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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키미 May 01. 2018

식탐 있는 여행 메이트

여행기를 시작하며


쿠바 여행 마지막 날의 일이었다.


우리는 식사를 주문하고 슬러시 모히토(Mojitos Frozen) 맛에 감격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돈 걱정 없이 즐기는 술이었다. 체감 40도 태양열에 증발하기 직전 만난 술이었다. 칵테일 잔 가득 찰랑이게 담긴 술이 행여 흘러내릴까 건배도 건너뛰었다. 첫 입에 동공이 확장되었다. 두 입에 우리의 인생 모히토 정점이 찍혔다. 헤밍웨이가 즐겼다던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의 모히토보다도 최고였다. 세 입은 선뜻 다가갈 수 없었다. 줄어드는 게 아까워서.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아까부터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엔 흘끗였으나 이내 몸이 우리 쪽으로 향할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신경 쓰이진 않았다. 동양 여자라는 이유로 여행 내내 수많은 시선을 받았다. 우리가 그들을 구경하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를 구경하는 것뿐. 부정적인 시선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예뻐하고 귀여워했다. 그도 그랬으리라.


사진을 찍어주겠단다. 잔을 들고 렌즈를 바라보라고 주문했다. 잔을 내려놓은 채로 스트로우를 잡자 그게 아니란다. 한 방울 한 방울이 소중한데 왜 위험하게 잔을 들어. 그리고 우린 지금 사진 찍을 기분이 아냐! 모히토와 우리의 시간에 끼어들지 마. 쿠바에서 동양 여자로 여행하기 피곤하네. 오만 생각이 밀려드는 찰나, 사건은 벌어졌다. 우리가 말을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지 그가 다가와 친구의 잔을 들어 보인 것이다. 생명수 같은 모히토가 흘러내렸다.


순식간이었다. "Oh, Sorry!" 반사적으로 말하는 그와 달리 우리 화면은 정지했다. 잔 아래 티슈가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빠르게 상황을 스캔했다. 모히토가 테이블 위를 적셨나? 아니다. 티슈 주위를 적신 정도다. 모히토는 얼마나 남았나? 잔에 95% 정도 차 있다. 내 잔의 양과 비교해보니 세 입 정도 차이 나 보였다. 그렇다. 별 일 아니었다. 그때 친구의 눈이 질끈 감겼다. 이 상황을 믿고 싶지 않아서 감은 게 아니었다. "으아앙!" 외마디 울음과 함께 서럽게 얼굴이 구겨졌다. 장난감 빼앗긴 꼬마처럼 으앙 하는 이 얼굴, 본 적 있다. 친구가 만취해서 투정 부릴 때였다. 심장이 쿵했다. 안돼! 울지 마! 곧이어 친구는 그를 노려봤다. 그리고 아이처럼 울먹이는 투로 영어 한국어 섞어가며 쏘아붙였다. 그가 미안해하며 자리로 돌아가는데 뒤에 대고 “미안하면 다야? 미안하면 사주든가”하며 구시렁댔다. 그만해... 그는 주눅 들어 보였고 친구는 정말로 화나 보였다. 눈빛에 화가 있었다. 바텐더를 불렀다. "저 사람이 실수해서 이게 흘렀어. 한 잔 더 줄 수 있어? 내 잘못이 아니라니까?" 안돼! 그러지 마! 눈 깜짝할 새 말해버려서 말릴 새도 없었다. 처음 본 모습이었다. 영어를 못하는 나 대신 여행 중 커뮤니케이션은 대부분 친구의 몫이었다. 하지만 친구도 유창한 건 아니어서 행동 전 로딩이나 행동 중 버퍼링이 따랐다. 그러다 보니 친구도 나도 성격만큼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았다. 내심 답답했지만 친구의 수고가 고마워 재촉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랬던 친구가 빠르고 정확하게 원하는 것을 요구한 것이다. 술을 달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로딩도 버퍼링도 없이. 물론 거절당했다. 95%나 남아 있었잖은가.


내가 할 수 있는 건 놀라는 일뿐이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했다. 이게 화날 일인가? 새 술을 달라 요구할 일인가? 95%나 남아 있는데. 오늘 우린 돈도 많은데. 아무리 생명수 급이어도. 자기 의지로 일어난 일이 아니어도. 안 그래도 동양인이라고 주목받는 곳에서. 어린아이처럼 막무가내로. 서른 넘은 어른이. 앞뒤 없이. 답을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화낼 일, 맞다.

내가 잠시 잊었다.

내 친구 짜이의 식탐/술탐을.





"언제부터 먹을 거에 집착하기 시작했어?"

- 어릴 때부터. 아니 태어날 때부터


먹고 마시는 것에 관한 한 짜이는 프로페셔널하다. 많이 먹는다. 맛있게 먹는다. 맛있는 걸 찾아 먹는다. 없으면 만들어 먹는다. 식탐 있는 대식가이자 미식가인 것. 반면 나는 비교적 식탐 없는 중식가이자 미식가. 식탐 DNA를 이해하진 못하지만 미식에 있어선 뒤지지 않는다. 한 끼 황홀경이 보장된다면 큰 지출도 기꺼이 감수한다. 그런 면에서 짜이랑 잘 맞았다. 함께 쏘다니며 즐긴 식도락과 술도락으로 전국 지도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떨어져 지낸 5개월 동안 짜이에게 미묘한 변화가 생겨 버렸다. 단풍국 워홀 막차녀. 짜이는 늦은 나이에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모든 게 생소하고 어려웠을 처음 한 달, 홈스테이를 하면서 멘탈이 심하게 흔들렸다. 아침 시리얼, 점심 빵, 저녁에서야 요리 한 접시를 먹는 집이었다. 그런데 그 요리마저 짜이에겐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양. 더 달랄 수도 없는 상황. 아침 자유 식사 때마다 시리얼을 네다섯 그릇씩 먹어치웠다. 그나마 캐나다 우유가 맛있어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와중에 인생 최고 몸무게를 갱신했다니 장하다. 거의 매일 주고받는 카톡에는 먹을 것에 대한 설움(저녁 요리)과 소확행(아침 시리얼) 얘기가 널뛰기했다. 그러고 보니 짜이는 꾸준히 '식탐이 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듣고도 안일하게 지나쳤던 것이다. 으레 있던 식탐이 늘었다는 게 이슈는 아니니까. 줄은 것도 아니고.

그제야 정확히 알았다. 짜이의 식탐 DNA는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두는' 생존 본능을 만나 고지를 넘은 것이었다. 그런데 먹는 걸 방해한다? 생존의 위협이다. 그걸 여행 마지막 날에야 깨닫다니.



공교롭게도 여행 내내 우리는 가난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건 3일 차였다. 우리의 유일한 계획이었던 1일 1랑고스타(=랍스터)부터 포기하자고 했다. 그때 짜이의 슬픈 얼굴. 칵테일 대신 싸구려 병맥주를 먹자고 했다. 그때 갈등하던 얼굴. 내일부터 진짜로 굶게 생겼다고 했다. 그때 못 들은 척하던 얼굴. 지난 일주일의 끼니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매 끼니가 너에겐 엄청난 인내와 타협이었겠구나. 생존이었구나. 미안하다. 내가 무심했다.




잠시 후 주문한 식사가 나왔다.

행복하니? 그럼 됐다.





정확히 말하면 현금이 부족했다. 카드 결제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인출하면 되지 않냐고? 자세한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자. 한 번에 말하면 숨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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