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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 Jan 30. 2021

완전한 사랑이라 믿었어

 난 그녀를 보자마자 반했어. 적당한 크기의 눈에서 밀려오는 은은한 빛, 하얀 목을 감싸고 어깨로 넘어가는 머리칼. 그리고 나를 보며 가볍게 올라가는 입꼬리. 이 모든 게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며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멀어졌어. 둘만 남은 느낌. 외로우면서 따뜻했어. 평생 잊지 못할 거야. 내 인생의 순간들에 설명을 달 수 있다면 그때를 사랑을 예감한 순간이라고 적을 거야.


 사랑에 빠졌던 건 아니야. 방금 내가 ‘사랑에 빠진 순간’이 아니라 ‘사랑을 예감한 순간’이라고 했잖아. 그때는 빠졌다고 생각했지. 지금은 아니야. 우리는 흔히 생각해. 세계에 우리 둘만 존재한 듯 한 경험을 하면 사랑에 빠진 거라는 생각. 또 착각하기도 하지. 그런 경험을 해야만 사랑에 빠진 거라는 착각. 그러지 않아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데. 그래도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데. 내가 그런 착각을 했어. 무슨 말을 섞기도 전에 나는 그녀와 사랑에 빠진 거라며 속으로 기뻐했지.


 착각은 괜찮았어. 나에게 용기를 줬으니까. 그녀를 더욱 간절히 원하게 했고 어떻게 하면 그녀도 나를 원하게 할지 노력하게 했거든. 내 몸을 이루는 세포 하나하나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감각 느껴본 적 있어? 너도 느껴봤을 거야. 팔팔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한 방향으로 달려 나갈 때 달아오르는 열기. 무엇이라도 이룰 것 같지.


 내가 진짜 멍청했던 게 뭔지 알아? 완전한 사랑을 믿은 거야. 덜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신과 같은 사랑. 그 순간 내 모든 것을 채워줄 사랑을 만난 거라고. 아리스토파네스가 그랬지. 인간은 원래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맞붙인 존재였다고. 그런데 너무 강력해서 신이 둘을 갈라놓았다고. 그래서 두 사람은 떨어져 버린 운명의 상대를 찾아 헤매는 거라고. 내 등에 붙어있던 존재라 생각했던 거야. 그녀가 나와 사랑하기로 한 순간 우리는 완전해졌다고. 신과 같아졌다고.


 완전한 사랑이었을까? 그랬다면 내가 지금 혼자 있지는 않겠지. 멍청해서 혼자 있다고 생각하니까 씁쓸하다. 한심하고. 한탄 그만하고 다시 이야기할게. 난 완전한 사랑을 원하기도 했지만 쉬운 사랑도 원한 거였어. 아니, 쉬운 사랑을 더욱 원했지. 등이 너무 시리고 아파서 어서 빨리 고통이 끝나길 바랐어. 더는 버틸 수 없다고 나를 구해달라고 속으로 외치고 있었지. 그런데 그녀가 나타난 거야. 나의 구세주. 그녀와 맞대지도 않았는데 통증이 희미해지더라. 취한 거야. 그동안 겪은 모진 세월이 끝나고 완전해질 때가 왔다는 믿음에 취해버린 거야. 쉽게 사랑을 허락해버린 거야.


 나 참 바보 같지. 아직도 생각해. 내가 무얼 했으면 실패하지 않았을까. 돌아서 가버린 그녀를 잡을 수 있었을까. 부질없는 것 알아. 후회라는 게 닻처럼 마음에 걸려 어디로도 못 가게 한다는 것도 알아. 그래도 생각해보는 거야. 반성을 하는 거야. 한참을 생각하다 나온 결론이 뭔지 알아? ‘사랑에 빠진 순간’이 아니라 ‘사랑을 예감한 순간’이라 생각하는 거야. 예감한다는 건 일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잖아. 아직이란 말은 완전과 멀기도 가깝기도 하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기. 완전한 사랑이라 착각하지 않으려면 꿋꿋하게 나아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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