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이라는 계란

계란을 어느 바구니에 어떻게 넣을 것인가

by 김연큰

어떤 회사를 다니고 있을 경우 재직 1년이 되어갈 시점에 퇴직금에 대한 안내가 오기 마련이다. 퇴직금은 보통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중 택하여 운용하거나 회사에서 한쪽을 정해서 운용한다.


사회초년생 때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고 난 DB형을 선택했다. DB형의 경우 퇴직금 수준이 사전에 결정되어 있고 적립금에 대해 회사가 운용하는 형태이다. 흔히 알고 있는 일반적인 퇴직금 개념이기도 하다. 퇴직 직전 3개월 평균임금을 기반으로 계산하는 방식이다.


직장인 생활이 일정 이상 지났을 때, 여윳돈을 가지고 슬슬 주식도 해보고 채권도 해보고 외환 투자도 해봤다. 당연히 이득을 본 때도 있고 손해를 본 때도 있었다. 그렇게 재테크의 요령을 조금 알아갈 즈음부터는 퇴직금도 DC형을 택했다. DC형은 매달 회사에서 내 퇴직급여 계좌에 부담금을 이체하면 그에 대해 내가 직접 운용하는 방식이다. 운용 방식에 따라 원금보다 적어질 수도 있고 DB형보다 많은 수익을 낼 수도 있다. 내가 투자를 한 것이니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참고 1: 퇴직연금제도종류 - 한화생명
https://www.hanwhalife.com/static/main/retirement/contents/recognize/RC_RRST000_T10000.htm




재직 중 퇴직금 관리


내가 마지막으로 다닌 회사는 퇴직금을 DC형으로만 운용할 수 있었다. 회사와 연계된 금융사에서 퇴직금에 대해 안내할 때 본인이 제대로 관리할 자신이 없으면 가장 높은 금리의 예금을 들어두면 된다고 했다. 나 역시 이전 회사에서는 DC형이었다 해도 예금에 예치하고 만기 되면 다시 예금으로 넣는 방식으로 관리했다.


하지만 2022년 말부터 나는 퇴직금을 기존과 다르게 운용했다. 전체의 30%가량의 금액을 ETF나 펀드 등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상품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크게 불리겠다는 욕심은 없었고 그동안 습득한 투자 방식을 테스트하려는 목적이었다. 일정 부분 원금 손실이 되는 것도 각오했다. 이렇게 테스트한 이유는 그나마 월급이라는 고정 수익이 있을 때 이런 걸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이 들어서였다.


당시 시점 기준으로 우리나라 주식은 솔직히 신뢰가 가지 않아 미국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ETF에 주로 투자했고 결과적으로 내 예상이 적중했다. 이 회사에 있는 동안 미국 주식의 상승폭이 컸다. 전체 금액 중 30% 정도만 투자했음에도 퇴사 전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19.89%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아마 투자 비중을 더 늘렸다면 더 큰 수익률을 기록했겠지만 난 이 결과도 충분히 만족했다. 퇴직금 실수령액이 얼마나 될지 몰라도 저 정도 수익을 냈으면 그래도 원금보다는 좀 더 받겠구나 기대가 됐다.

퇴사 전 마지막 확인했을 때의 퇴직금에 대한 투자 성적표
본문과 관련 없지만 현 상태를 부연하자면 지난 6월 대선 이후로 미국 투자 비중을 약간 줄이고 국장과 금을 투자 대상에 포함했다. 국장의 경우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봤고, 금은 세계 정세를 볼 때 오를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퇴직금 수령 준비


그동안은 퇴사의 목적이 이직이었기에-즉 계속 수입이 발생하는 상황이기에 퇴직금을 받으면 내가 별도로 관리하고 있는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로 이체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언제 내가 수입이 발생할지 모르는 세계로 떠나는 것이었기에 퇴직금을 받으면 재분배하기로 결정했다.


퇴직일이 지나고 일주일 후 즈음, 회사와 연계된 금융사에서 연락이 왔다. 기존 IRP 계좌에 이체를 할 수도 있고, 신규로 IRP 계좌를 만들어서 그쪽에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기존 IRP 계좌에 이체하면 사실상 그 돈을 뺄 수가 없기에 주거래은행에 신규로 IRP 계좌를 만들었다.


여기서 잠시, 기존 IRP 계좌에 이체하면 그 돈을 뺄 수 없다고 표현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려 한다. IRP 계좌는 연금 계좌이므로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다. 그전에 인출하는 방법은 '해지' 밖에 없다. 내 경우 기존 IRP 계좌에 있는 돈은 55세 이후 받을 연금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해지할 수 없다. 게다가 수년간 연말정산 시 세액공제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이것을 해지하면 연금도 못 받고 이런저런 세금도 내야 한다.


* 참고 2: IRP를 중도에 해지하면 새로 이체한 퇴직급여에는 퇴직소득세가 부과된다. 연금으로 수령하면 퇴직소득세를 30%가량 감면받을 수 있겠지만, 55세 이전에 중도해지 하면 이 같은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리고 기존에 세액공제를 받으면서 저축해 왔던 원금과 운용 수익에까지 기타소득세(세율 16.5%, 지방소득세 포함, 이하 동일)가 부과된다. 이들 적립금은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수령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3.3~5.5%)의 연금소득세만 납부하면 된다.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퇴직금과 퇴직연금을 수령할 때>
https://investpension.miraeasset.com/contents/view.do?idx=20418


이런 이유로 신규 IRP 계좌를 만들어 그 계좌에 퇴직금을 받고 나서 해당 계좌를 해지한 후 이런저런 방식으로 재분배하려고 했다.




퇴직금 분배하기


퇴직하고 정확히 한 달 후, 8월 1일에 퇴직금이 들어왔다. 앞서 언급한 신규 IRP 계좌로 들어왔고 나는 실수령금액을 확인한 후 바로 해지하여 내 자유입출금통장으로 이체했다. 이제 이 퇴직금을 어떻게 나누고 활용할 것인가-라는 고민에 빠졌다.


첫 번째 활용처는 명확했다. 연금저축 CMA 계좌로 600만 원을 이체했다. 내 경우 매년 600만 원을 연금저축 CMA 계좌에, 300만 원을 IRP 계좌에 넣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연금을 준비하는 것도 있었지만 사실 연말정산 시 세액공제를 받으려는 목적이 가장 컸다. 올해의 경우 IRP에 300만 원을 넣는 것은 완료했지만 연금저축 CMA 계좌에는 아직 돈을 넣지 못한 상태였기에 이것부터 채우기로 했다. 연금저축 세액공제는 해를 넘기지 않는다면 퇴직 이후 한도를 채워도 된다고 확인했었고, 설사 공제되지 않는다고 해도 제2목적인 개인연금으로는 활용이 가능할 테니 이와 같이 결정했다.


* 참고 3: 퇴사자는 보험료, 의료비, 교육비, 주택자금, 주택마련저축, 신용카드 등의 사용금액은 근로기간 동안(퇴사 전) 지출한 비용에 대해서만 공제받을 수 있고,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 보험료, 기부금, 연금저축 등은 연간 지출액을 공제받을 수 있다. - 한국납세자연맹 <퇴직자 연말정산>
https://www.koreatax.org/tax/taxpayers/work/retiree_info_1.html


지난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회사에서는 퇴사자에게 기본공제만 적용하여 연말정산을 하기 때문에 연금저축 및 IRP 세액공제를 적용하면 정산 시 더 돌려받을 가능성이 있다. 퇴직 이후 재취업을 하지 않은 경우 내년 5월 종합소득세 신고기간에 정산할 수 있는데, 내 경우 올해 7월까지 수입이 있었으니 정산이 필요할 거라 예상했다.


남은 금액은 다시 2:2:1 비율로 나누었다. 첫 번째 2의 경우 증권계좌 CMA 통장으로 보냈고, 두 번째 2의 경우 주거래은행에서 1년짜리 정기예금에 가입했으며, 마지막 1은 비상금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CMA 통장의 경우 은행의 자유입출금통장보다 더 많은 금리를 제공하고 매일 이자가 붙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퇴직금 일부를 그 통장에 묵혔다가 긴급하게 목돈이 필요할 때를 대비하고자 했다.


1년짜리 정기예금의 경우 주거래은행에 일정 금액을 두기 위한 것도 있지만 가장 큰 목적은 일부러 어느 정도의 금액은 묶어놓기 위함이었다. 1년 정도는 무슨 일이 생겨도 CMA 통장에 있는 돈으로 해결이 될 거라는 기대가 있어서 일부 금액은 그렇게 묶어두기로 결정했다.


마지막 비상금은 자유입출금통장에 그대로 두었다. 말이 비상금이지 사실상 내 지출의 연착륙을 위한 것이라 보는 게 맞았다. 나는 소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확 줄어들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급격히 줄어든 잔고를 보면 마음이 급해질 거 같았다. 그래서 우선 풍성한 잔고 상태를 만들어두고 그 금액이 줄어드는 과정을 보면서 스스로의 소비 패턴을 점검하고자 했다. 이 금액은 내가 재직 중 수익을 냈던 금액과 거의 일치했다. 내가 낸 수익이니 마음대로 써보자는 것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퇴직금 중 회사에서 지급했던 원금은 묶었고 내가 낸 수익을 내 비상금이자 자유로이 쓸 금액으로 정했다고 볼 수 있다. 퇴직금을 잘 굴려놨던 덕에 한동안 조금은 맘 편하게 돈을 쓸 수 있었다. 내 소비 습관이 안정화되고 혹시나 내가 정한 매달 용돈에서 조금이라도 남는 돈이 생긴다면 ISA 계좌로 잔액을 이체할 생각이다. 아니, 정확히는 이렇게 되는 걸 목표로 지출을 관리할 생각이다.


* 참고 4: ISA·연금저축·IRP '절세계좌 3종’ 혜택 하나씩 비교해보자면? - 삼성 Kodex ETF
https://www.samsungfund.com/etf/insight/newsroom/view.do?seqn=6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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