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야, Gemini야 도와줘!
"휴가 승인은 났어. 백업 담당할 분이 업무에 지장 없도록 업무 매뉴얼을 제대로 만드는 게 조건이야."
"잘됐네. 그럼 휴가 신청 할 거야?"
"저기... 우리 어디 갈지 며칠 동안 갈지 아무것도 정한 게 없어. 그냥 장기 휴가로 허락받은 거야."
"(띠용)"
그렇다. P는 J에게 동유럽을 가자고 했지 그 외 어떤 것도 구체적으로 제의한 적 없다. P는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향이 있고, 저지르고 난 후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면이 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J는 그 상황에 익숙했고 '내가 준비하지 뭐' 이런 상태였다. 어차피 'J가 원했던 곳이니까'라는 이유로 동유럽으로 행선지가 정해진 이상 본인이 계획해야 할 게 뻔했다.
그래서 J는 다음과 같이 제의했다.
"내가 일정을 알아볼 테니 어디 갈지 우선 정하자."
P는 고민이 됐다. 딱히 동유럽에 관심이 없었는데 어떤 의견을 줘야 할지 난감했다.
"음... 할슈타트 가고 싶지? 그리고 넌 야경을 좋아하니까 부다페스트랑 프라하도 가고 싶을 거고."
J가 평소 드러냈던 취향을 고려해서 물었다. J는 동의했다.
"응, 그리고 작년에 동유럽 알아보니까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도 넣으면 좋겠다 싶더라."
"어디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가. 할슈타트를 가겠다면 오스트리아 일정은 내가 짤게. 예전에 내가 할슈타트를 간 건 잘츠부르크에서 당일치기로 간 건데, 여러 나라를 간다면 잘츠부르크까지 갈 여유까지는 없을 거 같긴 해."
"너 가고 싶은 곳은 없어? 내가 원하는 곳만 가기는 좀 그런데."
"딱히 없긴 한데... 프라하를 간다면 그 김에 체스키 뭐시기...는 가보고 싶다 정도? 프라하보다 거길 더 좋게 얘기하는 경우도 얘기 들은 적 있어서."
P가 말하는 '체스키 뭐시기'는 체스키크룸로프를 말했다. 체코 남부에 있고, '크룸로프 성'으로 유명하며 구 시가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
"바르샤바도 궁금하고, 블레드 성도 예뻐 보이던데. 대충 폴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를 후보군으로 해서 짜봐야겠다."
"패키지여행도 아니고 여섯 나라나 가겠다고? 휴가는 얼마나 낼 생각인 거야? 게다가 시간도 없는데 언제 다 알아보려고?"
"꼭 다 가겠다는 건 아냐. 우선 ChatGPT에게 물어보지, 뭐."
J는 ChatGPT(챗지피티) 유료 사용자로, 본인 관심사 리서치 등에 사용하고 있다. Claude(클로드), Perplexity(퍼플렉시티) 등도 써봤는데 본인 취향에는 하나를 물어보면 열까지 대답해 주는 ChatGPT가 가장 적합했다. P도 공부할 때 참고할 용도로 AI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J가 ChatGPT를 좋아하는 바로 그 이유로 오히려 꺼려한다. A를 물어보면 A만 답변했으면 좋겠는데, A', A''까지 답변하는 면이 피곤했다. 그런 P가 선택한 AI는 Gemini(제미나이)인데, A를 물어보면 A에 대해서만 답변하되 "A'와 A''에 대해서도 궁금하다면 물어보라" 식으로 제안하고, 답변할 수 없는 건 답변할 수 없다고 하는 점이 맘에 쏙 들었다. 게다가 아직은 무료로도 꽤 쓸만했다.
J는 위에 언급한 후보군의 대표적인 관광지와 일정을 ChatGPT에게 물어봤다. P의 예상대로 저 여섯 개의 국가를 가는 것은 무리였다. J는 5일의 휴가를 내고 그 앞뒤로 주말을 붙여 6박 8일이나 7박 9일 정도를 생각했는데 애당초 말도 안 되는 목표였다. 그나마 8일 일정으로 맞히려면 체코-오스트리아-헝가리-크로아티아가 붙어있어 이 네 국가로 집중하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나왔다. 특히나 이렇게 하면 필수 행선지로 꼽았던 프라하, 체스키크룸로프, 할슈타트, 부다페스트, 두브로브니크를 모두 갈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갈 수 있다'일뿐, J가 꼭 1박 이상 머무르길 원했던 부다페스트, 프라하, 그리고 할슈타트 일정을 고려해 달라고 ChatGPT에게 요청하니 최소 10박은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J는 결심까지가 오래 걸렸을 뿐 막상 결정되니 거침없었다. 기왕 가는 거 10일 휴가를 내어 2주 일정으로 가기로 했다. 다행히도 얼마 전에 회사에서 장기근속 휴가를 받아서 휴가 자체는 부족하지 않았다.
이제 행선지와 여행 기간은 대충 나왔다. 생각보다 빠른 시간 내에 정리되어 만족스러운 마음에 J는 앞으로도 ChatGPT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여행지에서도 통역가로 써먹어야겠다 결심했다.
하지만 다음 차례를 앞두고 J의 표정은 다시 어두워졌다. 행선지가 정해졌으니 항공권 예약을 해야 하는데, 항상 6개월 이상의 여유를 두고 여행 계획을 세우곤 했던 J 입장에서는 처음 해보는 '호다닥' 여행 준비에 걱정이 앞섰다.
"이렇게 임박해서 가는 게 처음이라 항공권이 있을지 모르겠네."
"있긴 있을 거야. 비쌀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