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 변산바람꽃
[story]
_ 스테이 변산바람꽃
집은 도망가지 않는다. 언제나 거기 있다. 이 당연한 사실에 위안 받는 사람들이 변산으로 향한다. 한적한 시골 바닷가의 나무집으로. 스테이 변산바람꽃은 누구나 도망을 꿈꾸는 곳이다. 그럼 그곳이 일상인 이들의 이야기는 어떨까? 평범한 집이자 일터를 살아갈 뿐인 그들은, 자신에게로 도망오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Editor 김정현
Photographer 김해서 진유정
도시인들의 피난처
작당마을은 귀엽다. 이름도, 동네 풍경도. 마을의 지형이 까치집 모양을 닮았다고 ‘까치 작(鵲)’을 썼단다. 까치집은 모르겠고 갈매기만 그득한 이 바닷가 마을은 전라북도 부안이라는 다소 생소한 지역에 위치한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세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스테이 변산바람꽃]이 이곳의 귀여움에 한 몫 보탠 지도 벌써 십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거쳐갔다. 잠을 잤고, 근처를 여행했고, 글을 썼고, 밤새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이런저런 크고 작은 변화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버지를 이어 서준규 대표가 에어비앤비를 중심으로 공간을 운영한다. 물론 여전히 아버지는 퇴근 후 집 한 켠에서 뚝딱거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 여동생도 일을 함께하기 시작했다.
호젓한 서해바다를 껴안은 절벽 위 나무집. 스테이 변산바람꽃은 여행의 방점을 ‘낯섦’이 아닌 ‘편안함’에 찍는 이들에게 더 큰 만족을 준다. 대개 도시에서 오는 이들이 바라는 건 가볍고 느린 시간이다. “아, 이런 곳에 살고 싶다.” 그 말에 담긴 마음은 제각각이겠지만 거기서 준규 씨는 일상의 결핍을 듣는다. 그 결핍을 얼마간이라도 채워주는 휴식을 제공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거창한 의미부여 말라며 손사래치는 그의 표정이 그려진다.)
그러니까 여기는 도망을 받아주는 집이다. 세 시간 이상을 달려야만 피난처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지만, 이 집만큼은 어디 안 가고 여기 있다. 그렇게 십 년 동안 수많은 도망의 기억들이 쌓였다. 사실 도망이란 비단 외부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은신처가 무대가 될 때
“이 집이 아니었으면 제가 또 어디서 무슨 대단한 일을 하겠어요.” 그가 이 집으로 숨어든 것도 꽤 오래 전이다. 처음엔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조용하고 심심한 촌구석에 드나드는 사람들이라곤 온통 알지도 못하는 아저씨, 아줌마들 뿐이었으니. 조금씩 정을 주기 시작한 건 자신의 방을 갖게 되면서부터다. 어차피 아예 눌러 살게 될 거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하겠다 판단한 그는 그날로 대공사에 들어간다.
여러 계절을 지나며 제법 사람이 살만 한 방이 만들어졌다. 직접 페인트칠한 벽과 망치질한 가구와 애지중지 관리한 식물들, 그리고 이따금 한 침대에서 잠들곤 했던 고양이 막시. 사이사이로 단단한 애착이 자리 잡는 과정은 스스로도 신기한 일이었다. 그의 방은 여전히 만족을 모른 채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투숙객이 없는 날에도 서 대표는 분주히 움직인다. 그럼에도 불편하거나 불만스럽지 않다.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마음도 몸도, 이제는 모두 이 집에 온전히 머물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때때로 집은 무대가 된다. 피난처라고 여겼던 곳에서 그는 기회를 만났다. 하고싶은 것을 했으며 방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도시가 주는 제약과 긴장은 괴로웠으나 나무집만큼은 온통 고요하고 자유로웠다. 어느 날엔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단다. 물리적인 환경에서 오는 어찌할 수 없는 외로움 같은 것들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달랬다. 멀리 있는 이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일도 큰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매일매일 닭들에게 밥을 주는 아침. 에어비앤비에 런칭할 새로운 공간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과정. 객실 청소를 끝낸 후 음악을 들으며 볶는 커피. 모두 여기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곳에 꼭 필요한 일들과 이곳이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며 준규 씨는 또 다른 꿈들을 품게 됐다. 이 집이 나를 길렀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이다.
집이 길러낸 사람들
스테이 변산바람꽃은 멋진 집을 갖고 싶다는 아버지의 꿈으로부터 시작됐다. 아들에게는 피난처이자 무대가 되어주었다. 이제는 딸 역시 묵묵히 무언가를 꾸려가는 중이다. 집은 그렇게 한 가족을 길러낸다. 가족만이 아니다. 친구들과 지역 주민, 문인 레지던시로 운영되던 시기에 공간을 드나들던 예술가들과 도시를 벗어난 투숙객들까지. 늘 열려 있는 이곳은 가족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커뮤니티가 되었다.
신기한 일이다. 그냥 집을 하나 지었을 뿐이니까. 집 하나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고 한 가족의 세월이 쌓이고 다양한 사람들의 관계와 경험이 만들어진다. 무엇이 그 놀라운 시간들을 가능하게 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십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집은 거기 있었다. 다시 십 년이 지나도, 또 십 년이 지나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 같다.
자리를 지키는 것만큼 깊은 위로는 없다. 위로가 필요해서 오늘도 어떤 이들은 변산으로 향한다. 기울어가는 저녁놀 아래로 까치댕이 포구가 보이고, 천천히 파도가 밀려 들어온다. 한적한 시골 바닷가에는 여전히 그대로인 나무집이 있다.
스테이 변산바람꽃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운호리 343
stay-wf.com
* 하이드어웨이 매거진 Vol.2 The Runaway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