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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이 Jul 15. 2024

명함 받던 날

그게 뭐라고, 소속감

오늘 이직한 친구에게 명함을 받았어. 희고 빳빳한 종이에 적힌 이름 세 글자. 명함을 주던 친구 표정이 얼마나 설레어하던지. 내가 명함을 받았던 때가 기억나더라. 


S 컴퍼니에 들어가고, 얼마 안 가 내가 한 일이 뭔지 알아? 회사 로고 만드는 일이었어. 지금 로고 폰트가 묘하게 마음에 안 든다며, 예시 사진과 비슷한 폰트를 찾으라 더라.

상업용 무료 영문 폰트 사이트 1페이지부터 100페이지까지 돌며 비슷한 폰트는 다 다운로드한 것 같아. 그렇게 몇 개의 폰트로 회사 이름을 써서 내보이니 선배가 그러더라고. 


    - 이건 너무 O(영어 오)가 동그랗잖아. 너무 똥그란 거 말고, 덜 둥근 걸로 해야지.


이게 뭔 말인지. 동그란 게 동그랗게 생긴 건데, 덜 둥그런 게 뭔데. S(영어 에스)는 이게 제일 똑같구먼! 툴툴대며 1000페이지까지 찾아본 것 같아. 며칠에 걸쳐서 '동그랗네, 둥그렇네.'를 반복하다가 최종 로고가 결정되었어. 그러고 일러스트 파일 하나를 주더니 내 이름과 연락처를 쓰래. 그래서 썼지.


    김박이 010-1234-5678


원래 파일에 직급이 적혀있어서 선배에게 물었지. 


    - 저는 사원이라고 적으면 될까요?

    - 음. 아니 주임이라고 써.


그래서 내 직급은 주임이 되었어. 다행히 1년 경력이 없어지진 않았네! 

♪모-든↘ 인- 가↗능한 성원-애드피아

알아? 라디오에서 들어봤을걸? 거기서 명함을 주문했어. 


    [고급지 명함 제작] - [400g 종이]

    [첨부 파일] - [S 컴퍼니 - 전 직원 명함 발주 파일(아우트라인)]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나. 내 손바닥만 한 작은 택배 상자가 오더라고. 명함 첫 장을 이름 보이게 뒤집어두고, 두 번째 장은 내 주머니에 넣고 명함 주인을 찾아주었어. 자리에 앉아 가장 마지막에 내 명함 박스를 열었어.


    S 컴퍼니

    김박이 주임

    010-1234-5678


카드만 한 종이 한 장이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이제야 진짜 이 회사에 식구가 된 것 같이 기쁘더라고. 

그리고 회사 분들께 양손으로 명함 한 장을 내보이며 말했어. 


선배님. 저 명함 나왔어요. S 컴퍼니 김박이 주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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