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증 없음의 의미

생활비를 줄일 방법을 회사 도움 없이 찾아야 한다

by 김연큰

예전에 어디선가 이런 문장을 본 적 있다. '취업준비생 입장에서 가장 갖고 싶은 것은 사원증이다.'라는 문장, 그리고 '퇴근 시간대에 직장인들이 사원증을 달고 돌아다니는 게 자기 과시나 자랑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취업해 보니 그저 빨리 퇴근하기 급급하여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는 걸 깜빡한 것뿐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라는 문장.


사원증이 소중하고 반가웠을 때가 언제더라. 첫 취업하고 사원증을 받았을 때는 정말 좋았다. 뭔가 내 노력의 대가 같은 느낌? (나중에 깨달은 거지만 내 노력에 비해 운이 좋았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원증의 가치는 처음 같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반가웠던 때는 내가 정말 가고 싶어 하던 회사를 삼수 끝에 들어갔을 때였다. 물론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평범한 사원증이 되었지만.


그 두 번의 예외를 제외하면 회사를 다닐 때 내가 느낀 사원증의 용도나 역할은 사무실 출입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굳이 다른 걸 꼽자면 사내 카페나 식당에서 나를 증명하는 용도? 아, 하나 더 있었다. 회사와 연결된 업체에서 재직자 혜택을 제공하는 경우가 있었고 그 혜택을 받으려 할 때 사원증 제시를 요구했다. 평소에는 깨닫지 못했던 힘이었다.


퇴사하면 이런 혜택을 더 이상 받지 못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퇴사하기 전에 회사 제휴몰에서 생필품을 1~2년 치 사서 쟁였고 건강검진도 서둘러했었다(3화 및 4화 참고). 그 외의 혜택에 대해서는 '하지만 어차피 한동안 그런 걸 이용할 일이 없을 테니 괜찮아'라는 생각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원증의 힘이 미치는 범위는 넓었다.




이래서 다들 혜택을 찾는구나


수입이 생기기 전까지 꼭 필요한 소비만 하기로 결심했지만 그 '꼭 필요한 소비'에 여행도 들어갈 수 있다는 걸 퇴사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의지로 가는 여행은 퇴사 직후의 딱 한 번으로 마감했지만 부모님이 나와 함께 여행 가고 싶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워낙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었기에 미처 생각을 못한 부분도 있지만 결국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나 자신만 생각했다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어떻게든 조금 더 저렴하게 갈 방법이 없을지 찾기 시작했다.


회사 다닐 때 같으면 제휴 호텔이나 리조트를 찾으면 그만이었으나 이제 그런 혜택은 없으니 발품을 팔아야 한다. 아니 손품이라고 보는 게 맞으려나. 이 사이트 저 사이트 돌아다니며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숙박할 방법을 찾는다. 패키지라도 고려하는 게 좋으려나. 예전 같으면 '뭘 단체로 움직이냐, 일정도 내 맘대로 못하고 싫다'라고 생각했겠지만 이젠 그런 생각은 사치에 불과하다.


회사에서 직접적으로 제공하는 혜택은 아니지만 같은 회사를 다니는 '사우'이기에 받는 혜택도 있었다. 사내 게시판에는 '부모님이 무슨 일을 하는데 특별히 사우 님들께 싸게 드립니다' 하는 게시물이 각종 농수산물 수확철마다 올라왔다.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복지보다 이게 더 도움이 되었다. 가격뿐 아니라 품질도 보장됐다. 그러나 회사를 나온 지금은 정보를 얻고 혜택을 받을 방법이 없다. (친했던 재직자에게 부탁하는 방법이 있지만 전 회사와 연결되기 싫었다. 아직 그만큼 절박하지 않다는 뜻도 된다.) 게다가 어디선가 구매한들 그 가격에 그 품질을 얻는다는 보장이 없다. 싸다고 덥석 샀더니 '싼 게 비지떡이더라' 하는 상황도 나온다.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던 폭염을 깨끗이 씻어내려는 듯한 장마 같은 비가 내린 후 서늘한 가을이 왔다. 더위에서 해방된 기쁨도 잠시, 독감 접종의 철이 왔음을 깨닫는다. 회사 다닐 때 같으면 회사 지정 병원을 가면 무료로 맞을 수 있었다. (정확히는 회사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지만.) 하지만 이제 내돈내산이다. 조금이라도 싸게 맞을 방법이 없을까 싶어 가족 및 친척들에게 생전 안 하던 아쉬운 소리를 했지만 그런 혜택은 없었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수밖에


부유층은 명품을 정가로 사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정작 정가로 구매해도 돈 걱정 없을 이들이 프로모션 혜택을 받아 정가 대비 아주 낮은 가격에 명품을 얻고, 그들이 갖고 다니는 명품을 본 다음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정가를 주고 산다는 내용이었다.


의식주에 대한 비용도 그런 면이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동일한 지출 항목이 있다는 가정 하에 복지 혜택 좋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실질 지출이 줄어들 수 있고, 반대로 본인이 회사를 다니지 않거나 복지가 좋지 않은 회사에 다닐 경우 같은 걸 사더라도 돈을 더 지불하는 상황이 존재하는 현실. 그리고 그걸 내가 겪게 됐으니, 회사 다닐 때와 비교하면 수입은 없는데 실질 물가는 상승한 셈이다.


뾰족한 방법은 없다. 어떻게든 지출을 줄이고, 꼭 사야 한다면 보다 저렴하게 살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다. 이전에는 내가 사용하는 체크카드의 혜택을 완벽히 알지는 못했는데 이제는 꿰뚫어 외우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간다. 택시는 원래 거의 타지 않았고, 대중교통에 들어가는 돈을 조금이라도 줄일 방법을 찾는다. 가격과 품질 사이의 적정 타협선이 어디인가 찾아본다.


지출을 줄이고자 노력하거나 시도한 내용은 17화에서 다루었습니다.




회사 밖은 확실히 춥다


이직할 곳을 정하지 않고 퇴사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아마 '회사 밖은 춥다'는 표현일 게다. 그 선택을 존중하되 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사람은 마이너스 통장이라도 뚫고 나가라고 한다. 무직 상태가 되면 마이너스 통장은 개설하기 어렵기도 하고, 비상시를 대비하라는 의미도 된다.


내 경우 회사 다닐 때 다른 이유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그때 생긴 마이너스는 다 갚은 지 오래이고 그 이후 한 번도 마이너스가 된 적이 없지만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갖고 있는 상태로 퇴사했다. 나와 보니 확실히 회사 밖은 춥고, 사원증은- 정확히 말해 그 사원증이 주는 직간접적 혜택은 그립다. 그렇다고 그걸 얻으러 다시 회사로 돌아갈 생각은 아직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하다. 또한 아껴 쓰고 내 욕망을 절제하는 생활을 몇 달 해보니 생각보다 할만하다. 그저 이 추위가 심해져 마이너스통장을 사용할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한편 내가 원하는 조건, 그러니까 급여가 적더라도 평사원으로 계속 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과연 내가 퇴사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3화에서도 언급했지만 아마 퇴사하지 않았을 거다. 물론 그랬으면 나의 직장인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건 늦어지거나 영영 못했을 수도 있으니 계속 미련 한 바가지 들고 있었을 거다. 또한 지금 얻은 이런 깨달음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려 적응이나 대응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문득 반대의 상황을 떠올려 본다. 그러니까 만약 내가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별도로 있던 게 아니라면. 내가 정년까지 다니는 게 목표여서 그에 맞게 은퇴 계획을 세웠었다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떠밀리듯 회사를 나오게 됐다면. 심지어 그게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벌어졌다면. 그럼 나는 이 상황에 잘 적응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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