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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 Oct 02. 2022

내 나이 서른, 중고 신입입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과감하게


4년 차 디자이너 문턱을 코앞에 두고 햇병아리 기획자의 길로 새로이 들어섰다. 내 나이 서른에 벌어진 이슈였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라?

어릴 적부터 줄곧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유년 시절부터 요목조목 무언갈 꾸미거나 그림 그리는 일을 유독 좋아했었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어선 캐릭터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작은 공책에 날마다 상상 속의 캐릭터들을 그리고는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패션 디자이너라는 제법 뜬금없지만 어쩌면 가장 목표치에 근사했을, 명확한 꿈의 윤곽이 드러난 것이다.


일반 인문계고에 진학해서 고등학교 3학년 오롯 1년은 직업학교를 병행했다. 패션디자인학과에 원서를 넣고 합격해 그토록 원했던 실무 공부를 하고, 자격증도 따냈다. 인문계고와 직업 학교 두 곳을 병행하다 보니, 몸이 남아나지 않는 게 종종 느껴졌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결정을 후회하는 때도 적지 않게 있었다. 하지만 중도 포기는 하지 않겠다는 나와의 선언을 하고, 집요하게 졸업장까지 따냈다. 그렇게 한 길 우물의 초입, 조그만 웅덩이쯤은 파낸 것 같다.


가던 길 그대로 우직하게,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어쩌면 승진도 머지 않은 일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직급에 욕심 없는 편이라 늘 생각은 하지만 그렇다고 만년 사원이나 일평생 막내인 양 일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주임이라든지 대리정도는 달게 되지 않을까 은연 중에 꿈을 꾸었다. 나의 이름 뒤에 직함이 붙는 그런 상상도.


나이 서른이 되었다. 나는 이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줄곧 지켜온 이 경력을 유지해야 할지, 새롭게 하고 싶은 것에 다시 도전을 할지, 깊은 고민의 기로에 섰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외치며 산 세월이었다. 그간 내가 서른이 미처 되기 전에는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이야기하는 '서른인데, 이걸 해도 될까?', '내 나이가 벌써 서른인데 이렇게 해도 되나?' 같은 고민과 걱정에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하고 싶은 거 하면 되지! 하지만 막상 제 나이가 서른이 되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 그동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외친 나는 뭐가 되는 거지? 남 일이라고 막말을 하려는 의도는 결단코 없었다. 그리고 은연 중에는 결국 편협한 고정관념을 깨지 못하고 산 것이었다. 심지어 그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도전은 모든 시작으로부터 함께 한다. 코앞에 고지를 두고 이룬 모든 것을 무른다는 일은 정말 무모한 짓이 맞았다. 그래서 더욱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과감하게, 결국 경로를 틀었다.


 

도전 그리고 새로운 시작, 그런데 초년생은 아니라서

하고 싶은 이 일은 처음이 맞는데 이미 4년 차에 진입한 경력직 직장인은 보장된 직무 스킬과 증명된 조직 적응력을 인정받고 싶다. 처음 하는 일이라고 해서 연봉까지 깎아 먹고 들어가긴 싫었다. 그렇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욕심이었다.


이에 따르는 책임감이나 보여야 할 성과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게 부담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가장 유리하게 빛나는 '자신감'을 발굴해 시장에 내놓기로 했다. 일련의 경험으로 쌓은 경력은 사회 어느 상황에서든 유리한 바탕이 될 것이다.


그 결과, 나는 디자이너에서 기획자로 직무 변경을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었다. 직급은 사원으로 유지하되 연봉은 700만 원을 더 올려서 가게 되었다. 그야말로 정석의 중고 신입이 된 셈이었다.


막상 부딪쳐 보면 못 오를 산도 아니었다. 꿋꿋하게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계속 오르다 보면 결국 정상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일이니 말이다. 등산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포기하고 내려가면 정상을 못 보고 하산하는 거지만 조금 더 쉬더라도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정상을 보기 마련이다.


잘할 수 있을까?

잘 될까?

후회하진 않을까?


수많은 고민과 생각을 거쳤다. 하지만 그 모든 고민과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생각보다 세상은 넓었다. 그런 세상을 전부 터득하고 나아가는 줄 알았던 나는 오히려 그 시야가 무척이나 좁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네비게이션 보고 잘 가다가 경로 한 번 이탈했다고 큰일이 나진 않는다. 다시 돌아가는 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는 있어도 결국 길은 어디로든 나있으니, 해답 또한 얼마든지 존재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이에 인색한 시선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앞으로 더 유연한 세상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부엔 나라는 존재가 약간은 애매모호하지만, 나름대로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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