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태어난 기린의 심정
세상에는 많은 운동이 있다.
수영, 필라테스, 요가, 킥복싱, 그러니까 운동을 하는데 굳이 헬스일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갈 만한 수영장은 다 문을 닫았고, 신랑은 바디 프로필을 준비하느라 P.T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냥 대충 유튜브 보고 운동하면 안 돼?"
라는 말에 비웃음이 꽂혔고 한번 상담이나 받아볼까 했던 자리에서 트레이너와 신랑의 농간으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왔다.
그렇게 P.T 첫날, 아웃렛을 돌며 새로 구입한 운동복을 입고 어색하게 트레이너를 기다리는 심정은 마치 새 학기 첫날 모르는 친구들 사이에서 담임선생님을 기다리는 것처럼 몸이 꼬이고 어색했다.
이대로 안 한다고 도망갈까, 머릿속에서는 이미 진상고객이 되어 환불해 달라 조르고 있었고 막 법정공방까지 가려던 참에 트레이너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도망갈까 재고 있던 것이 무색하게 첫 수업은 스트레칭이라는 가볍고 부담 없는 운동을 했다.
폼롤러를 바닥에 두고 그 위를 이리저리 반죽처럼 몸을 굴리며 근육을 풀어주는 행위로 아무리 허리를 구부려도 손 끝이 내 발끝에 닿지 못하는 유연성을 가진 나로서는 위안과 안심을 주는 운동이었다.
그렇게 등과 다리 위주로 위치를 바꾸며 근육을 풀어 줄 때마다, 트레이너는
"어휴, 이 부분 눌러주면 진짜 눈물 나게 아픈데, 어떨 때는 너무 아파서 비명이 막 나와요" 라며 마치 본인이 고통받는 양 인상을 찌푸리며 엄살을 부렸다.
아, 그렇구나 아파야 하는구나
하지만 그 트레이너가 한 가지 놓친 게 있었으니 근육으로 가득 찬 본인의 몸에 비해 평생 운동을 해본 적 없는 말랑 말랑한 몸의 소유자로서, 근육이 뭉친 부분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굴려봐도 도통 아픈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차마 아프지 않다는 말을 못 해 몸을 이리저리 굴려 눈물 나게 아프다는 부위를 찾아 지그시 누르며,
"아하하, 맞아요. 좀 아프네"
열과 성을 다하는 트레이너를 실망시킬 수 없어 적당히 맞장구 쳐주며 첫 시간을 보낸 후 '뭐야 별거 아니네 좀 돈 아까운데'라고 생각하였더랬다.
그 생각은 정확히 그다음 반성의 시간을 가졌으며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 지난 날의 나를 쳐버리고 싶을 만큼 둘째 날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을 배웠다.
어떤 부위를 스트레칭해야 눈물나게 아픈것일까 알려주지 않아도 알수있었다.
이것은 종아리 근육이요, 이것은 팔 근육이니. 움직일 때마다 고통이 가해지는 부위로 내 근육의 안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옛날 티브이에서 동물의 왕국을 볼 때, 갓 태어난 기린이 일어서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장면이 떠 올랐다.
그렇게 나는 한 마리의 갓 태어난 기린이 되어있었다.
내 마음대로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었다.
일어서기라도 할 때에는 더 큰 결심이 필요했다.
무릎을 꿇고 심호흡을 한 다음,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옆에 있는 아무 물건에 도움을 받아, 한 다리 그리고 다음 다리를 펴서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걷기라도 할라치면 또 어떠한가.
내 다리이지만 내 다리가 아니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제멋대로 푹 푹 꺼지는 무릎을 부여잡고 한걸음을 십리처럼 걸었다.
'오늘 몸 상태가 어떠세요?'
운동을 하고 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내 상태를 물어오는 트레이너의 문자가 왔다.
'너무 아파 죽을 것 같아요'
라고 우는 소리를 하면 아주 운동이 잘 되었다고 잘 배우신 모양 이러고 흐뭇해했다.
아니 제가 고통스럽다니까요
무슨 운동을 어떻게 배웠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내 몸의 고통으로 배움을 결정해버리다니.
나의 고통의 누군가의 기쁨이 되는 이 잔인한 현실, 특히 고통받는 쪽은 항상 내가 된다는 현실이 믿을 수가 없었다.
헬스란 이렇게 잔인한 운동이구나. 괜히 시작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