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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이너 Jun 22. 2020

백수의 경제학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 있겠어? 

<내 법대로 산다 - 봄 편> - 본문






백수의 가계부


백수생활을 한지 벌써 3개월이 넘어간다. 지금까지 생활한복이든 명상이든 낭만적인 얘기만 실컷 떠들어 왔지만, 이제는 현실적인 문제를 한번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먹고 사는 문제 말이다. 혹자는 내 글들을 보면서 “그래서 어떻게 계속 그렇게 살 수 있겠어?” 하고 궁금해 할 것이다. 나도 그게 궁금하다. 내가 모두가 부러워 하는 '돈많은 백수'도 아니고... 그래서 소로가 <월든>의 첫 챕터 ‘숲 생활의 경제학’에서 자신의 자급자족 숲생활에 대해 가계부를 작성했듯이, 나도 이쯤에서 3달간의 백수생활의 수입과 지출에 대해 중간점검을 해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난 소로처럼 그렇게 꼼꼼한 성격은 아니니 대략적으로 어림잡아 한번 가계부를 작성해 보도록 하자.  


일단 내 생활에 소요되는 지출부터 정리해야겠다. 



<지출> 


월세 55만원, 관리비 7만원, 전기세와 도시가스비 약 4만원 : 


여전히 거주비용이 많이 들어가지만 강남에서 살 때보단 낮은 금액이다. 7평 남짓 원룸, 혼자 사용하는 방으로는 부족함이 없다. 넓은 집은 솔직히 공간 낭비라고 느껴진다. 어차피 방을 채울 물건도 옷가지도 별로 없다. 이사할 때도 짐이 별로 없어서 큰 이사짐차가 아니라 작은 용달차로 충분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정말 웃기지만, 대학교 시절 인천 본가에서 서울에 있는 기숙사로 이사할 때도 짐이 진짜 없어서 부모님과 이민가방과 보자기로 짐을 싸서 지하철로 이사하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그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리스트 유목민의 선구자였다(웃음). 


그리고 어차피 일과시간에는 거의 밖에 있는다. 집밖에 있는 멋진 공간들을 공유한다. 길거리와 공원, 산, 카페, 도서관, 갤러리, 미술관, 서점, 복합문화공간 등등. 이런 공간들은 놀랍게도 거진다 공짜이고 소정의 이용료(예를 들어 카페 음료값)만 지불하면 된다. 새로운 곳에서 영감을 받고 멋진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는 덤. 집은 크든 작든 저녁에 돌아왔을 때 포근하게 쉴 수 있고 따뜻하게 몸을 누일 안식처가 되면 족하다. 앞으로도 나에게 집은 그런 의미일 것 같다.             


휴대폰 요금 43,000원 : 


회사 다닐 때는 회사에서 휴대폰 요금을 대신 내줬는데 이제는 내가 내야하니 두번째로 저렴한 휴대폰 요금제로 정했다. 데이터 2.5G인가를 넘으면 속도제한에 걸려 인터넷 속도가 느려진다. 그치만 정보화강국답게 어딜가나 와이파이가 잘 돼있고 그렇지 않아도 느린 속도 덕에 휴대폰을 잘 안하게 돼서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다. 


휴대폰 기기 자체도 4년째 쓰고있다. 사실 그전에 쓰던 폰도 회사에 입사하면서 업무에 필요한 이메일 어플이 깔리지 않아 바꿨던 건데 그게 아니면 지금까지 쓰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주위에서는 “휴대폰 왜 안 바꿔?”라고 의아하게 물어보지만, 거의 카톡과 유투브만 사용하는 나에게는 휴대폰이 최신폰인지가 딱히 의미가 없다. 기본적인 기능이 작동되기만 하면 된다. 오히려 가끔 내 휴대폰 기종이 오래돼서 시중에 드물다 보니 간혹 최신폰인 줄 알고 이건 무슨 기종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다(웃음).   


식비, 쇼핑 등 생활비 약 50~60만원 : 


회사 다닐 때는 식비 지원이 돼서 식비가 별로 안 들었기 때문에 매달 카드값이 대략 40만원 정도(?)밖에 안 나왔는데(동료들은 나를 무슨 기인처럼 생각하곤 했다), 이제는 식비가 나가기 때문에 조금 더 든다. 예전같이 밖에서 매끼 사먹기에는 부담이 되기 때문에 손수 식재료를 사서 해먹는다. 요리를 해본 적도 없고 할 줄도 모르지만 유투브를 찾아보면서 할 수 있는 선에서 간단히 요리를 해먹는다. 사실 '요리'라기보다는 '조리'라고 해야 맞는 것 같다. 복잡한 양념 대신 소금, 간장으로만 간을 해서 원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노라고 정신승리를 해본다. 예전에는 법인카드로 비싸고 맛있는 음식들을 마구마구 먹어도 항상 뭔가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제는 속이 이상하게 가볍고 편하다.    


옷이나 물건은 잘 사지 않는다. 꼭 필요한 것만 적게 소유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물건을 사려면 돈이 들고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하므로, 물건은 곧 일하는 시간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시간은 소중하다. 광고나 마케팅, 유행 등에 넘어가 원래는 없었지만 억지로 만들어진 '니즈'에 의해 물건을 사고 싶지는 않다. 항상 “이 물건이 나한테 정녕 필요한 것인가?” 되묻고 신중하게 물건을 구입한다. 


그리고 물건을 구입해야 할 때도 다행히 내 취향이 고급지지 않아서 돈이 별로 많이 안든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원하는 명품 같은 물건들은 비쌀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딱히 그런 걸 좋아하지 않으니 그런 행렬에 동참할 필요는 없다. 내 고급지지 않은(그래서 돈이 들지 않는) 취향에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 


데이트 비용 50~70만원 : 


백수도 연애도 하고 데이트도 해야지. 우리 커플은 둘다 막 고급진 데이트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데이트 비용도 보통의 경우보다 크게 더 많이 드는 것 같진 않다. 물론 돈을 많이 벌면 여자친구와 더 많이 누리고 싶지만 말이다.   


백수생활 3달간 총 지출 약 570만원 : 


미처 포함하지 못한 금액들도 있을테니 정확한 금액은 아니지만, 내가 생활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월 190만원, 3달치로 계산하면 대략 총 570만원 정도가 들었던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보다 많이 드는 것 같진 않지만, 계속 통장 잔고만 까먹지 않고 지속가능한 백수생활을 유지하려면 최소한 그만큼은 벌어야 할 터인데...(앗 그럼 백수가 아닌가..?).


그럼 이제 그간의 수입(?)을 살펴보자.  



<수입>


출판사 선인세 200만원 : 


감사하게도 내 똥글(?)들을 책으로 엮어 출간해 주겠다는 출판사가 나타났다. 출간계약에 따라 계약금조로 선인세 200만원을 받았다. 출간계약이 된 것도 감사한데 아직 팔리지도 않은(앞으로도 팔릴지 알 수 없는...) 책의 인세를 미리 받는다니! 출판사 건물을 향해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사건 수임료 330만원 : 


원래 알던 고객이 부탁해서 얼떨결에 사건을 맡게 됐다. 애초에 백수생활을 하고자 한 취지에는 조금 어긋나지만 사실관계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고 나도 막상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니 거절할 수 없게 됐다(이 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데 다른 글에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코로나 재난지원금 73만원 : 


정말 정말 감사하게도 코로나 재난지원금으로 정부에서 신용카드 충전금 40만원, 서울시에서 서울사랑상품권(제로페이) 33만원을 받았다. 난 코로나 전에 자발적으로 실직한 거라 내 백수생활과 코로나는 별 관련이 없지만 쨌든 생활비에 요긴하게 쓰고 있다. 근데 제로페이를 사용하려고 앱을 킬 때마다 휴대폰이 느려져서 잘 쓰지 못하고 있다(이런건 불편하군...).  


백수생활 3달간 총 수입 약 600만원 : 


애초에 일단 백수생활을 하기로 결심한 이상 저축한 금액에서 생활비를 까먹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뜻하게 않은 수입으로 지출이 어떻게 어떻게 충당이 됐다. 감사한 일이다. 물론 앞으로도 이런 행운이 계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적당한 먹고사니즘의 추구


영화 <소공녀>의 여주인공 미소는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는 삼요소인 '위스키, 담배, 남자친구'를 충족하기 위해 가사도우미로 일하면서 돈을 번다. 미소는 그런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위에서 내가 했던 것처럼 매일매일 그 날의 수입과 지출을 가계부에 치열하게 기록하며 계산한다. 그러나 큰 일이 생겼다! 물가가 오르면서 위스키 값, 담뱃값, 그리고 월세도 오른 것이다. 미소는 자기의 행복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위 삼요소를 지키기 위해 차라리 월세방을 포기하고 집을 나온다.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이 얘기는 적어도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치솟는 물가에 결국 집을 포기하는 미소...


우리는 우리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과 지출 등을 크게 고려하기 보다는, 무조건 돈을 많이 벌려고 한다. 어릴적 모았던 포켓몬 딱지와 같이 돈은 '다다익선'이 진리가 되는 몇 안 되는 영역이다. 그치만 우리가 가만히 앉아있어도 돈이 나오는 건물주나 자본가가 아닌 이상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하고 시간을 써야 한다. 우리는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노력에는 대가와 희생이 따른다. 그렇게 성공해서 수억대의 연봉을 벌어도 편리하고 고급진 생활을 할 수는 있겠으나 그만큼 꼭 행복해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그런 편리하고 고급진 생활,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것들을 좀 포기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게 되면, 그래서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아등바등대지 않는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숨통이 좀 트인다고 생각한다. “미소는 ‘집’만 없었고, 다른 이들은 ‘집’만 있었다.” 라는 위 영화에 대한 베스트 한줄평이 시사하는 바처럼 말이다. 


비슷한 얘기로, 평소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를 즐겨보는데 나에게는 초호화 집에서 럭셔리한 삶을 사는 잘나가는 연예인들 편보다 윈디시티라는 레개밴드를 하는 김반장 편이 더 인상적이었다. 김반장은 정릉 쪽 거의 허물어져 가는 집에서 살면서 도시가스도 없어서 매일 아침 마당에서 불을 피워 뜨거운 물을 만드는 등 현대 문명인이 보기에는 ‘와... 왜 저렇게 살지’란 한숨섞인 말이 절로 나오는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보다보면 집앞 북한산을 맨발로 오르고 집 지붕에 누워 여유롭게 낮잠을 자고 저녁에는 집앞 마당에서 이웃 사람들과 함께 고기파티를 하면서 덕담도 나누고 노래도 부르고 하는 김반장의 모습이 유유자적 낭만이 넘쳐 보였다. 출연진들도 처음에는 "불편하지 않아요? 어떻게 저렇게 살아요..." 이런 반응이다가 나중에 영상이 끝난 후에는 "내가 따라하긴 어렵겠지만 진심으로 부러워요"라는 반응이었다. 어쩌면 김반장은 불편하지만 본질적인 행복을 누리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붕에 올라 갑자기 악기연주를 하는 김반장... 이형 범상치 않다.


어디 돈뭉치를 땅에 묻어둔 게 아니라면 우리의 먹고사니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돈이란 게 원래 그렇듯 교환의 수단이기 때문에 내가 가진 조그마한 능력과 노력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 있다면, 무슨 횡재를 하진 못하더라도 그 대가로 돈을 계속 벌고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것으로 족하다. 중요한 건 돈 자체가 아니라 그 돈으로 어떤 생활을 영위할 것이냐 이니까.  


결국 내 생각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그동안 고작 소고기 사먹으려고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다니!






구독자 여러분,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제가 출간계약을 하게 됐습니다!

지난번 감사편지에 이 소식을 전하려고 했는데 감사편지를 빨리 올리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작성하느라 이 내용을 빠뜨렸어요..

책 한권 낸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인생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의 제 기록을 한 권의 책으로 남길 수 있게 돼서 기뻐요.

출간계약이 되었다고 브런치를 소홀히 하는 일은 절대 없고, 앞으로도 이 곳에 아주 날 것의 솔직한 이야기들을 마구마구 풀어나갈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

응원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 2020. 6. 22. 김마이너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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