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 카페? 도서관? 제3의 공간?
일을 하려면 공간이 필요하다. 만약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 그 장소에 가서 일을 하는 경우라면 업무 요청으로 공간은 마련되는 셈이지만 내가 하려는 일은 책상에 앉아하는 일이라서 어디서 어떻게 작업할지 공간을 정해야 했다. 아, 정확히 말하면 와이파이가 있고 노트북만 놓을 수 있으면 됐다. 다만 나의 고질병인 허리를 생각하면 안정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어야 해서 책상이 필요했다. 이런 조건 하에서 작업 공간을 어디로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뭐 그런 걸 고민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내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땐 학교에서 남아 공부를 하느냐, 독서실(요즘은 스터디카페라는 말이 더 대중화된 것 같다만)에서 공부하느냐, 집에서 하느냐의 선택지가 있었다. 하지만 학교는 수업시간 외에는 내가 머물고 싶지 않았고, 집은 당시 이런저런 사정으로 시끌벅적하여 영 집중이 되지 않아 공부가 잘 안 됐다. 결론적으로 부모님께 '조용히 독립적으로 공부할 곳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허락을 받아 독서실에서 공부했다. 그렇기에 내가 일이 잘 될 곳도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후보지를 선정하고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추천 작업 공간을 조사했다. 책상 앞에 앉아 정적인 업무를 하는 프리랜서 분들의 경험담을 참고했다. 지인 혹은 지인의 지인을 통해 경험담을 수집했는데 번역 업무를 하거나 글/그림 등 창작하는 분들을 주로 살펴보게 됐다. (내 지인들이 주로 이런 일을 한다는 뜻도 된다.)
대충 추려진 장소는 집, 카페, 도서관, 공유 오피스 정도였다. 집과 떨어진 장소에서 출퇴근하면서 회사 다니는 분위기를 내고 싶으면 공유 오피스를 추천하고, 조용한 환경을 선호하면서 책에 있는 자료를 찾기 쉬워야 한다면 도서관을 추천하고, 적당한 소음이 있어야 집중이 잘되거나 매번 다른 자극을 느끼면서 영감을 얻고 싶다면 카페를 추천하고, 돈을 아껴야 할 상황이거나 밖에 나가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주로 집을 추천했다.
이 중 집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의견이 사람마다 달라 흥미로웠다. 어떤 이는 집에서 일하는 건 이래저래 장점이 많지만 반드시 쉬는 공간과 작업하는 공간을 분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곧 내 생활이고 내 생활이 곧 일이 되어 마음의 병이 올 수 있음을 경고했다. 당연히 반대 의견도 있었다. 일상과 업무를 한 공간에서 보낼 수 있으니 전환이 쉽고, 특히 어떤 아이디어가 불현듯 떠올랐을 때 바로 작업하기 쉽다 주장했다.
사람마다 특성과 성향과 스타일이 다르니 결국 작업 공간도 그런 점을 따라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추려진 후보군을 가지고 내가 직접 겪어보자고 결심했다.
앞서 언급한 후보군 중 공유 오피스는 현재 채택하기에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어 제외했다. 물론 사무실 환경을 갖추고 일해야 집중이 잘 될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그럴 유형은 아닐 듯하고 냉정히 현재의 내 상황에서 판단할 때 공유 오피스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스티브 잡스도 처음에는 한 창고에서 애플을 설립하지 않았던가.
결론을 내기 전까지는 집에서 일했다. 이전 화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2021년에 집에 마련한 재택근무 환경을 되살려 그 상태로 일했다. 그러다가 기회가 되면 다른 곳을 체험해보고자 했다.
어쩌다 보니 첫 대상은 도서관이 되었다. 어느 날 어떤 강연을 들으러 갈 일이 있었는데 장소가 도서관 옆에 있는 강당이었다. 마침 잘 됐다 싶어 강연 시간보다 일찍 가서 도서관 체험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도서관은 내 일터가 아님을 결론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각종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건 분명한 장점이었지만 나는 어느 정도의 소음에 익숙해서인지 너무 조용한 환경이 오히려 집중에 방해가 됐다.
마지막 후보군인 카페는 우습게도 강제로 집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체험하게 됐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물탱크 청소를 한다고 모 월 모 일 오전 10시 무렵부터 오후 4시경까지 단수 예정이라는 공지가 떴다. 단수가 된다는 건 그 시간 동안 화장실 사용이 어려워진다는 뜻이 된다. 물론 물을 미리 받아두는 것도 방법이긴 하겠으나 이럴 때 카페에서 일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날 오전 오후를 다 겪어보니 카페는 작업공간으로 꽤 괜찮았다. 자리만 잘 잡으면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음악이 집중하기 좋았고 가끔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내다보며 주의환기도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특성이지만 노트북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괜찮은 것도 큰 장점이었다. 다만 자영업자에 대한 양심과 예의상 2-3시간마다 음료를 새로 주문한다면 하루에 드는 돈이 생각보다 꽤 든다는 점, 이른 시간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면 작업 능률이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일 카페에서 일하는 건 어렵겠다 생각했다.
돌아와 버렸다. 현 상태에서 집 밖으로 나가 일하는 꿈은 접기로 했다.
아무래도 재택근무 경험이 있고 그 덕분에 이미 환경이 잘 갖춰져 있으니 집만 한 곳은 찾기 힘들었다. 누구 눈치 볼 필요 없이 마음이 편했다. 커피도 내려마실 수 있다. 조용한 환경부터 시끌벅적한 환경까지 내가 만들 수 있으니 소음 구성에 대한 자유도가 높았다. 집안일로 방해요소가 생길 수 있는 건 흠이지만 이것은 특정 시간에 하는 것으로 몰아두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다만 작업공간은 한 곳으로 한정했다. 거실에 있는 식탁이 그 주인공이다. 이 또한 예전에 재택근무할 때 구축한 환경인데 크게 세 가지 이유로 인해 주인공이 결정됐다.
첫째, 내가 사용하는 노트북 받침대를 놓기 가장 좋은 환경이 식탁이었다. 난 언제 발생할지 모를 허리 통증이라는 폭탄을 안고 있다. 그래서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노트북 받침대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바닥에 평평하게 낮출 수도 있고 일어서서 사용도 가능할 만큼 높일 수도 있었다. 즉 그날 내 허리 컨디션에 맞게 조절이 가능했는데 대신 부피가 좀 커서 이걸 놓을만한 장소로 식탁만 한 곳이 없었다.
둘째, 침실과 업무 공간을 분리하고자 했다. 절대 침대에서 노트북을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 내 철칙이다. 정확히 말하면 한창 스트레스로 고생하면서 불면증이 생겼을 때 들은 조언으로, 꿀잠을 잘 수 있는 수면 환경을 갖추기 위한 노력 중 하나였다. 급하면 핸드폰을 잠시 다룰 수는 있겠으나 그 또한 최대한 자제하고자 했다.
셋째, 반려동물 배려 겸 감시(?) 목적이다. 처음 재택근무를 할 때는 내가 집에 있으니 반려동물이 휴일이라고 생각했는지 자꾸 놀자고 졸라댔다. 나는 일해야 하고 여기저기서 나를 찾는 알림이 울리는데. 고민 끝에 식탁에 앉을 땐 절대 반려동물에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처음 몇 주는 나도 힘들고 반려동물도 힘들어했으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효과가 있었다. 내가 식탁에 앉으면 반려동물도 더 이상 나에게 뭔가 요구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시간을 보냈다. 항상 내가 볼 수 있는 장소에 있기에 뭔가 사고를 치는 게 아닌지 감시도 할 수 있었다.
사례 수집 때 이미 느낀 것이었으나, 역시 내가 맘 편히 일할 수 있고 업무 효율이 잘 나는 곳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시금 깨달았다. 한편 집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이곳만 고집하지도 않는다. 가끔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낄 땐 오전 혹은 오후에 2시간 정도 카페에 가서 일하곤 한다. 마치 회사 다닐 때 어쩌다 외근할 때 느낌이랄까? 내 경우 외근은 나가기 귀찮지만 막상 나가면 기분전환이 되는 존재였는데 카페에서 일하는 게 딱 그런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