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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Nov 24. 2021

10년간 브랜드를 탐구하고 기록한다는 건

매거진 <B> 창간 10주년 기념 전시 관람기



다들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시는지? 막상 몇 개 딱 집어 말해보려니 어렵게 느껴진다. 아마 너무 많아서일지도.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글로벌 브랜드부터 힙스터들의 사랑을 받는 소규모 로컬 브랜드, 심지어 개인이 브랜드가 되는 퍼스널 브랜드까지. 각자 뚜렷한 매력을 지닌 크고 작은 동시대의 브랜드들은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자극을 선사한다.


그리고 여기, 10년의 세월 동안 브랜드란 존재를 우직하게 탐구해온 사람들이 있다. 한 호에 하나의 균형 잡힌 브랜드를 소개하는 매거진 <B>. 대망의 창간 10주년을 맞아 그간의 방대한 기록을 전시로 선보였다. 이런 거 또 못 참는 나는 오픈 첫날 아침부터 달려갔지. 한 시간 넘게 감탄에 감탄을 거듭한 전시 관람기를 천천히 풀어보겠다.




10 YEARS ARCHIVE DOCUMENTED BY MAGAZINE B

전시장 섹션별 요약


1층
(1) 하얀 벽면을 가득 채운 역대 매거진 B 아카이브
(2) 매거진 B가 브랜드를 향해 던져온 10년간의 질문들

2층
매거진 B의 관점으로 해석한 89개 브랜드의 가치와 아이덴티티

3층
(1) 창립자의 인터뷰를 통해 들여다보는 브랜드와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사람의 관계
(2) 감도 높은 영상으로 담아낸 브랜드 상징 오브제

4층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에서 푸드 다큐멘터리 매거진으로의 확장






1층




시작부터 압도된다. 지난 10년의 기록을 한눈에 보여주면서, 그 쉽지 않은 과정을 굳건히 버텨온 자부심을 드러내는 섹션. 하얀 벽면을 가득 채운 매거진 B의 아카이브 월이다. 동일한 판형과 동일한 제호 레이아웃 안에 각기 다른 브랜드가 담겨 있어, 하나하나 시선을 옮겨가며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다. 전시의 막을 열기에 충분한 임팩트다.  



그리고 이어지는 첫 번째 전시관. 작은 미로처럼 구성된 조형물 구석구석에 질문들이 적혀 있다. 바로 지난 10년간 매거진 B가 전 세계 다양한 브랜드들을 만나 던진 질문들. “좋은 브랜드란 무엇인가?”, “어떤 철학으로 브랜드를 만들고 있는가”라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브랜드의 가치와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실마리가 되어줄 질문을 제공한다.




좋은 답은 좋은 질문이 끌어낸다. 브랜드의 철학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답이 좋은 답이라면, 브랜드 철학의 본질을 곱씹을 수 있도록 예리하게 파고드는 질문이 좋은 질문이겠지? “상업적인 브랜드가 진실하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은 브랜드가 상투적으로 외치기 쉬운 진정성에 대해 고찰하게 하고,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는데,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드나요?”라는 질문은 ‘더 나은 삶’이라는 추상적인 목표의 구체적 실행 방식을 설명하도록 한다. 관람객 또한 질문들을 곱씹어 보게 되는데, 그 사이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인터뷰로 추정되는 음성이 들려온다. 3층 전시관에 관한 일종의 스포일러 장치라고 할 수 있겠다.






2층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자. 매거진 B의 행보와 의의를 설명하는 공간을 지나면, 이제 두 번째 전시관에 들어설 차례. 양으로나 내용으로나 이번 전시에서 가장 힘을 준 섹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첫 호 주제인 재활용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부터 방금 막 발간된 아웃도어 브랜드 ‘아크테릭스’까지, 그간 매거진 B가 다뤄온 89개의 브랜드를 89개의 개별 전시대로 펼쳐 보인다.




방대한 아카이브에 압도되면서도, 아카이브를 구성하는 여러 브랜드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동일한 규격의 전시대와 동일한 폰트로 쓰인 브랜드명. 하지만 각 브랜드 오브제는 크기도 색깔도 모양도 전부 다르다. 단순히 브랜드 대표 제품 하나를 올려뒀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매거진 B의 관점으로 바라본 ‘브랜드의 가치를 상징’하는 오브제”라는 소개 문구가 정확하다. 이 브랜드가 어떤 정신과 가치를 내세우는지, 그 목표 아래 어떤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며 이미지를 구축해왔는지를 매거진 B의 시각으로 절묘하게 해석했다. 섬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깨알 같은 디테일과 함께.





가령 이런 식이다. 스위스 가구 브랜드 ‘비트라’는 LCW나 하트 콘 체어 등 아이코닉한 제품들의 미니어처를 통해 가구의 유려한 디자인을 강조한다. 반면 ‘이케아’는 완제품이 아닌 조립 전 상태의 가구와 못을 비롯한 각종 부품을 보여줌으로써 DIY 조립이 중요한 브랜드 특징을 상기시킨다. 또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레고’의 가능성을 표현하기 위해 레고 브릭으로 특별 제작한 매거진 B 레고 편 커버와 달리, ‘구글’과 ‘인스타그램’은 누구나 아는 홈 화면만 아이맥에 툭 띄워놓은 심플한 디스플레이를 선보인다. 내가 보자마자 육성으로 감탄을 내뱉고야 말았던 두 브랜드? 로고 하나 없이 세계 각국의 여행지에서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흩뿌려 놓은 ‘에어비앤비’. 그리고 단순한 탄산수를 넘어 다이닝 워터라는 새 지평을 연 만큼 정갈한 파인 다이닝 세팅의 일부로서 보여준 ‘산 펠레그리노’.


89가지 브랜드 오브제를 감상하며 문득 궁금해졌다. 나라면 이 브랜드를 어떤 상징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3층




3층은 멀티미디어 섹션으로 꾸며져 있다. 브랜드 오브제를 감도 높은 영상으로 담아낸 아트 월과, 브랜드를 창립하고 이끌어온 리더 8인의 인터뷰. 가장 어두운 조도로 채워져 콘텐츠에 몰입하기 좋은 공간이다. 주중 오전인데도 관람객이 적지 않았는데 특히 인터뷰 영상을 집중해서 보는 이들이 꽤 많았다.




‘블루보틀 커피’, ‘라파’, ‘아페쎄’, ‘스노우피크’ 등의 브랜드 창립자뿐만 아니라 매거진 B를 발행하는 ‘조수용’ 대표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다. 그의 말을 유심히 듣다 보니 무언가 하나 힌트를 얻은 것 같았다. 브랜드는 결국 그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과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거. 가만, 매거진 B가 지난 10년간 창립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묻는 내용 아니었나? 당신 개인의 세계와 브랜드 창립자로서의 정체성은 어떻게 겹쳐집니까. 그러니까 브랜드와 브랜드를 만드는 이들의 유기적인 관계야말로 매거진 B가 가장 주요하게 탐구해온 테마일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태도와 취향이 고스란히 투영되는,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브랜드를 잡지 한 권으로 접해볼 수 있었던 거고.






4층




마지막 4층 루프탑에서는 매거진 B가 아닌 매거진 <F>를 만날 수 있다. 2018년부터 매거진 B와 배달의민족이 협업해 만드는 푸드 다큐멘터리 매거진. 소금, 치즈, 나물, 토마토 등 인류의 식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일상의 식재료를 주제로 삼는다.




전시 속 전시 컨셉으로 펼쳐지는 매거진 F의 이야기. 그간 다뤄온 식재료를 관련 조리 도구와 함께 진열해둔 공간이나 각 식재료에 담긴 메시지를 담은 알록달록한 플래그 등으로 구성돼 있다. 관람객에게 상하목장의 아이스크림도 나눠준다는데 아쉽지만 나는 못 먹었다. 전시 방문 예정인 독자분들은 꼭 드셔보시길.



기나긴 관람기를 쭉 따라왔다면 알 수 있겠지. 내용의 흐름과 관람 동선 면에서 짜임새가 훌륭한 전시라는 걸. 마치 구성이 잘 잡힌 책을 읽는 것 같다. 역대 매거진 모음으로 압도하고 들어가는 전시의 시작은 책의 ‘표지’. 브랜드를 향한 편집부의 질문들은 이후 내용의 방향성을 드러내는 ‘머리말’ 같고, 89가지 브랜드 오브제 섹션은 제일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에너지 있게 풀어내는 ‘본문’, 서문과 본문을 따라가며 품게 된 질문들에 대한 답을 던져주는 3층 브랜드 창립자 인터뷰는 ‘결론’을 연상시킨다. (거기에 푸드 다큐멘터리 매거진으로의 확장과 진화를 보여준 마지막 전시관은,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이라는 본 콘텐츠의 ‘스핀오프'를 소개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시간 내어 가보시기를 추천한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축적된 아카이브의 힘을 느끼고 싶은 분들, 브랜드와 브랜딩에 관심 있는 분들, 그런 건 다 모르겠지만 멋진 공간에서 문화생활 한번 해보고 싶은 분들 모두.


전시는 이달 30일까지다.



10 YEARS OF ARCHIVE : DOCUMENTED BY MAGAZINE B


• 전시 일정 : 11.10(수) — 11.30(화)

• 전시 장소 : 피크닉 (서울 중구 퇴계로6가길 30)
• 관람 시간 : 화-일, 10-18시 (입장마감 17:15)

• 티켓 가격 : 일반 15,000원  입장+토크쇼 25,000원




▻ 이 관람기는 온라인 미디어 '디에디트'를 통해 발행되었습니다. 전문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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