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오래된 생각입니다.
나의 그 생각을 들은 첫 대상은 우습게도 당시 내가 있던 조직의 실장님이었다. 업무 면담 시간에 회사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얘기하다가 나의 심연 저 깊은 곳에 있던 속내를 말하고 말았다. 나의 의도는 '다니는 동안 내가 몰입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지만 냉정히 말해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을 뱉고 만 셈이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내 의도는 먹혀들었다. 전에 하던 업무보다 재밌는 일을 할 수 있는 부서로 갔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좋았다.
내가 왜 정년까지 회사를 다니지 않기로 결심했는지 그 과정을 설명하려면 좀 먼 옛날부터 시작해야 한다.
중고등학교 때 부모님은 내가 공부하는 방식이나 취미 생활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다만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서울 소재의 4년제 대학교를 가서 졸업하고 회사에 취업하는 것. 어떤 전공을 택하든, 어떤 회사를 가든 그건 내 자유였다. 아, 한 가지 제약은 있었다. 예체능은 제외할 것. 사교육에 돈을 들이고 싶지 않았던 부모님의 선택이었다.
모든 게 나의 선택이고 제약 하나만 있는데도 왜 이리 선택하기 힘들던지. 뭘 해야 할지 모른 채 그냥 '서울 소재의 4년제 대학교'만 목표로 공부하던 나는 고3 때 늦바람이 났다. 게임에 빠져버린 것이다. 하굣길에 PC방에 들러 한 시간 정도 게임하고 귀가하는 것이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게임을 내가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리고 나는 컴퓨터공학과로 진학했다. 게임 전문 학과가 있는 학교도 있었지만 내가 대학을 갈 당시에 그런 학과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교에는 없었다. 차선으로 택한 셈이었다.
그래서일까? 취업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게임 회사를 가고 싶었지만 계속 낙방했다. 반면 IT 회사는 운 좋게 골라갈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부모님의 두 번째 조건인 회사에 취업하기를 달성하려면 현실적으로 나를 뽑아주는 곳에 가야 했고 그렇게 IT 회사로 발을 딛게 됐다. 첫 시작은 서울이었지만 IT 회사 대부분이 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로 거점을 옮기면서 커리어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나는 방황을 많이 했다. 건강 상의 이유로 직무를 바꿔야만 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고 회사의 사정에 의해 내 일이 갑자기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이직도 많이 한 편이었다. 연봉에 큰 욕심은 없었지만 내가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또한 회사의 분위기도 자유로운 쪽이 좋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회사가 커가면서 이런저런 제약이 생기면 이직을 택하곤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여러 회사를 거치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
1. 아무리 자유로운 회사였어도 회사가 커지면 자유가 제한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법칙인 것 같다.
2. 내가 언제까지나 마냥 자유로운 회사만 찾아다닐 순 없다. 나이 먹으면 이직도 더 어려워질 거다.
3. 커리어를 쌓을수록 경력에 따른 책임을 요구하는데 나는 위로 올라가고 싶은 욕심은 없다.
4. 위로 올라가지 않으려면 일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일하는 게 의미가 있는가?
5. 단지 월급 받으려고 시키는 일만 하면서 재미없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나에게 맞는 것인가?
6. 기대 수명 백세 시대인데 그렇게 일하면서 60세에 정년퇴직하고 나면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7. 정년퇴직까지 다닌다 해도 경력에 따른 책임을 요구하는 특성을 고려할 때 갈수록 일이 많아지고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 거다. 회사원 다음을 준비할 시간은 갈수록 없어진다.
8. 그렇다면 늦어도 40대에는 다음 직업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정년을 채우기 전에 퇴직하여 회사에 소속된 직업이 아닌, 소속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두 가지였다. 첫째, 나는 그래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둘째, 언제 퇴사할 것인가. 일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루고 이번 편에서는 시점에 대한 이야기를 우선 다루고자 한다.
처음 그 흔들림이 온 때는 2017년이었다. 사실 위에 적은 생각 중 5번까지의 생각을 하게 된 때이기도 하다. 슬슬 경력의 무거움을 알게 된 때, 홀로 떠난 여행지에서 식사 중 우연히 동종업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IT 업계의 현실에 대한 한탄을 서로 나누다가 '이 업계에 계속 있는 게 맞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다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무엇보다 '무슨 일'을 할 것인가가 그때는 정립되지 않았다. 또한 월급이 주는 달콤함을 떨치지 못했다. 한창 돈 쓰는 재미에 빠져있을 때였고 맛있는 음식과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건강 관리한다고 필라테스를 다니던 것도 지출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 심지어 매달 갚아야 하는 대출금도 있었다.
이후 다시 나름 재밌는 일을 하게 되면서 잠시 '직장인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꿈을 접었지만, 가끔 현타가 올 때마다 고민이 되었고 그만큼 생각도 진전되었다. 이때는 보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기 시작했다. 월급이 없어질 경우 내가 돈을 어느 정도 아끼고 감수할 수 있는가, 회사에서는 어떤 복지까지 챙기는 것이 효율이 좋은가 등을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1. 엄마와 내가 가진 보험은 20년 납부하면 100세까지 보장이 되는 상품(비갱신형, 현재는 팔지 않음)이다. 완납이 머지않아 조만간 매달 고정 지출 중 두 가지가 줄어든다.
2. 대출금을 다 갚을 때까지 회사를 다니려면 정년에 가까울 때까지 다녀야 한다. 대출금을 중도상환하거나 월급이 없어도 대출금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3. 회사 복지 중 부모님 칠순에 대한 것까지는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대충 보험 완납 이후 직장인을 그만하자, 그리고 그전까지 할 일을 찾아보자-라는 큰 그림을 그렸다. 또한 시간이 날 때마다 퇴사하기 좋은 시기를 찾아보곤 했다. 연말정산을 마치고 퇴사해라, 종합소득세신고기간 이후에 퇴사해라 등등 이런저런 주장이 있었고, 각자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내 상황에 가장 좋은 시기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2023년 하반기에서 2024년 말까지, 나에게 큰 시련의 시기가 왔고 거의 매일 '퇴사하겠다'는 소리를 달고 살았다. 옆에서 보기에도 내 상황이 위태로워 보였는지 가족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는 모양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