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리지 항공권의 후폭풍
J가 항공권을 예약하기 전에 ChatGPT를 통해 알아본 바로는 체코 - 오스트리아 - 헝가리 - 크로아티아 순으로, 즉 북에서 남으로 이동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남에서 북으로 이동하는 순탄한 경로였다. 하지만 J가 예약한 출국 항공권은 부다페스트행, 즉 헝가리로 가는 항공권이었다. 이는 네 나라의 위도상 거의 중앙에서 시작한다는 의미였다.
처음에 J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ChatGPT에게 물어보면 해결해 주겠지! 이 녀석은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줄 거야!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4개 국가 중 위도 상으로 중간 지점에서 시작해 버리니, 어딘가에서는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시간을 하루 정도 잡아야 했다. 그나마 가장 효율적인 경로로 추천받은 게 다음과 같았다.
인천 - 비행기 - 부다페스트(헝가리)
부다페스트(헝가리) - 기차 - 빈(오스트리아)
빈(오스트리아) - 기차 - 할슈타트(오스트리아)
할슈타트(오스트리아) - 버스 - 체스키크룸로프(체코)
체스키크룸로프(체코) - 버스 - 프라하(체코)
프라하(체코) - 비행기 - 자그레브(경유지/크로아티아) - 버스 - 플리트비체(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크로아티아) - 버스 - 스플리트(경유지/크로아티아) - 버스 - 두브로브니크(크로아티아)
이해를 돕기 위해 지도에서 경로를 표기해 보면 이렇다.
J는 P가 이런 일정을 수긍할지 걱정했다. 하지만 의외로 P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P는 우선 경로에 플리트비체가 있는 것이 반가웠다. 예전에 어디선가 플리트비체의 풍경을 보고 반해서 구글맵에 '언젠가 가볼 곳'이라는 리스트에 저장한 적 있었다. 사실 저장했던 걸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J가 말해준 경로를 구글맵에서 찾아보다 알게 됐다. 또한 오스트리아를 가본 적 있는 P 입장에서는 빈에서 할슈타트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 예상했고 심지어 다음 경로를 가려면 할슈타트에서 다시 빈에 돌아와야 하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할슈타트에서 체스키크룸로프로 바로 갈 수 있다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맘에 걸리는 부분은 역시 중간에 낀 이동일이었다. 아예 남북으로 쭈우욱 붙도록 헝가리 대신 슬로베니아를 넣었으면 좋았을 거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야경 보는 걸 좋아하는 J가 프라하와 부다페스트는 절대 빼지 않을 걸 알았기에 이내 어쩔 수 없다고 인정했다. 대신 J가 2주의 일정을 잡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루 정도는 이동일로 잡아도 큰 타격이 있을 거 같지 않았다. 기왕 상황이 이리된 거, 대부분 육로로 이동 가능한 유럽 국가 내에서 비행기를 타는 경험도 좋다고 생각했다. 크로아티아에서 육로 이동 시간도 꽤 걸릴 거 같으니.
이렇듯 P가 쉽게 넘어갔지만, 오히려 더 큰 문제가 J를 기다리고 있었다. 프라하에서 자그레브로 가는 직항 비항기가 검색되지 않았다. 프라하에서 자그레브로 주 4회 직항 비행기가 있는데, 이동일로 잡은 날이 하필 직항 비행기가 없는 요일이었고, 경유를 하자니 시간 낭비가 심했다. 직항 비행기가 있는 요일로 바꾸자니 앞 일정이 꼬였다. 부다페스트 야경, 프라하 야경, 할슈타트 - 이 중 어떤 것도 J 입장에서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루 미루자니 크로아티아에서의 일정이 너무 촉박했다.
"버스나 기차라도 알아봐야 하나..."
"얼마나 걸리는지, 시설은 어떤지를 봐야 할 듯?"
"야간 버스를 이용해 보면 어떨까 했는데 좌석 시설이 썩 좋지는 않은 거 같아. 눕힐 수 있는 좌석은 아닌 거 같아."
J는 고민에 빠졌다. 즐겁자고 가는 여행인데 혹시라도 P의 몸이 아플 수 있을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J와 P 둘 다 몸 상태가 완벽하진 않다. J는 경추 디스크를 조심하라는 경고를 들은 바 있고, P는 허리 디스크 때문에 이미 두 번이나 입원한 전력이 있다. 그래서 P는 여행 다닐 때 장거리 이동에 민감한 편이다. 오래 앉거나 많이 덜컹이는 도로를 지나거나 그 외 허리가 불편한 상황이 길어지면 위험할 수 있음을 알기에.
J는 프라하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꼭 자그레브가 아니더라도 근처로 갈 방법이 있나 찾고 싶었다. 어쨌든 그 근처에서 플리트비체로 이동하면 되는 일 아니겠는가? 그러다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프라하에서 스플리트를 갔다가 플리트비체를 가는 건 어때? 스플리트로 가는 직항은 있어!"
ChatGPT의 추천 경로 상에는 자그레브에서 플리트비체로 갔다가 스플리트를 경유하여 두브로브니크를 가는 방법을 제시했는데, 어차피 P의 관심 여행지는 블리트비체이고 J의 관심 여행지는 두브로브니크이니 아예 자그레브를 빼자는 제안이었다.
"나는 좋아! 기왕 그리 된 거 스플리트에서 1박 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 나름 크로아티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는데 구경이라도 좀 하자."
그리하여 아래 지도처럼 정리됐다. 파란색 화살표가 ChatGPT 추천 경로에서 바뀐 부분이다.
좀 돌아가게 됐지만, 스플리트에서 1박 해보는 경험도 나름 재밌겠다 생각에 둘은 신났다. 둘의 공통점 중 하나는 새로운 경험을 좋아한다는 것이라 자그레브든 스플리트든 아무튼 예정에 없던 여행지가 생긴 건 설레는 기회였다. 게다가 스플리트는 역사가 깊은 도시이고 기원전 그리스의 거주지였다니 뭔가 있긴 할 거 같다!
자, 그럼 다음 차례는 이동 수단과 숙소를 예약하는 것이 되겠다. P 혼자 가는 여행이었다면 아마 숙소만 예약하고 여행지 내에서의 이동은 현지에서 알아볼 것이다. 하지만 J 입장에서는 현지 이동 수단 예약까지 마무리해 두어야 불안이 덜하다. P 입장에서는 '뭐 그렇게까지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현지에서 할 일을 먼저 하는 것이고, J는 그걸 해야 마음의 평화를 찾을 테니 P도 돕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