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 몸 다닐 회사가 없다
저번 직장은 지금 생각해도 어린 직원이 버티긴 참 힘든 곳이었어. 나잇대가 높은 분들 사이에 어린 직원 하나가 들어간 거니까. 주에 몇 번씩 꼭 노래방까지 찍는 회식을 하던 곳이었지. 옛날 분 들 이어서 그랬나? 꼭 테이블 넘어가는 수저세팅에도 팔짱 끼고 앉아서 기다리시더라. 웨이터라도 된냥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수저 세팅하고, 물 따르고. 참 지내기 힘든 회사였지.
이런 일도 있었다? 나만 비흡연자이고, 다른 분들은 다 흡연자였는데 그 좁은 노래방에서 모두가 담배를 끊임없이 태우더라고. 어둡고 매캐한 노래방. 내가 담배를 태운 것도 아닌데 콧 속이 새카매지더라. 몇 번이고 물티슈로 닦아내고 집에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버스에 있던 사람들이 코를 틀어막았지. 어떤 분이 ‘이렇게 담배 태울 거면 대중교통을 타면 안 된다.’고 하더라. 한정거장만에 내리고, 엉엉 울면서 집에 갔잖아. 차라리 내가 태웠으면 억울하지도 않은데 입에도 대보지 않은 담배 때문에 욕먹던 날, 서럽더라!
일 할 때 말은 얼마나 못되게 하던지. 기가 죽어 ‘일 못하는 직원’ 검색하면, 다 내 얘기 같아서 더 서럽게 울었잖아.
거기서 1년 넘게 버텼어. 학과 교수님도 주변 어른들도 딱 1년만 버티면 모든 게 달라진다 하더라. 그래서 겨우 1년을 채우고 회사에서 나왔잖아.
그런데 웬걸, 6개월 동안 취업이 안되더라. 지금 생각해도 그 시기가 참 신기해. 여태 이 일을 하면서 그렇게 취준생이 많았던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야. 좋은 회사도 아니고 복지에 겨우 4대 보험 하나 넣어주는 회사에 지원자가 300명이 넘어갔으니까. 처음에는 동경하던 회사에만 지원했는데 면접조차 못 가. 게다가 구직 어플 알림은 구직자에게 얼마나 잔인하던지.
- A회사가 이력서를 열람했습니다.
- B회사가 이력서를 열람했습니다.
- A회사가 이력서를 재열람 했습니다.
구직자 미치게 알림이 계속 오더라. 최저임금 받던 내가 모아둔 돈이 어디 있었겠어. 그만둘 때 쥐고 나온 돈은 쏜살같이 사라졌지. 막판에는 보험료도 못 내고, 엄마한테 한두 푼 빌리기도 했잖아. 그때 되게 비참하더라. 나를 괴롭혔던 회사에서 나온 게 잘한 게 아니라 못한 일이 되는 것 같아서.
공고도 잘 안 올라왔어. 결국 [신입]에도 지원했었지. 그렇게 간절히 바랐던 1년 경력을 잠시 내려두고 구직활동을 한다는 게 그때는 너무 속상했잖아. 나는 겨우 1년을 버텼는데, 그 시간이 고작인 것 같아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구직 사이트를 도는데 하나가 눈에 들어왔어. 아직도 기억나.
[S 컴퍼니, 신입 디자이너 모집. 주 6일 근무]
주 5일 근무가 당연시되는 시대에 주 6일이라니. 보면서도 기가 막혔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가릴게 어디 있어! 지원서를 넣었지. 면접 연락조차 안 온 지 몇 달 째라 처음에는 큰 기대 없이 넣었던 것 같아. 그런데 내가 알았겠니. 지원서 넣었던 그날 오후 2시쯤,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잖아.
- 김박이 씨 핸드폰 맞나요?
- 네, 맞아요.
- S 컴퍼니입니다. 내일 오후 중 면접 가능할까요?
구직활동 몇 달 만에 면접이라니. 너무 설레어서 어느 시간대로 다 가능하다고 말했지. 그러고 면접을 보는데 다음 주부터 나오라고 하더라. 나한테 고민해 볼 여유가 어디 있겠어. 그저 나한테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지. 집까지 어떻게 갔는지 기억도 안 나. 발이 땅에서 동동 떠다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