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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이너 Jul 08. 2020

슬기로운 백수생활을 도와줄 책 3권

<월든>,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빈둥빈둥 당당하게...>

<내 법대로 산다 - 봄 편> - 본문






백수는 시간이 많다. 백수를 준비하면서 백수생활을 하면서 나는 많은 책들을 읽게 되었다. 백수 동지들이여! 넘쳐나는 시간에 자신이 백수라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며 방구석을 긁는 대신 그 시간을 활용해서 책을 읽자. 괴로운 백수생활 대신 슬기로운 백수생활을 위해, 내가 백수 전후로 여러번 읽으면서 도움을 받았던 책 3권을 소개한다. 



1. 주체적인 백수생활을 꿈꾼다면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이미 기존 내 글에서 여러번 인용되었듯이, 단연코 첫번째로 추천하는 책은 바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다. 책의 내용은 소로가 사회에서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생활하지 않고, 뚱딴지같이 월든이란 이름의 호숫가 근처 숲속으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2년간 자급자족하며 생활하는 이야기이다. 지금으로 치면 티비프로 '나는 자연인이다'의 시초급 정도 되겠다. 


소로는 당대 하버드 대학까지 나온 수재였으나 평생 남들이 인정해줄 만한 고정된 직업을 갖지 않았다. 가정교사(지금으로 치면 과외), 측량기사, 목수 등을 하기도 하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연필 공장에서 일하기도 하는 등 그때그때 필요한 일들을 하며 독서와 글쓰기에 전념했다. 당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혀를 끌끌 차며 '재능과 그동안 해온 공부가 아깝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소로는 그러한 지성을 남들이 인정해주는 방향보다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데 사용했다. 


그는 세상에 으레 정해진 것들 모두에 대해 비판의식을 가졌던 것 같다. 집 한채를 사기 위해 몇십년간 소처럼 열심히 일하며 인생을 괴롭게 사는 사람들(이백년전 미국의 이야기지만 오늘날 한국도 마찬가지다...)을 안타까워 하며,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은 산속에 손수 조그만 오두막을 지어 혼자 생활하면서, 농사도 비료를 사용해서 작물을 대량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조그만 땅에서 소박하게(다른 말로 하면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농사를 짓고 살았다. 


이처럼 기존에 정해진 사회통념과 관습에 대한 소로의 문제의식과, 불평불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로가 그러한 사회통념과 관습을 뒤엎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주체적으로 영위해 나가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의 결연한 의지가 담긴 문체는 그러한 주제의식을 더욱 고취시켰다. 소로처럼 산속 오두막에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내 백수생활도 소로를 롤모델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그처럼 이 책은 세상의 잣대에 맞서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고 싶은, 또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말 힘이 되는 책이다. 내가 로펌에서 퇴사할 때 친한 동료가 선물로 준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라는 책도 <월든> 속 명문장들을 엮은 책이었던 것은 우연일까.   


물론 소로가 다소 모순적이거나 내로남불하는 장면들(예를 들어 윤리적인 관점에서 낚시를 비판하면서도 자기도 낚시를 즐기는 장면 등), 자의식이 넘쳐 모두까기(?)를 시전하는 장면들도 많고, 나도 소로의 모든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치만 적어도 소로는 자기의 관점으로 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운영하려 노력했다. 또 대단한 것은 책을 보면 자신의 위선적인 모습 등의 단점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정말 솔직한 태도로 여과없이 자신의 삶을 기록해 왔다는 점이다(<월든> 외에도 그는 방대한 양의 일기를 남겼다).  


백수생활을 하게 되면 부모님한테 잔소리도 듣고 직장에 다니며 월급을 받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만 뒤쳐지는 것 같아 위축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남들과 똑같이 매일 출근해서 일을 하는 삶만이 정답은 아니다. 소로는 낮 동안 내내 배에 누워 호수를 몇시간이고 떠다니며 한량생활을 했지만 전혀 주눅들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소로처럼 자기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자. 실제로 소로는 호수를 관찰하고 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 덕에 측량기술을 발전시켜 <월든>을 쓰고 난 후에 측량기사로 직접 활동하기도 했다고 한다. <월든>이 백수뿐만 아니라 자기 사업을 하는 사업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월든>이란 작품은 당대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후대에 와서 이렇게 불멸의 고전으로 유명해진 것을 보면 소로는 성공한 마이너가 아닐 수 없다. 가히 이 세상 모든 마이너들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다. 백수생활에 작아진 나를 발견한다면 즉시 <월든>의 책장을 펼치자!


아름다운 월든 호수.. 저 위에서 배를 타고 싶다.


내가 보기에 이 고장 젊은이들의 불행은 농장과 주택, 창고와 가축과 농기구들을 유산으로 받은 데 기인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일단 얻으면 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들은 차라리 광막한 초원에서 태어나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자신이 힘들여 가꾸어야 할 땅을 보다 더 맑은 눈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누가 이들을 흙의 노예로 만들었는가? 왜 한 '펙'의 먼지만 먹어도 될 것을 그들은 60에이커나 되는 흙을 먹어야 하는가? 왜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무덤을 파기 시작하는가? 그들은 이런 모든 소유물들을 앞으로 밀고 가면서 어렵사리 한평생을 꾸려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2. 백수여, 밖에 나가 친구들과 어울려라 - 고미숙,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내가 자발적 백수를 꿈꾸고 있을 당시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연암 박지원을 연구하는 전문가인 저자가 '청년 연암에게 배우는 잉여 시대를 사는 법'이라는 부제로 연암 박지원의 모습들을 참고로 현시대 청년 백수들에게 조언하는 내용이다. 줄곧 유쾌한 문체로 바야흐로 백수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당당하게 선포한다!  


연암 박지원은 고정관념 속의 선비처럼 혼자 고매하게 글을 읽고 글을 쓰고 심심하면 가끔 노비를 괴롭히고(?) 하는 선비가 아니라, 벗과 함께 밥을 먹고 술판을 벌이고 여행을 다니며 풍류도 즐기고 서로 농담섞인 편지를 주고받고 같이 인생을 논하고 심지어 같이 집도 지엇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연암의 모습들을 얘기하면서 우정이야말로 백수의 최고 자산이라며 청년 백수들에게 집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어울리라고 말한다(저자는 청년은 아니지만 스스로도 청년 공부공동체를 이끌고 있다). 예를 들어 이렇다. 백수라 갈 곳이 없으면 도서관으로 출근해서 책도 읽고 인문학 강의도 듣고 문화행사에도 참여해라, 그리고 거기서 마추치는 사람들(아마 같은 백수들?)과 안면을 트고 친해져서 같이 밥을 먹고 읽은 책이나 인생사 아무 것에 대해서라도 이야기해라, 그리고 시간이 많으니 같이 동네를 탐방할 겸 산책해라 등등.


매우 공감되는 이야기이다. 보통 백수라 하면 수염은 밤송이만큼 기른채로 방구석에만 쳐박혀 있는 백수가 떠오른다. 출근할 직장이 없어 딱히 갈 곳도 없고 자신의 신분이 부끄러워 사람들과의 약속도 피하고 나가면 다 돈이니 아예 나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위 책에서 말하는대로 이런 백수일수록 오히려 시간을 활용하여 더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고 이야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정을 나눌 수 있고 혼자서는 생각하지 못할 새로운 생각들도 떠오르게 된다. 위에서 소개한 소로도 철저한 개인주의자였지만 오두막에 혼자 쳐박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오두막으로 마음이 맞는 수많은 인사들을 초대하여 밤새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돈이 드는 것이 두렵다면 소로처럼 홈파티를 하든지 저자가 말한 것처럼 공짜 도서관으로 출근해서 친구를 만나도 된다. 


나도 그런 측면에서 백수가 되기 전부터 백수가 된 지금까지 독서모임을 꾸준히 하고 있다. 물론 멤버들이 다 나와 같은 백수는 아니다. 직장을 다니는 친구도 있고 개인사업을 하는 친구도 있고 학생도 있고 다양하다. 독서모임이 좋은 점은 사실 회사 동료들은 만나면 일얘기나 회사내 가십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게 되고 또 원래 알던 친구들을 만나면 맨날 하던 얘기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갑자기 행복, 건강, 인생, 미래 등과 같은 의미있는 주제로 얘기할라 치면 굉장히 어색하고 낯간지럽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독서모임은 책을 주제로 얘기하는 자리인 만큼 그런 낯간지러움 없이 얼마든지 그런 주제들로 얘기를 나누기 쉽다. 


이 책에 나온 청년 연암처럼 우리도 방구석을 탈출해 밖으로 나가 다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먼저 연락해서 만나자. 같이 수다를 떨며 새로운 생각들을 나누자. 누가 아는가? 백수가 그러다 작가도 되고 크리에이터도 되고 사업가도 될지. 


세상 밖으로 길 떠나는 연암


이제 청춘이 해야 할 일은 불안과 외로움에 대한 탐구다. 그것을 탐구하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관계는 화폐에 선행한다는 것, 삶은 곧 '관계의 지도'라는 것을. 물론 이때의 관계란 명성과 이익을 도모하는 '인맥'이 아니라, 공감과 소통을 전제로 하는 '인복'을 의미한다. 인맥은 불안을 부추기지만, 인복은 불안을 치유해준다. '인맥 쌓기'에서 '인복 누리기'로!




3. 포기는 나약함이 아니라 지혜일 수도... - 파(Pha), <빈둥빈둥 당당하게 니트족으로 살기>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집어들고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버릴 정도로 정말 신선했던 책이다. 저자 파(Pha)는 교토대학교 출신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니트족으로 이 책은 그의 니트족 생활에 대해 쓴 책이다. '니트족'이란 단어가 생소할 수도 있으니 설명하면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구직활동을 하지도 않는 사람을 말한다. 저자의 다른 저서 <하지 않을 일 리스트>, <지금 여기 다른 삶>도 굉장히 재미있다.


파는 일본 명문대인 교토대까지 나왔지만 성향상 게으르고 피곤함을 많이 느껴 학교도 직장도 다니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동안 참고 살아왔지만 어느날 문득 든 "왜 인간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란 생각에 결국은 니트족이 되었다. 지금은 그는 그냥 쉐어하우스에 살면서 같은 처지인 니트족 친구들과 책을 읽고 게임을 하고 요리를 해먹고 고양이랑 좀 놀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인터넷에서 무료나눔을 받는 등 빈둥거리는 생활을 한다. 그런 그는 비록 돈과 결혼 등 많은 것을 포기했지만 지금의 생활이 행복하다고 한다. 자기는 성향상 아무리 해도 니트족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기성세대가 듣기엔 참 팔자좋은 한심한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생각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의 주장에 전혀 논리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괜히 그가 니트족 철학자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내게 파는 현대판 디오게네스로 느껴진다. 일본에서는 버블경제가 터진 후 장기불황이 계속되면서 교용환경이 악화되어 사회구조상 많은 청년실업자들이 양산되었고, 이들은 스스로 돈벌이나 출세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욕망을 억제하고 살게 되었다(이들은 일본말로 '득도'를 뜻하는 사토리 세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언론에서는 이들을 사회문제로 부각시키며 자조적인 어조로 보도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들의 삶에도 얼핏 지혜가 보인다.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욕망을 감히 포기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충만히 살아가고 있는 점 말이다. 포기는 나약함이 아니라 지혜일 수 있다. 


파는 아무 것도 안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니트족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여러가지 일(?)들을 벌이고 있다. 그가 사는 '긱하우스'라는 쉐어하우스(취미나 취향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컨셉)는 그가 고안해낸 것으로 전세계에 동일한 컨셉의 쉐어하우스가 많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점차 이런 컨셉의 쉐어하우스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 그는 파워블로그를 운영하고 강연도 하고 책도 몇권 출간하고 재밌는 사이트를 프로그래밍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그는 누구보다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지만, 그는 일이라기 보다는 그냥 자기가 좋아서, 재밌어서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쯤되면 그가 진정한 니트족인지 의심이 된다(웃음). 


일본의 전철을 밟아가는 우리나라도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가 늘어나고 있고,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부제 : 야매 득도 에세이) 등의 책들을 통해 일본의 시류가 그대로 들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백수들도 파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너무 당연한 파의 어느 문장처럼, 우리는 100년 후면 모두 죽는다.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어떤 큰 성취를 이뤘다 하더라도 그때쯤이면 거의 다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살면 그 뿐이라고.  


파의 방이 좀 정신없긴 하다..


세상의 평판이나 일반적으로 "이걸 해야 돼."라는 식으로 정해져 있는 것 따위에 신경쓰지 말고,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된다. 인생은 유한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자신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외에는 포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저런 것들을 포기하면 인생은 상당히 편해진다... 인생이 별것인가. 날씨 좋은 날에 어슬렁어슬렁 산책 좀 하다가 맛있는 밥 먹고 느긋하게 목욕도 좀 하고 하면 그것으로 행복한 것 아닌가? 






백수도 여러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사회구조적으로 취업이 어려워서 백수가 된 경우도 있을 수 있겠고 나처럼 자발적으로 백수가 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또 몇년간 장기간 계속 쭉 백수인 경우도 있을 수 있겠고 이직전 몇달간 짧게 백수인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누구나 잠시동안은 백수일 수 있으며 지금 백수라고 해서 영원히 백수란 법도 없다. 매일같이 학교로 통학하고 직장으로 통근했던 삶이었다면 백수의 시기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위에서 소개한 세 가지 책을 통해 나와 같은 백수 동지들이 백수생활을 좀더 슬기롭게 보낼 수 있고, 그래서 백수를 탈출한 그 이후의 삶에 있어서도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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