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로비 정재석 대표
[people]
_ 윌로비 정재석 대표
정재석 대표는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직접 운영하는 공동 작업 공간과 비영리단체에만 국한되지 않고, 끊임없이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연결하고, 그들의 새로운 기회가 펼쳐질 수 있는 일종의 ‘플랫폼’을 기획해온 그. 하나부터 열까지 본인의 고집을 밀어붙이는 과정이 즐겁다는 정재석 대표를 무더운 일요일 오후에 만났다.
Editor 김정현
Photographer 김해서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프리랜서나 혼자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과 서비스를 만드는 [윌로비], 그리고 프리랜서들을 위한 비영리단체 [프리랜서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제이 혹은 정재석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underover] 에이전시를 만들어 국내 전자음악씬의 프로듀서와 DJ들의 에이전트 역할을 하며 다양한 이벤트와 관여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일들을 하기 전, 뉴욕에서 오래 살았다고 들었다. 그때 생활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나.
학교에서 만난 외국 친구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다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열정적으로 하던 친구들이라, 그 옆에서 나도 ‘내 걸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다. 그들 덕분에 더 많은 친구를 만나게 되어 자연스레 네트워크도 확장됐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볼 수 있는 중요한 베이스가 되어준 셈이다.
그 친구들과 함께 어떤 재밌는 일을 도모해봤나.
당시 한 프랑스 친구가 파리로 돌아가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의 환송식을 겸할 파티를 열게 됐는데, 그게 내가 처음으로 기획하고 진행한 하나의 콘텐츠이자 이벤트였다. 브루클린의 창고형 갤러리를 빌리고 친구들과 선배들을 불러 모아 각자에게 역할을 부여했다. 술과 DJ와 사운드 시스템이 갖춰진, 나름 그럴듯한 파티였다.
처음 시도했으면 느끼는 게 굉장히 많았겠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 일인지 느꼈다. 이후로도 흥미로운 콜라보레이션 작업들을 해보고 싶어서 재능 있는 이들을 모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친구와 지인 너머의 사람들을 섭외하는 과정이 너무 어려웠던 거다.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능력 있고 멋진 사람들을 쉽게 잘 찾을 수 있을까?’라는, 내게 가장 중요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능력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어떤 식으로 일을 따내고 또 서로 협업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이내 프리랜서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어떻게 하면 능력을 갖춘 개인이 밥 벌어먹고 살면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보다 근본적인 물음 아래, 정 대표는 프리랜서의 세계가 훨씬 더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윌로비]는 어떻게 열게 되었나?
원래는 뉴욕에서 가졌던 문제의식과 기획을 발전시켜 프리랜서 관련 비즈니스를 전개하고자 했다. 하지만 사업성이 없다며 아무도 투자를 해주지 않았지.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프리랜서에 관한 인식이나 문화적 기반이 너무 부족하고 편협했던 거다.
참 답답했을 것 같다.
오기가 생겼다. 지금 한국에 얼마나 프리랜서가 많고 이게 왜 이렇게 중요한 부분인지, 현재 국내 제도와 시스템의 실태는 어떤지 내가 직접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창하게 뭔가를 할 수도 없을뿐더러 프리랜서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먼저겠더라. 차라리 그들이 모일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만들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고, 그렇게 2017년 6월, 한남동에서 윌로비가 시작됐다.
왜 코워킹 스페이스였을까.
원래 코워킹 스페이스는 그럴듯한 작업 공간을 갖기 어려운, 말하자면 ‘절박한 개인들’을 위한 공간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코워킹 스페이스는 주로 기업에 치중돼 있었다. 개인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으면서 비용도 저렴한 공간이 마땅히 없다 보니, 윌로비는 충분한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에는 윌로비라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 프리랜서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는 [프리랜서 네트워크]를 만들게 된다. 윌로비 운영이 계기가 된 걸까.
윌로비에서 만난 작업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우리나라의 프리랜서 실태가 정말 열악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제도적 보호와 통일된 시스템 등 프리랜서를 둘러싼 조건에 있어서 제대로 잡혀 있는 게 거의 없더라. 이참에 좀 더 많은 프리랜서를 모아 관련 이슈를 공유하는 자리를 만들자 싶었고, 그해 8월 ‘서울에서 프리랜서로 살아남기’라는 포럼을 열었다. 포럼을 계기로 프리랜서들을 위한 비영리단체 [프리랜서 네트워크]까지 설립하게 되었다.
누구보다 프리랜서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진 정재석 대표. 본인 역시 일종의 프리랜서다.
회사나 기타 조직에 묶이지 않은 채 스스로 다양한 플랫폼과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중이다.
한 번도 회사 생활에 대한 니즈는 없었나? 안정적인 시스템과 규모가 보장되는 조직에 속하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내 성향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내 가치와 신념, 아이디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고집스럽게 기획하고 진행하는 걸 좋아한다. 방향을 설정하고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짜고 하나하나 디테일들을 만지는 일련의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일반적인 회사 조직에 있을 수 있겠나. 혼자 다 해야지. 그렇게 완성한 일이 안겨주는 성취감을 포기할 수가 없다.
그럼 질문을 바꿔서. 지금까지의 궤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판을 짜는 사람’일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연결하고, 그들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일종의 플랫폼을 기획하는 역할. 혼자 할 수 있는 수많은 일 중에서도, 하필 왜 판을 짜고 거기에 모인 이들을 이어주는 일인가?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게 내 재능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처음에는 나도 판 한 가운데서 멋지게 창작하는 아티스트이고 싶었다. 하지만 재능이 없었고, 특별한 능력과 기술을 가진 친구들을 동경하고 질투할 뿐이었다. 그러다 아까 말한 뉴욕에서의 첫 파티를 계기로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특별한 재능이 없지만 그걸 가진 친구들을 잘 이용해서 멋진 것을 만들어낸다면 그게 결국 나의 재능 아닐까.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무언가 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드는, ‘기획자’이자 ‘조력자’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충분히 잘 해내고 계신 것 같다. (웃음) 개인적으로도 매우 공감하는 부분이다.
“Talented people should know each other”
뉴욕에서 한창 준비했던 서비스의 슬로건이자, 내가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품고 있는 방향성이다. 특히 윌로비를 운영하면서 여실히 느낀다. 각자 다 멋지고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서로 모르는 거지? 한 분야의 일만 하다 보면 세계가 좁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윌로비를 거쳐 간 300명끼리라도 서로 알게 된다면 얼마나 더 재미난 일이 벌어질까. 나는 그 기회들이 시작될 장을 만들어 놓으면 되는 거다.
일의 특성상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피곤하거나 지치는 순간도 있을 것 같은데.
엄청 많다. (웃음) 난 기본적으로 집돌이고 혼자서도 잘 논다. 하지만 동시에 자극받는 걸 굉장히 즐긴다. 말하자면 나는 타인과의 관계 그 자체보다도 그들에게서 오는 ‘다양한 자극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 자극이 충분히 쌓여서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느껴지면 굳이 다른 사람을 안 만나도 된다. 혼자서 정리하고 쉴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니까.
안 그래도 궁금한 부분이었다. 일과 생활이 정확하게 분리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밸런스를 지키려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어떻게든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 휴식을 취하면서 필요한 고민들도 정리해보는 거지. 충전한 뒤에는 또 나가서 사람들을 통해 자극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나는 기본적으로 가족과 여자친구 외에는 전부 ‘일’로 받아들인다. 나에게는 모두가 새로운 자극이자 가능성인 셈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언제든지, 나는 관계 맺을 준비가 돼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재밌는 판을 깔고 새로운 이들의 기회를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어떤 계획들을 구상 중인가.
먼저 프리랜서 네트워크의 경우, 프리랜서들을 위한 제도와 법규가 좀 더 빨리 만들어지고 또 개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로비 단체처럼, (대신 돈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설득으로) 관련 연구를 비롯해 영향을 끼칠 수 있을만한 여러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그리고 서울 근교와 지방에 각각 하나씩 두 개의 독특하고 커다란 공간도 기획하고 있다.
엄청 바쁠 것 같다. 근데 그만큼 또 얼마나 멋진 것이 나올지 기대가 된다.
결국 끝까지 내 관심사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알아서 밥 벌어먹고 잘 살 수 있을지’에 관한 것이다.
공간이든, 이벤트든, 서비스든, 모두 이 물음을 바탕으로 진행될 거다.
거기에 나도 좀 불러주면 좋겠다. 아무쪼록 긴 시간 이야기 들려주시느라 고생 많으셨다. 애초 예정했던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괜찮다. 어차피 처음부터 2시간 예상했다. (웃음)
* 하이드어웨이 매거진 Vol.2 The Runaway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