도 수 백 개씩 올라오는 아르바이트 구인 광고 속에서, 내 가치와 욕망은 대체 무얼 향하는가. 좀체 답을 못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무작정 찔러 대기만 하는 꼴이 우습다. 뽑아주면 뽑아주는 대로 좋게 좋게 살고 싶어 이러고 있었나? 그런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라고 핏대 세워가며 외쳐왔는데 말이다.  



결국 '쓰는' 것으로 돌아온다. 잘 쓰고 싶고 잘 보여주고 싶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에게. 댁은 이런 걸 고민하고 이런 걸 욕망하고 이런 꼴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오. 마음에 안 들겠지만 고개 돌리진 마시오, 하고 보여주는 거다. 얼마나 달라지겠냐마는 내 모습을 내가 몰라 무기력해지는 요즘 같아서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거듭 나를 만나고 싶다. 쓰고 말하며, 나를 꺼내 놓고 그걸 응시하는 과정의 반복. 나는 지금 나를 똑바로 보는 일이 시급하고 나를 나에게 가장 또렷이 보여줄 수 있는 일은 쓰는 것이다. 써야 보이고, 봐야 안다. 정확히 알면 이력서 돌릴 때 의욕도 좀 생기고 자괴감도 덜 느끼고 그러지 않을까. 



공모를 다시 했으면 좋겠다. 이번엔 다르다. 사실 이 글도 억울함에서 나왔다. 관계자분께서 읽고 계시다면 2차 공모를 진행해주시길. 여전히 휴대폰에는 주황빛이 반짝인다. 지겨워도 고개 돌릴 수는 없으니, 차분히 업직종 분류에 들어가 ‘신문, 잡지, 출판’ 카테고리를 살포시. 이번엔 저 좀 써 주십쇼. 앞으로 열심히 쓰겠습니다.   





                                                                                                                  * 대학내일 855호에 실린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싫어합니다 존중해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