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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녕 Mar 07. 2023

맞벌이의 저주

오마오마갓

미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음

부모들 사이에서는 알음알음 전해 내려오는 몇 가지 미신들이 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하지만 한번 들으면 종교를 가지고 있다 해도 무시하기 려운 것.

그게 뭐야 하고 넘기기에 찜찜한 것들을 우리는 아이를 키우면서 시시때때로 경험한다.



우리 아이 잔병치례도 없고 너무 건강해


초보엄마 때에는 아이의 모든 것이 대견했다.

눈만 마주쳐도 기특했고 뒤집기만 해도 물개박수를 쳤다. 그런 아이가 잔병치례도 없다니 그야말로 커다란 축복 같았다.

"어쩜 변비도 없지 뭐야. 유산균 그런 거 필요 없더라고"

지금 생각하면 주책이 따로 없구나 싶지만 그때는 내가 낳은 생명체에 경이로움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어머니, 애가 어찌나 튼튼한지 올 겨울 이렇게 추운데도 감기 한번 안 걸렸어요."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그러다 큰일 난다. 내 새끼 예쁘다 장하다 그러는 순간 신이 질투해서 장난친다고."

"푸하하, 그게 뭐예요."

선조의 지혜라고 했거늘, 후손 나부랭이가 조상님의 지혜를 무시하는 언을 했기 때문일까.

그로부터 얼마 뒤 한밤 중 응급실행, 그대로 입원이라는 큰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입을 다물었다.

우리 애는 너무 순해


"밥도 잘 먹고 밤에 잠을 자면 깨는 법이 없어"

"쉿,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삼신할머니 듣는다"

아니 뭔 말을 못 하게 해.

예쁘다 잘한다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지나가는 신이 질투를 해 딱 지금과 반대로 행동하게 만들 거라고 했다. 그 옛날 아이의 이름을 개똥이라 지으며 함부로 불렀던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라고.

이 무슨 개똥 같은 신인지. 내 새끼 잘하는 것도 숨겨야 하나 뾰로통했으나 한번 호되게 당한 역사가 있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그리고 대망의

  나 다음 주부터 출근해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난 뒤 어린이집에 있을 시간만 잠깐 하는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시간대가 괜찮다며 좋아했던 것도 잠시,

"네 독감입니다."

출근을 이틀 앞두고 날벼락이 떨어졌다.

전염성 있 어린이집도 못 가는데, 갓 출근하는 입장에서 날짜를 미뤄달라 할 수도 없고 발만 동동 굴렀다.

결국 시어머니께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두 분께 옮길까 죄인처럼 납작 숙이며 아이를 맡겼고 출근하고 나서도 온통 신경은 앓고 있을 아이에게 있었다. 부랴부랴 퇴근해서 가면 열이 떨어지지 않아 벌게진 얼굴의 아이가 그래도 엄마라고 반겨주는 모습에 눈물이 났다.

미안하고 서러웠다.


"괜히 일한다고 했나 봐 그냥 애나 볼걸"

"왜?"

"그저께 둘째 독감에 걸렸어. 어린이집도 못 가는데 엄마도 없이 앓는 거 보니 맘이 너무 아프더라고."

"아, 그거 원래 그래."

"원래 그런 게 뭐야?"

"꼭 엄마가 일하기 직전에 아프더라고, 시험하듯이. 그맘 아파서 포기하면 그만두는 거고, 아니면 그 고비를 잘 넘기는 거고. 그것만 넘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져."


그 말이 위안이 돼서일까. 이까짓 푼돈 벌려고 아픈 아이 두고 나와 일하고 있나, 순간순간 나를 찌르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것만 넘기면 된다고 다독일 수 있었다.

수많은 번민과 죄책감과 미안함을 이겨낸 결과 아이는 건강하게 회복하였고 크게 탈 나는 일 또한 없었다.


그 뒤 삼 년. 코로나 시기를 지나 새로운 직장을 구하게 되었다. 역시나 출근하기 한 달 전에 가족들이 돌아가며 독감에 걸렸다. 그래도 이번에는 일찍 액땜하는구나 하고 음을 놓았더랬다.

안심한 게 문제였을까.


"네 골절입니다."

오.. 마이.. 갓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출근을 3일 앞둔 날 아이는 밖에서 놀다 손가락을 부려뜨려왔다.

축구를 하다 혼자 넘어져서 그랬다 하니 누굴 원망할 수도 없었다.

깁스는 무조건 한 달을 하고 있어야 고 적어도 삼 개월은 조심해야 된다고 했다.

인대를 다쳤겠거니 하고 일주일정도 생각했기에 그야말로 등에 불이 떨어졌다.

다니고 있던 학원은 모조리 쉬어야 했.  말은 긴 시간 동안 아이혼자 집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번에는 조용히 넘어가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내가 못산다 진짜

다치려면 진작 다치지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이 입에서 맴돌았다.


"너이제 엄마도 집에 없을 텐데 어떡할래"

"엄마 없어? 앗싸, 게임하고 있어야지"

"웃음이 나와?"

속은 나만 터졌다.


말이 되나 싶어도 무시할 수 없는 미신

알고 있다.

아이를 키울 때는 항상 겸손하고 조심하고 신중하라는 뜻으로 삼신할미든 지나가는 어떤 신이든 빚대서 하는 조상님들의 충고라는 것을


하지만 이 정도 타율이면 거의 저주 수준 아닙니까.

내가 명절에 전을 얼마나 열심히 부쳤는데  밥값 못하시네

괜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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