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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계피 Mar 17. 2023

아저씨가 허락한 창작 노동시간?

나의 아저씨는 달콤하던데 왜 이 아저씨는 살벌한 가에 관하여

나는 유서 깊은 패션 김씨로 본관은 파평 윤씨 **공파 27대손 녀자를 돌림자로 쓰는 항렬이다. 아저씨는 나와 같은 파평 윤씨 **공파 26대손(찾아보니 35대손이라는 말도 있지만 무튼)으로 석자를 돌림자로 쓰는 항렬로 우리 아버지와 같은 항렬, 즉 나의 아저씨다. 그런 고로 나의 아저씨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뭐, 족보야 사고파는 일이 흔하여 내 족보가 잘못되었을 가능성도, 그가 나보다 항렬만 위이지 손 아랫사람일 수도 있지만.


트위터 @museun_happen 계정


해당 사진은 '삶의 질이 상승하는 주 69시간 근무 시간표'로 널리 알려진 이미지다.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이 해당 이미지를 본인의 트위터에 올리며 아마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심상정 국회의원이 해당 이미지를 올리기 전에 봤는데, 이 이미지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취업을 포기할까?'였다. 아침 6시에 기상, 운동 40분, 샤워 및 출근 준비, 출근, 업무, 창작, 취침의 스케줄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저런 스케줄로 근무를 하게 되면 도저히 창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내 예술노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며칠 괴로웠던 찰나. 고용노동부에서 이런 이미지를 공개했다.


고용노동부 페이스북


이 이미지를 보고 나는 국가가 사람의 노동력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은 자처하고 뭐랄까. 인생이 아찔해졌다. 빚과 대출이 없는 예술가들은 어찌 생활할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나처럼 빚과 대출이 있어 일정한 소득이 꼬박꼬박 필요한, 직장에 다니는 생활 예술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인생이 아득해졌다. 아저씨, 나의 아저씨는 예술가들에게 주의 예술도 몰아쳐서 작업하라고 권하는 것 같다. 전업을 할 수 없으면 관두든가,라고.


솔직히 주 52시간의 노동시간도 제대로 엄수하지 않는 회사가 부지기수고 그런 회사에서는 새벽 1시까지 야근하고 집에 가는 일이 많았는데... 아예 일을 저따위로 하라고 한다면, 인간에게 자유롭게 사유하고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을 앗아간다면 나 같은 예술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은 더욱 열약해지는 것은 물론, 예술 활동은 그 자체로 브르주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라고 감히 단언해 본다.



주 69시간의 노동을 하게 되면 자유롭게 허락되는 시간은 수면시간을 포함하여 주에 99시간이다. 그 시간에 예술노동이 가능할까? 잠도 자지 않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일이 가능할까? 나의 아저씨는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던진 말이었을까, 싶다.


사실 엄청난 분석을 하고 싶었으나,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 경찰에 잡혀 갈까 봐 두려워서 쓴 말을 많이 지웠다. 인간의 삶은 노동이 전부가 아니다. 단언컨대 인간의 삶이란 형이상학적인 것이며 이해할 수 없는 사건과 사고가 많은, 소설이나 음악 같은 것으로 전부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다. 예술보다 삶이 위대하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 삶이 지속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우리가 꿈꿔야 할 것은 무엇인가.


꿈은 우리로 하여금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잠시 머물 수 있도록 하는데, 그것에서 희망을 보고 내일을 보며 살아갈 원동력을 얻는 것이 인간의 아름다운 지점인데. 자본 시장에서 노동이라는 미명하에 우리의 삶이 이렇게 함부로 망가져도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보다 삶이 삶 다운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세계가 흘러야만 한다.


꿈을 꾸게 해 주세요.


보다 사랑스러운 방식으로,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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