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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 Mar 13. 2022

유일한 전공을 포기한 이유

유 퀴즈 온 더 블록, 댄서 모니카의 이야기


패션 디자이너, 단순히 옷이 좋아 꿈꾸기 시작한 길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이 꿈의 문턱을 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는 공부보다 조금 더 확실한 승산 가능성이 필요했다.


그렇게 강구한 해결책은 기술이었다. 여기에 분명 돌파구가 있으리라!




고등학교 2학년 말, 직업 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패션디자인과가 있는 직업 학교에서 기술을 배울 요량이었다. 공부만으로는 스스로 부족하다는 판단이었다. 3학년에 올라가기 전 명확한 나만의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겼을 땐 이미 직업 학교 서류 지원 기간이 전부 마감된 상황이었다.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땐 정말 늦은 거구나' 싶던 즈음, 추가 지원 일정이 열렸다.


추가 합격으로 직업 학교에 입성하게 되었다. 운이 정말 좋았다.


고등학교 3학년, 그렇게 추가 합격한 직업 학교와 인문계고 사이의 교육 과정을 병행하게 되었다. 목표는 대학 입학이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공부만 해도 모자랄 시간을 직업 학교에서 기술 배우는 데에 쓰냐며 기타 어른들의 훈수도 많이 들어야 했다.


당시 어른들의 대부분 훈수에는 직업학교에 대한 얄팍한 사회 인식이 만연했다. 나에게는 큰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원치 않은 걱정과 우려를 많이 받아야만 했다.


월요일 하루는 인문계고로 등교해 수업을 들었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직업 학교에서 학과 이론과 기술을 배웠다. 힘들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어느 누구도 나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으니, 스스로 선택한 데에는 충분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아이러니하게도 힘들수록 자신감이 솟았다. 정형화된 틀이 아닌 스스로 개척한 새로운 경우의 수가 때때로 흥미롭기도 했다. 고생길에 달려 들어간 일련의 행위가 재밌기도 했다. 너무 힘들어 드디어 미친 걸까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 나는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대담히 나서서 엎지른 물, 이왕이면 광나도록 닦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물불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이 모든 시간과 과정을 나만의 가치로 만들기 위해 뛰었다.




스물, 특별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패션디자인과, 첫 목표를 이루어냈다.

스물 셋, 마침내 졸업을 했다.


마지막 울타리가 마저 벗겨지고, 정글 같은 사회로 던져졌다. 이것저것 배우고 습득했는데도 이상하게 내 꼴은 맨발의 청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도저히 잡히지 않았다. 그 감을 당장 어디에서 찾아 잡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 최저 임금이지만, 성실하고 정직하게 임하는 만큼 얻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생활이 나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로 어떻게 평생을 살아' 만연한 사회 인식을 뒤로 할 자신은 없었다.


그렇게 '안정적인 자리'를 쫓아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호기롭게 임한 디자인실 신입 채용 면접에서 월 삼십을 제안 받았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야근은 매일 있다고 보시면 되고, 잘 아시겠지만 수당은 일일이 다 못 주고."

"..."

"밥도 알아서 먹으면 되겠고, 뭐 당연한 거죠? 일단은 여기선 열정이 제일 중요해요. 지금 배우는 단계잖아요?"

"……"


말로만 듣던 열정페이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디딘 디자인실의 문을 닫고 나왔을 땐, 허탈과 허무가 온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기력도 없었다. 힘들었다.


으리하고, 번쩍한 건물을 뒤로 하고 정신없이 지하철 역을 향했다. 많은 생각이 한데 뒤엉켜 혼란스러웠다. 단 하나 명확했던 건, 월 삼십은 죽어도 싫다는 것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록, 129화 스트릿 힙 파이터 / 리정, 모니카, 노제 출연 편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나온 댄서 모니카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동시에 사회로의 첫 발돋움을 위해 이곳저곳 뛰어다녔던 지난날의 모습이 떠올랐다.


맨 땅에 헤딩을 하기까지 크디 큰 애정과 열정은 오롯한 원동력이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터무니 없는 임금 구조는 좌절과 같았다. 말도 안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구조에 기꺼이 응하고 싶지 않았다.


월 삼십에 몇 년의 열정을 맞바꾸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간절함이 덜했던 거라고 말한다.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이를 용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나는 이왕이면 용기라고 믿고 싶었다.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다소 서럽지만, 다부진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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