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가 맞는 삶
<내 법대로 산다 - 봄 편> - 본문
퇴사를 한 지 어영부영 하다 보니 벌써 한달 정도가 지났다. 처음에는 ‘휴가가 왜 이렇게 길지’ 하는 느낌뿐 적응이 되지 않았다. 백수생활을 하게 되면서 새롭게 느낀 바가 있다면 시간이 원래 이렇게 남아도는 것이었나? 하는 점이다. 시간이 갑자기 많아졌고 배에 난 구멍으로 흘러 들어오는 물처럼 갑자기 들이닥친 시간에 어찌할 줄 몰랐다. 예전에는 ‘킬링타임’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항상 바쁘게 살아왔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데 왜 그런 소중한 시간을 죽이고 있는거지…”, 이런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말의 존재이유를 알게 되었다. 시간이 너무 남아돌아서 죽이지 않고서는 그 지루함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급기야 퇴사를 하자 마자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심각해지더니 전국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되면서 여행을 가기도, 모임에 참여하기도, 친구를 만나기도 어려워졌다. 강제로 방에 갇혀 심심해하던 찰나 문득 ‘이렇게 될 거였으면 재택근무를 조금 더 하다가 그만둘 걸 그랬나?’ 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웃음). 아무튼 코로나19 덕에 더욱 진정한 백수생활을 체험할 수 있었다.
사실 난 살면서 한번도 빈둥거리는 생활을 해본 적 없이 숨가쁘게 달려온 것 같다. 학창시절에는 대학 입시를 위해, 대학교 시절에는 원하는 과로의 전과와 로스쿨 준비를 위해, 로스쿨 시절에는 취직과 변호사시험 합격을 위해. 대학교를 휴학 없이 4년만에 졸업하고 로스쿨도 4년만에 졸업해서(1년 휴학을 하긴 했지만 이때도 거의 공부만 했다) 서른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로펌에 입사했다. 그래서 지금처럼 무언가 몰두할 목표나 일이 없는 백수생활은 완전히 처음이었다.
나는 나에게 스스로 가만히 있는 시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시간을 허투로 보내지 마라, 10분 단위로 시간관리를 해라, 시간을 알차게 보내라’ 등의 말을 너무 많이 들었던 탓일까. 모범생이었던 나는 그런 말을 아주 잘 따르고 자랐다. 그렇게 열심히 시간관리를 해서 남들이 알아주는 명문대에도 가고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인 변호사도 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테트리스 게임을 하는 것 마냥 빈 시간을 조금이라도 만들지 않기 위해 끈임없이 여러가지 일들로 내 시간을 가득 채웠다. 가만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쌓이면 인생이란 게임이 망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일과 일 사이에 붕뜨는 시간을 만들지 않으려면 시간마다 무엇을 할 지 미리 다 정해져 있어야 했다. 이 일을 하면서도 다음에 할 저 일을 생각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밥먹고 뭐할지를 생각하곤 했다. 뭔가 하고 있는 일이 끊겨서 공백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무엇을 할지 결정하지 못하면 초조, 불안해지고 결국 무엇을 할지 정하지 못해 생각만 하다가 그 시간을 흘려보낸 적도 다반사였다.
로펌에 다닐 때 또한 너무 바쁜 하루를 보냈었다. 깁밥을 사들고 출근해서 사무실에서 급하게 아침을 때우고 일하다가 점심에도 사무실에서 샌드위치로 때우거나 각종 세미나라는 명목의 모임에 가서 김밥을 먹고 또 정신 없이 일하다가 밤에 퇴근했다. 사무실 모니터 메모장에는 그날 처리해야 할 여러가지 일들이 산더미 같이 메모되어 있었다. 그 일들을 무사히 다 처리하기 위해서는 계속 일정을 체크하며 머릿속에는 항상 다음 일에 대한 생각과 걱정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퇴근 후에나 주말에 쉴 때에도 그냥 편히 쉴 수 있는 게 아니라, 관리하고 있는 30~40건의 사건들의 일정, 서면 기한, 고객 응대에 대한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짓눌렀다. 그러한 근심걱정을 잠시라도 놓기 위해 그마저도 얼마 되지 않는 내 시간을 어떤 것으로 꽉 채우려고 그다지 보고 싶지도 않은 넷플릭스나 유투브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렸다. 회사를 위한 시간과 나를 위한 시간 사이에 명확히 선을 긋고 나를 위한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발버둥친 것에 비해선 우스운 결말이었다.
그렇게 바쁘게 살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아침 출근을 준비하면서 샤워를 하는데 특이한 경험을 했다. 샤워를 하고 있는데 시야가 어두컴컴 흐릿해지고 샤워기에서 나온 물이 내 몸에 흐르는 촉감과 물의 온도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내가 실제로 샤워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꿈속에서 샤워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단순 빈혈 같은 증상이겠거니 하고 넘겼지만, 그 후로도 밖을 걸어다닐 때에도 가끔 흑백영화를 보는 것처럼 사물이 흐러멍텅하게 보이고 내가 무슨 행동을 해도 실제 내 행동 같지 않고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처럼 다른 사람의 뇌 속에 들어가 그 사람의 생활을 엿보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내 뇌 어딘가가 고장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화에서 자막이 영상보다 빨리 나오는 등 영상과 자막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싱크가 맞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그와 비슷하게 내 머릿속 생각은 항상 ‘그 다음은?’을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내 눈앞에 있는 현재를 앞질러 달려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눈 앞에 놓인 현재가 생동감 있는 현실로 다가오지 못하고 그에 집중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의 삶은 말하자면 ‘싱크가 맞지 않는 삶’이었다. 아니면 아예 영상에 맞지 않는 뚱딴지 같은 다른 자막을 틀고 있었던 것이었을 수도 있으리라.
그래서 이제는 달라지기로 결심했다. 내 삶의 싱크를 맞추고 싶었다. 지금까지 해야 하는 일만 바라보며 바쁘게 살아왔던 삶과는 정반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물론 처음부터 잘 되었던 것은 아니다.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퇴사자나 백수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인터넷과 유투브 등을 뒤져 할 만한 것들 리스트를 만들고 초등학교 방학계획표처럼 하루 일과를 빼곡히 계획하기도 했다. 습관이란 이렇게 무섭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대략적으로 세워놓은 일과는 남겨두되 예전처럼 나 자신에게 숙제검사를 하는 과외선생님처럼 빡빡하게 굴지 않기로 했다.
예전에는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해야 하는 일’에 병적으로 집착했고 그 날 해야 하는 일을 다 하지 못하면 맘이 불편했고 모두 다 완수하고 나면 그 날은 맘편히 잘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도감을 행복이라 착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득 ‘그래서 해야 하는 일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뭐지?’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내 일과에서 '해야 하는 일'은 버리고 '하고 싶은 일'만 남겼다.
이쯤에서 백수가 되어 달라진 나의 하루 일과를 소개해야겠다.
아침 8시에서 10시 사이 일어난다. 일찍 눈이 떠지는 날도 있고 전날 조금 늦게 잤으면 조금 늦게 눈이 떠진다. ‘일어나진다’가 정확한 말이리라. 이제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버렸다. 이건 백수의 특권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따로 알람은 해놓지 않는다. 좁은 창문을 통해 슬며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나의 알람시계이다(자취방이 북향이라 맞은편 건물의 창문에 반사되어 들어오는 햇빛이지만 그 소량의 햇빛도 너무 감사하다). 사람들은 잠을 푹 자기 위해 암막커튼을 사용한다지만 그건 아침 햇살을 맞이하며 잠에서 깨는 기쁨을 앗아갈 뿐이라고 생각한다.
일어나서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십분 정도 명상을 한다. 명상을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 내가 명상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가만히 앉아 생각을 잠시 멈추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적어도 시간을 뭔가로 꽉 채우려는 내 강박관념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명상하는 시간을 점차 늘릴 생각이다.
아침 식사는 간단히 과일과 빵으로 대신한다. 예전에는 식사를 할 때도 그 시간을 그냥 버리기 싫어서 학창시절에는 영어강의를 듣거나 회사에서는 업무거리들을 보곤 했지만 지금은 되도록 여유롭게 먹는 것에만 집중한다. 한 순간에는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왠지 식사가 더 맛있고 포만감이 드는 것 같다.
씻고 방에서 좀 쉬다가 11시쯤에 방을 나선다. 내가 향하는 곳은 바로 도서관이다. 서촌에 사는 나는 이상하게도 주변의 도서관 대신 도보로 40분 거리인 경복궁 반대편 삼청동 쪽 도서관(국립현대미술관이나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로 간다. 그 이유는 그 곳까지 햇살을 맞으며 산책을 하기 위함이다. 갈 때는 청와대 앞쪽 길, 올 때는 경복궁을 가로질러. 두 길 다 너무 아름답다. 사람들은 거리가 얼마나 짧은지, 시간이 얼마나 짧게 걸리는지 등등 효율성 같은 것들을 따지지만 나의 하루에 있어 햇살과 산책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다. 밝은 햇살은 쬔다는 것, 두 발로 여유로이 걷는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손쉽게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 아닐까. 이러한 것들이 빠져있다면 아무리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고 아무리 빨리 승진을 하고 아무리 빨리 성공을 이루었다고 해도 그다지 부러운 인생은 아닐 것이다.
도서관에서 하는 일은 글을 쓰는 일이다. 회사에 다닐 때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취미로 내 경험과 생각에 대해 간간히 글을 써왔지만 이제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쓰고 있다. 물론 로펌에서 썼던 서면들은 한 편에 바로 수백만 원 상당의 돈이 되는 것이었지만 지금 쓰는 글들은 전혀 돈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치만 개인적으로 더 즐겁다. 대략 쓰고 싶은 만큼 몇시간 정도 글을 쓰다가 늦어도 5시 정도에는 집에 돌아간다. 그런데 사실 날씨 좋은 날에는 글쓰기를 무시하고 훌쩍 인왕산에 오르기도 하고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사실 백수에게 애초에 꼭 해야 할 일은 별로 없다.
6시쯤 집에 돌아와서는 씻고 손수 밥을 해먹는다. 예전에는 편하게 법인카드로 비싼 밥을 많이 사먹었지만 지금 손수 차려 먹는 소박한 밥상(예를 들어 된장국에 쌈밥)이 오히려 내 입에 맞다. 요리를 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그 후에는 완전한 자유시간이다.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에서 다큐나 영화를 보거나 (주로 나초와 함께) 아니면 친구를 만나거나 모임에 가서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약속은 없는데 답답하면 밖에 나가 혼자 동네 구석구석을 산책하거나(우리는 생각보다 자기 동네를 잘 알지 못한다), 방에서 맨몸운동을 하거나 더 쓰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글을 더 쓰거나, 아무 것도 하기가 싫다면 로파이 음악과 캔들을 틀어놓고 그냥 침대에서 뒹굴거리기도 한다(가장 행복한 시간 중 하나이다. 가만히 있어도 더 이상 초조함과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 정해진 것은 없다.
그러다보면 12시쯤 넘으면 슬슬 졸리기 시작한다. 자기 전에 여자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뒹굴거리고 웃다가 잠든다. 그리고 다음날이 또 시작된다.
위와 같은 일과로 백수생활을 한 이후 내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주변의 사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예전에는 머릿속 가득한 생각 때문에 가끔 주위가 흐릿하게 보이고 현실감이 잘 느껴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주변이 또렷이 보이고 나아가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을 걷다보면 요즘 참새 무리가 길에 떨어진 뭔가를 쪼아먹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도시에 원래 이렇게 참새가 많았나? 원래도 있었겠지만 어렸을 때 이후로 잘 보지 못하던 장면이었다.
며칠 전에는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 앞 마당에 벚꽃이 활짝 피어있길래 벚꽃을 감상하고 있는데 새 한 마리가 꽃송이마다 돌아다니며 그 안에 있는 꿀을 따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막연히 꿀을 따먹는 새면 벌새인 줄 알았는데 인터넷에 찾아보니 ‘직박구리’라는 새인 것 같았다. 직박구리라는 이름의 새가 세상에 존재하는지 처음 알았다. 바쁘게 날개짓을 하며 꿀을 따먹는 직박구리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참 귀여웠다. 나는 한참 동안을 벤치에 앉아 어린아이처럼 이 조그만 새를 관찰했다. 그렇게 새에 홀려 시간을 한참 동안 보냈다. 내가 이렇게 일상에서 벌어진 사소한 일들을 TMI처럼 늘어놓고 있는 것은 내가 느낀 감동들을 조금이나마 글로 나누기 위함이다. 사소한 것들은 결코 사소하지 않을 수 있다.
예전의 내 삶은 흐릿한 흑백영화였지만 지금의 삶은 해상도 높은 컬러영화이다. 거기에 귀여운 참새와 직박구리가 까메오로 출연하기도 한다. 이제 내 머릿속 생각과 내 눈앞의 현재가 점차 일치되어 감을 느낀다. 그래서 난 지금의 내 삶이라는 영화에 예전보다 더 몰입할 수 있다. 싱크가 맞는 삶, 이건 어쩌면 카르페디엠, 지금-여기 등 ‘지금을 살아라!’ 라고 지겹도록 들었던 교훈과 관련되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내가 백수생활 한달차 얻게 된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