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움큼 에고를 비워내기
<내 법대로 산다 - 봄 편> - 본문
도를 닦는다니 무슨 말인고? 도를 닦는다고 해서 길거리에서 대뜸 "도를 아십니까"라고 물어보는 그런 사이비종교가 되었다는 건 아니고. 길을 걷다 보면 인상이 순하게 생겨서 그런지 예전부터 유독 그런 사람들한테 많이 잡히는 타입이긴 했지만... 무튼 그쪽은 아니다.
요즘 명상이 붐이다. 무슨 CEO도 명상을 한다고 하고 유명인사들도 명상을 한다고 하고 사람들도 명상에 관심이 많다. 이전 글에서 내 하루 일과를 소개하면서 언급했듯이, 명상은 내가 매일같이 빠짐없이 행하는 모닝루틴 중 하나이다.
기상 후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 다음 요가매트 위에 차분하게 앉아 눈을 감는다. 숨을 천천히 들이마쉬고 천천히 내뱉으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이에 집중하거나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나 신체감각에 집중한다. 그리고 내 머릿 속에 맴도는 생각들에도 집중한다.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면서 그렇게 고요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이렇게 말처럼 쉬우면 좋겠지만, 내가 실제로 하는 명상은 생각과는 영 딴판이다. 인터넷이나 티비에서 남들이 명상하는 모습을 보면 다들 차분하게 명상을 잘 한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치만 현실은 대략 이런 식이다.
요가매트 위에 앉아서 눈을 감는다.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았는지 눈을 감으니 다시 졸리다. 눈을 감고 있는건지 눈이 감기는건지 잘 모르겠다. 호흡을 가다듬고 집중하려 하지만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서도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는 건 건강에 이상이 있는 걸까? 혹시 비염일까? 또 이런저런 생각들이 오간다. 오늘 점심에는 뭘 먹을까. 오늘 저녁에는 뭘 할까? 등등. 그러다 갑자기 발가락이 가렵다... 명상 중에 발가락을 긁어도 되나? 아무래도 좀 이상하겠지? 그러다 간지러움이 온몸으로 퍼진다. 그리고 결국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란 생각까지 이어진다(참고로 나는 선천적으로 가려움이 많아서 군대시절 보직이 헌병이었지만 몇시간을 꿈쩍도 안하고 그대로 서있어야 하는 초병 근무는 어림도 없었다).
명상은 정말 어렵다. 명상을 한지는 이제 6개월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어렵다. 시간을 늘려나가고 싶지만 내 집중력의 한계는 아직까진 15분 정도인 것 같다. 진전이 보이지 않다보니 가끔은 시간낭비라고 느껴져 그냥 그만둘까 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꾸준히 명상을 하려고 한다. 아침마다 방에 앉아 15분 타이머를 키고 꾸역꾸역 앉아있고, 가끔 날이 좋을 때는 집 근처 수성동 계곡에 가서 바위에 앉아서도 한다. 바위에 앉아서 눈을 감으면 물소리와 새소리가 들려온다. 일부러 명상음악이나 자연 asmr을 틀 필요가 없다. 물이 말라버린, 그래서 경치는 좋지만 계곡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수성동 계곡의 쫄쫄쫄 계곡물 소리가 명상의 집중력을 높여준다.
잘하지도 못하면서 왜 그렇게 꾸역꾸역 명상을 하느냐고 한다면, 나는 원래 자의식, 즉 에고가 남들보다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노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아닌 척 하면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환경도 나의 에고를 더욱 굳건히 해주었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공부를 곧잘 해서 부모님과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아왔고, 서울대에 진학하면서 서울대생이라는 엘리트의식은 내 에고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에 그치지 않고 에고를 더욱 살찌우기 위해 계속 에고의 먹잇감들을 포획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로스쿨에 가서 변호사가 되고 대형로펌에도 입사하는 등 먹이를 얻으며 에고는 점점 더 비대해져 갔다. 웃긴 것은 심지어 군대에 있을 때도 헌병은 다른 그냥 땅개랑은 다르다며 '한번 헌병은 영원한 헌병'이라는 구호를 자랑스럽게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에고는 결코 만족하거나 멈출 줄을 몰랐다. 에고는 다른 사람들보다 꼭 우위에 서야만 직성이 풀리는 변태같은 놈이었다. 에고 덕분에 많은 것을 성취했고 내가 하는 분야에서는 우위에 섰다고 할 수 있지만 대형로펌에 다녀도 월급쟁이는 결국 월급쟁이였다. 사회에 나오니 학벌, 직업보다 중요한 것은 돈이었다. 에고는 또다시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다시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에 서기를 바랬다. 그러다 화를 당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에고는 나에게 성취감과 우월감을 주었지만 행복감은 크게 주지 못했던 것 같다. 에고는 남들과 나를 철저히 구분했기에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진정한 소통은 오히려 방해했다. 에고는 커져갔지만 나는 더 고립되었고 외로워졌다. 나는 힘든 시기에 많은 책들을 읽고 깊게 내 자신을 성찰하면서 나는 내 에고가 아니라는 점을 결국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 에고가 아니다.
내 자신을 성찰하기 위한 일환으로 시작한 명상 중에 얼핏 에고 이전의 순수한 존재 자체로서의 내 자신을 잠시나마 느낀 적이 있다. 어떠한 욕심도, 꿈도, 자부심도, 호불호도 없는. 그래서 존재 자체로 평화로운.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보면 어떤 관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유전자에게 조종을 당해 유전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일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에고도 어찌보면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에고와 나를 동일시하며 그저 에고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려 살아가는 건 아닐까?
물론 에고를 완전히 덜어낸 내 모습이란 상상할 수 없다. 그건 속이 텅 빈 유령인간이겠지. 그치만 나는 적당한 수준을 벗어나 에고가 무분별하게 확장하려고 하는 것을 경계한다. 왜냐하면 조금만 경계태세를 풀면 내 특성상 더 에고가 무럭무럭 자라나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할 때에도 이 생각과 행동이 내 에고에게 먹이를 주려는 목적이 아닌가 한번쯤 나 자신에게 되물어본다. 브런치를 하면서 그러지 않으려고 하지만 자꾸만 구독자수에 신경쓰게 되는 모습도 아마 그런 것 같지만(웃음).
나의 에고는 끊임없이 커져가기 위해 몸부림 친다. 에고는 양동이에 틀어져 있는 물과 같다. 주기적으로 비워내지 않으면 결국 흘러넘치게 되어 있다. 명상은 매일 잠시라도 나의 에고를 바라보고 에고를 조금이라도 비워내기 위한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한 움큼의 에고를 비워내기 위해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김마이너가 사는 법 제2조 : 아침마다 꾸역꾸역 명상을 하며 한 움큼의 에고를 비워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