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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이너 Mar 31. 2024

개업변호사의 진짜 능력은 '패전처리'에서 나온다?

내가 되고 싶은 이상적인 개업변호사의 모습

좌충우돌 로펌개업기






개업변의 진짜 능력은 '패전처리' 기술?


모 변호사 커뮤니티에서 우연히 개업변호사의 진짜 역량은 '패전처리'에서 나온다는 글을 보았다. 글에는 많은 댓글들이 달리며 굉장한 공감수를 받았다. 요지는 이러했다. 


지는 사건, 즉 '패전'도 의뢰인을 잘 구워삶아서 불만 없도록 잘 '처리'하는 것이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 능력만 갖추게 되면 질 사건도 자신감을 갖고 수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업 변호사, 아니 송무 변호사의 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힘든 점이 바로 사건에는 '승'과 '패'가 있다는 것일테다. 이길 때는 기분이 날아갈 정도로 좋고 의뢰인의 감사인사도 받고 뿌듯하지만, 질 때는 의뢰인에게 결과를 알리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러나 모든 사건을 이길 수는 없다. 애초에 질 게 뻔한 사건은 거른다 하더라도 송무는 가능성의 영역이기 때문에 지는 사건도 생길 수밖에 없다. 나에게도 가슴 아픈 사건이 하나 있다. 우리 의뢰인은 사기죄로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변호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전까지 경찰과 검찰은 다른 생각이었지만 나는 의뢰인의 말만 들은 게 아니라 CCTV를 직접 봤기 때문에 의뢰인이 누명을 썼다고 확신했다(물론 지금도 그렇게 확신한다). 


무죄를 확신했기에 나는 더욱 열과 성을 다해 무죄 방향으로 증인신문사항과 변호인의견서를 치밀하게 준비하고 재판에서도 열정적으로 CCTV 장면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판사에게 억울함을 토로했다. 판사에게 잘 전달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뢰인분이 내게 한 말은 남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해주실 수 있으세요? 
 


이렇게까지 의뢰인의 편에서 변호해주는 게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더욱 놀라웠다.. 판사는 끝내 우리의 생각과 달랐고 유죄를 인정하고 기소된 벌금보다 더 높은 벌금을 선고했다.  





패소 의뢰인에게도 감사인사를 받자 


실망스런 결과에 나는 한동안 우울감을 겪었던 것 같다. 내가 판사의 성향을 파악하지 못하고 잘못된 전략을 펼친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의뢰인의 사건을 망친 것은 아닌지 계속 곱씹게 되고 죄스러운 마음이 자꾸 들었다.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고민하며 최종 마무리 인사를 드리는데.. 의뢰인은 오히려 내게 그동안 고생하셨다고 정말 감사했다고 말해주었다. 패소한 의뢰인에게 위로를 드려야 하는데 내가 그 말에 위로를 받았다. 말은 안 해도 내가 사건을 진행하며 어떤 마음이었는지, 어떻게 준비했는지 알기 때문이리라. 의뢰인분한테는 이듬해 새해인사까지 먼저 오기도 했다. 


흐뭇한 결론이지만 당연히 모든 사건이 아름답게 끝날 수는 없다. 처음에는 무조건 이긴다고 하지 않았냐고 기억을 왜곡하는 의뢰인, 자신이 중요한 사실관계나 자료를 숨기고 그것 때문에 져놓고 변호사 탓을 하는 의뢰인, 무혐의는 분명 어렵다고 했는데 우겨서 무혐의 주장을 했다가 지고 환불해달라고 하는 의뢰인 등등. 이런 경우에는 나도 핏대높여 싸우고 지저분한 결말을 맞기도 한다. 


허나 그런 특수한 경우가 아닌 한 우리와 같이 사건을 진행했던 의뢰인들이 혹시 사건이 지더라도 그 과정에서 우리의 진심을 느끼고 그 속에서 위로와 치유를 얻기를 바란다. 위에서 말한 건 이후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개업변호사의 모습, 내가 되고 싶은 개업변호사의 모습은 (사건을 이겼을 때 감사인사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건을 졌을 때도 의뢰인에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감사했다고 감사인사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감사인사를 받으려면 그냥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패전처리'가 중요하다는 글처럼 어떤 기교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느껴지는 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 의뢰인의 사건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는 진심어린 마음, 내 일처럼 같은 편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단순히 처리해야 할 하나의 사건으로 보지 않는 마음.. 


아직은 너무 부족하고 정말 어렵지만 그런 개업변호사가 되고 싶다. 






p. s. 물론 그 전에 결과도 이기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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