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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이 Jul 08. 2024

첫인상

사무실을 소개합니다

첫 출근 날, 설레서 30분을 일찍 출근했는데 문이 잠겨있더라고. 출근 시간도 아닌데 먼저 연락하면 불편해할까 봐 사무실 앞을 맴돌았어. 한참을 그러고 있었는데 어떤 할머니가 말을 걸어 주시더라고.  할머니와 꽤 오랜 담소를 하고 나니 9시가 지났더라? 먼저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기다리기를 택하고 계속 기다렸어. 9시 반쯤이던가. 누가 사무실 문 앞에 차를 대더라고. 느낌이 왔지. 아! 회사 분이시구나. 소심하게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었어.


    - 안녕하세요. 저 오늘 S 컴퍼니에 첫 출근한 김박이라고 해요.

    - 아, 네. 안녕하세요. 왜 밖에 계세요?

    - 사무실 문이 잠겨있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 아무도 안 왔어요?

    - 어…. 네.

    - 일단 들어와요.

 

알고 보니 그날따라 모두가 지각을 한 거더라고. 도어록을 풀고 사무실 안에 들어가니 2평 정도 되는 작은 마당에 냉한 공기가 온몸을 찌르더라. 사무실은 마당과 건물이 있는 곳이었는데, 면접 때 마당에 있는 회의 테이블에만 있어서 실내로는 처음 들어가 봤어. 사무실 첫인상? 정확히 기억나지.


좁다.

 

거짓말 안 하고 사람 서넛 정도가 누우면 꽉 차는 좁은 사무실이었어. 그중 가장 구석자리가 내 자리였지. 사무실이 좁아서 책상이 되게 작았어. 요즘 사무실 책상들이 적어도 1인당 가로 1,600mm x 세로 600mm는 사용하거든? 그때 당시 다른 직원 하나랑 테이블을 같이 썼는데 가로 1,800mm에 세로 450mm 정도 되는 좁고 긴 책상이었어. 1인당 가로 900mm 정도 사용한 거지. 900mm이면 가만히 선 상태에서 한쪽 팔만 옆으로 벌렸을 때의 공간정도 되거든? 지금 생각하면 열악한 환경인데, 그때는 그 좁은 책상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내 책상이 생긴 거니까!


회사는 스타트업이었어. 인원도 나 포함 4명에다 사무실을 차린 지 겨우 몇 개월 된 곳이었어. 참 작고, 좁았지.

사람이 앉아있으면 그 뒤를 지나가야 화장실을 갈 수 있는 구조는데, 너무 좁아서 자꾸 의자를 치게 되더라니까!


좁은 사무실에 장점은 바닥 보일러였어. 바닥 보일러 사무실이 얼마나 좋은지, 일반 사무실에서 겨울 겪어본 사람들은 알걸? 히터 때문에 눈은 건조한데 실내가 막 따뜻하진 않거든. 근데 바닥이 따뜻하면 사무실 전체가 후끈했거든. 아! 그런데 창문이 나무 창틀이어서 틈새가 있었다. 바람이 숭숭 들어오더라고. 바닥은 따뜻한데 공기 순환도 됐어. 얼마나 좋아. 안 그래?


내가 회사 막내여서 온갖 잡일을 많이 했지. 사무실이 좁아서 마당에서 미팅했다고 했잖아. 그러면 미팅 전에 마당이 따뜻하도록 라디에이터를 틀고, 기름 난로를 때웠어. 근데 기름난로 버튼이 망가져서 연통을 들고, 기름난로 안에 있는 심지에 직접 성냥을 갖다 대어서 불을 지필 수 있었다?

먼지는 어느 틈에서 들어오는 건지! 지붕이 있는대도 마당에는 항상 낙엽과 먼지가 가득했어. 미팅 있는 날이면 난로에 불을 켜고, 마당을 쓸고, 신발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테이블을 닦았어. 아, 향 좋으라고 향수도 뿌렸었다. 설명하고 보니까 진짜 노비 같다.


근데 클라이언트가 오시면 마실 커피를 준비하려고, 커피머신을 딱 켜잖아? 그럼 두꺼비 집이 내려갔어. 전기 용량이 모자라서! 그러면 회의 자료 켜둔 모니터도 꺼지고, 난로도 꺼져. 그럼 클라이언트는 당황하는데 사무실 사람을 일절 동요하지 않고 하던 말을 이어가. 그러면 내가 회의하던 마당을 지나가서 두꺼비 집을 태연하게 올리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거야. 진짜 웃기?

 

근데 그게 싫지 않았다? 그냥 웃긴 이야기지 그게 불편하다곤 생각 못했어. 그냥 라디에이터 켜기 전에 커피 머신을 사용하고, 그다음에 라디에이터를 켜면 됐거든. 그리고 기름난로가 얼마나 낭만 있게! 사람들 ASMR 틀어 놓잖아. 우린 그게 필요 없었어. 기름 난로에 타닥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추운 겨울날 기름 난로 위에 양은 주전자를 둬 보리차를 끓여서 나눠 마시기도 했어. 그러면 사무실 전체에 보리차 구수한 냄새가 돈다? 나는 그게 익숙해서인지 아직도 티백을 물에 우린 건 별로 안 좋아해. 보리차는 역시 은은한 불에서 끓여 마셔야 맛나더라고.


가끔 일하다 보면 배달 음식 시켜 먹을 때가 있잖아. 거긴 바닥 보일러가 되니까 치킨, 피자 같은 건 꼭 바닥에 앉아 먹었어. 근데 사무실이 좁았다 했잖아. 치킨, 피자를 먹으려면 좁아서 양반다리도 못했다? 다들 쪼그려 앉거나 무릎 꿇고 앉아 먹었어. 진짜 좁고, 별로다. 그? 근데 왜 나는 그때 기억이 이렇게 생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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