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 잘하네
“혹시 자주 넘어지시거나 삐끗하시지 않으세요?”
이 사람 뭐지 점쟁이인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지그시 쳐다보았다.
이십 대 때는 하이힐을 신고 다녔으니까 삐끗 안 하는 게 더 어렵지 않나. 하이힐은 안 신어 봤으니 잘 모르는 구만,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다 문득 그저께 일이 떠올랐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전 넘어져 생긴 상처를 이마에 달고 온 참이었다.
그날은 좀 이상했다.
한번 밖으로 나가기가 둘째 아이 받아쓰기 백점 받아올 확률보다 드문 내가 그날따라 갑자기 한밤중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고 싶어졌다.
그냥 참고 그다음 날 버리거나 나가는 사람 손에 들려주어도 되었겠지만 그날따라 당장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충동에 휩싸였다.
날이 조금만 밝았다면 괜찮았을까.
깜박, 한 박자 늦게 켜지는 자동센서 조명 아래를 지나가는 순간 다리가 휘청이더니 방어할 틈도 없이 꽝 하고 벽에 이마를 부딪혔다. 돌부리에 걸려 휘청였다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정말 이유가 없었다.
때마침 엘리베이터는 문이 열렸고 먼저 타고 있던 사람은 어서 타라며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었다.
차마 먼저 가시란 말을 못 해 잽싸게 이마를 가린 후 타서 거울로 이마를 확인하는데 세상에,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진짜 가지가지한다, 자괴감이 들었다.
번개처럼 머릿속을 지나가는 그날 일에 아니라고 그런 적 없다고 잡아뗄 수도 없어졌다.
그저 글쎄요, 하고 얼버무릴 뿐이었다.
“회원님, 무릎이 안쪽으로 말려있어요 바깥쪽 근육이 없어서 그런 건데 그런 다리들이 잘 넘어지거든요, 그리고 나중에 관절염 오기가 쉬워서 엉덩이 근육을 키워야 그나마 보완이 돼요.”
선생님, 저의 굵은 다리를 보시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시는 건가요.
싶었지만 하체운동을 할 때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 안쪽으로 말리는 무릎을 보니 정말 그런가 싶었다. 자주 쓰는 근육에 따라 몸이 맞춰서 적응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평소에 두통은 심하지 않으셨어요?”
아니 이 사람 진짜 뭐지 용한데.
'머리 아파'는 우리 집에서 그냥 '밥 먹었어'처럼 흔한 안부인사와 무게를 가진 말이었다.
고모들이 두통은 김 씨 집안의 고질병이라길래 그냥 그렇구나 여기고 평생 같이 갈 친구쯤으로 여기면서 살고 있었는데 그게 왜 여기서 나오나요.
“승모근이 많이 뭉치셨어요, 승모근은 뒤통수까지 연결돼있는 거라..”
어찌 됐건 그것도 근육의 영향이라는 것이었다.
어깨 근력을 키워주면 저절로 해결될 거라는 말도 덧 붙였다.
몸의 주인은 쓰레기처럼 살고 있는데 그동안 너희들은 서로 협력해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구나 버티고 버티다 살려달라 신호를 준건데도 막살아서 미안해.
운동할수록 몸에 대한 미안함만 늘어갔다.
오늘도 헬스장에 왔다.
운동을 왔으니 몸을 풀어 줘야지, 일단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아닌 척 주변을 둘러본다. 오늘은 등 운동이 핫하구먼. 이리저리 허리를 뒤틀다 손을 쭉 뻗어 발끝을 잡아본다. 아이고 안 닿네. 아닌 척 일어선다.
왼발 돌리고 오른발 돌리고.
옆자리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다.
“오늘 몸은 괜찮으세요?”
“어제 김장을 해가지고 컨디션이 많이 안 좋네요. 허리가 아파서 어제도 운동 쉬었어요”
“회원님 그럴수록 운동을 더 해서 근육을 풀어 줘야 해요. 김치를 버무릴 때 장시간 몸이 말려있기 때문에 이쪽 근육 있죠 여기가 무리가 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연쇄적으로 이쪽까지 영향을 받는 거고요.”
이건 뭐 헬스장이 아니라 병원이네
손목을 돌리며 멍하니 생각했다.
결론은 근력이다. 근력을 키우는 게 답이었다. 아 망했네.
알게 된이상 적외선 치료기 아래에 누워 편하게 물리치료받는 삶은 끝났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이 된다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