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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 May 15. 2021

해외여행은 생전 처음이라

베트남에서 계획적으로 탕진하기 ①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2019년 9월의 베트남행 이야기다.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다.


이 위대한 여정을 앞에 두고 설렘의 역사를 읊자면 날을 새도 모자랄 만큼 나는 들떠있었다. 첫 여권 사진을 찍던 날에도 생각보다 더 호러스러운 사진이었지만, 그저 행복했다. 이후 여권을 신청하고 구청으로 직접 수령하러 갔을 땐 한참을 눈을 떼지 못했다.


그간의 삶은 여유라고는 눈코 뜰새도 없었다. 아프거나 돈 벌거나 둘 중 하나였다. 버는 돈은 모일 틈 없이 병원비, 세금, 생활비로 족족 빠져 나가고 발목 잡을 만한 적금 한 두 개쯤은 또 있어야 언제인지 모를 미래를 대비할 수 있었다. 여행은 그 어떤 카테고리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시간도 없었지만.


베트남 여행은 생각도 못한 여름 휴가에서 비롯되었다. 바빠서 휴가를 갈 수 있을지... 늘 그랬던 것처럼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갑자기 휴가를 다녀오라는 것이다. 어차피 남들 다 가는 휴가라, 아주 급하고 바쁠 일은 없을 거라고.


그렇게 생애 첫 해외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아주 치밀한 탕진 계획이었다.


베트남행 비행기 안에서


여행이라는 건 사람을 설레게 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확실한 변수였다.


비와 함께 공항으로 향했으면서도 비가 왔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었다. 사실 당일에도 내리는 빗방울 따위라고는 신경 한 톨도 쓰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사진을 보니, 그날 비가 왔던가? 싶은 것이다.


진에어 X 니니즈


당시에 진에어와 니니즈가 콜라보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내식이 굉장히 귀엽고, 특별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정말 귀엽기만 했었던 그날의 기내식이 여전히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Da Nang Airport


베트남 다낭 공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나는 제일 먼저 유심칩을 교체했다.


사실 한국에서 미리 준비하고 갔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우리나라 데이터 개념도 아니고, 배송으로 받았는데 불량이면 그 교환을 거치는 시간 소요를 어떻게 감당할 거며... 등등의 자잘한 이슈가 없다고는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베트남 현지를 택한 것이다. 그리고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낭 공항 안에 있는 한 유심칩 판매점에 들렀다. 생각보다 종류도 많고 다양해서 순간적으로 당황한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직원분께서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라며 별안간 나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현지 사람의 이토록 능숙한 한국말이라니.


"며칠 여행하세요?"

"2박 3일 여행이에요!"

"그럼 이게 좋으시겠다."


나 또한 냉큼 동의를 표했다. 직원이 추천한 유심칩의 사양이 생각보다 더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맡기고, 유심칩을 인식시키는 동안 직원분께서는 여러모로 말을 붙여주셨다.


"여기에서 일을 하다 보니 한국말이 꽤 늘은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저 잘하나요?"

"네, 완전요."


진짜 완전요... 어쩌면 나보다 더 잘하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유심칩은 금방 돼요. 한 번 보세요."


직원분이 다시 건네준 나의 핸드폰을 들고 데이터 상태를 확인했다. 잘 터졌다.


"와, 신기해... 진짜 감사합니다!"

"여행 재미있게 하세요."


재미있는 만남을 뒤로 하고, 공항 밖으로 나와서는 곧장 환전을 진행했다. 사실 로컬인지, 어디 은행인지 공항 근처에서는 안 하려고 했는데 그게 얼마나 크게 영향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 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엄습하는 덥고 습한 기류에 잠시 후의 내 모습이 왜인지 안 봐도 뻔하게 그려지는 탓도 있었다. 환전부터 빨리 하고, 볼 거 보고 할 거 다 하고 빨리 숙소로 가자! 베트남 공기를 마신 나의 본능적인 판단이었다.


Grab


베트남에서의 모든 교통편은 '그랩'이라는 앱을 통한다. 우리나라 카카오 T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베트남에서는 '그랩'으로 택시를 호출할 수 있는데, 가격대가 정말 저렴하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2분 거리든 3분 거리든 상관없다. 그랩 택시는 바로 코앞을 가더라도 반드시 온다. 가장 빠르게. 카카오 앱을 켜고 20분, 30분씩 기다리는 게 일상이었던 어느 날들을 떠올렸다. 기본요금 거리는 이제 상상도 불가한 지경이라, 그 습관이 베트남에 와서도 작용을 했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가까운 거리는 아무래도 안 오겠지? 라는 자체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랩은 왔고... 다행히 나는 걱정 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하늘에서 똑 떨어진 그랩 덕분이었다.


(그랩 이용법 참고 링크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963314&cid=67006&categoryId=67195)



하지만 천사 같은 그랩도 단점이 있다고 한다. 나는 겪어보진 않았지만, 웬만하면 앱에서 그랩을 호출해 이용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이다. 이유는 바가지 때문이다. 그냥 로컬에서 잡아 타면 관광객이 아무것도 모르니, 그걸 이용해 요금을 바가지 씌우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한다. 모든 그랩 택시가 다 그런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그리고 그랩 호출이 정말 어려운 유별난 관광지가 하나있다. 바로, '바나 힐'이다. 잡으면 오긴 하는데, 내가 그랩을 타고 바나 힐에 갔다면 내가 간 그 시간만큼 걸려서 그랩이 온다. 그러니까 결국 선택은 눈앞에 있는 그랩 택시를 타고 빨리 가느냐, 내가 호출한 그랩 택시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 길바닥에서 쪄죽느냐인 것이다.


'바나 힐'은 도심에서도 상당 거리에 떨어져 있는 관광지다. 때문에 호출을 하더라도 긴 시간이 소요되는 편이라, 베트남의 이 블랙홀 같은 열기와 습기를 버틸 자신이 없다면 결국 바나 힐 앞에 줄선 택시를 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어느 정도 바가지를 감안하고 눈 앞의 택시를 탔다. 하지만 다행히 운이 좋았는지 바가지를 맞진 않았다.


그랩 이동 중 찍은 베트남 풍경


다시, 베트남 땅을 이제 막 밟은 순간으로 돌아가자.


사진엔 없지만 베트남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아니나 다를까 베트남에서는 오토바이가 대표 교통수단이라고 한다. 걸어다니는 사람 20퍼센트에 80퍼센트가 오토바이고, 5퍼센트가 뭐 자동차... 같은 것들인데 도합 105퍼센트의 비율로 교통 무법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쉼 없이 빵빵거리는 그 소리도 첫 해외여행이란 설렘에 묻힐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처참히 부숴졌다.


FA Lounge


베트남에서의 첫 일정은 역시나 맛집 방문이었다. 이 역사적인 시작으로 나는, FA Lounge를 선택했다.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가게로 유명한 이곳은 그 소문대로 굉장히 대단했다. 가게 내부는 훨씬 넓고, 쾌적했다. 그리고 유명한 맛집으로 소문난 만큼 손님들로 굉장히 복작였다. 외국인들이 정말 많았는데, 그 외국인의 전부 한국인이었다.


그래서 한국 식당에 온 줄 알았다. 낯설지 않고, 금방 적응할 수 있었던 게 극강의 장점이긴 하지만, 타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인 분위기, 낯선 설렘은 사실 찾기가 조금 어려웠다.


하지만 정말 어마어마한 맛집이기 때문에 베트남이라면, 꼭 한 번은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왼) 반호이 / (중) 파 기름 바지락 숯불구이 / (오) 모닝글로리 마늘 볶음


왼쪽의 양념된 돼지고기와 얇게 뭉쳐진 면은 '반호이'라고 하는 음식이다. 조그만 종지에 담긴 양념장에 면을 적시고서 고기와 함께 싸 먹는 건데, 입 안에서 일단 살살 녹는 맛이었다.


중앙에 놓인 바지락 숯불구이는 자극적인 짠맛이 전혀 없었다. 조개 특유의 비린내나 짠내도 없었고... 그래서 순식간에 싹 비웠다.


특히나 내 입맛 취향을 강하게 저격했던 건 모닝글로리 마늘 볶음이었다. 단순한 야채볶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큰 오산이었다. 모닝글로리를 한 입 먹자마자 머리에 반짝 별이 터졌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언제 또 먹어볼 수 있을까? 기회가 다시 닿는다면, 그땐 꼭 맥주랑 먹을 것이다.


My Khe Beach

베트남, 미케비치


파 라운지 바로 옆에 위치한 미케비치. 여기까지 와서 안 보고 가면 손해는 내 몫이라 배도 부르겠다, 여행 온 기분을 제대로 만끽하고자 미케비치까지 여유롭게 걸어갔다. 


바다를 유독 좋아하는 나는 딱히 무언갈 하지 않더라도 멍하니 몇 분이고 바다를 바라보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편이다. 그럴 때면 매번 아무리 복잡하고, 힘든 머릿속일지라도 순간이나마 시원하게 씻기는 기분이 밀려들었다. 특히, 대자연의 앞에서 나는 한낱 작은 인간이라는 존재, 어쩌면 먼지와 같은 나의 존재가 조금이나마 느껴지는 그 아득한 기분이 좋았다. 안심도 되고.


모든 인생의 요지경, 그리고 나의 존재, 내가 짊어진 고민과 생각, 아픔들 전부 자연 앞에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그 명확한 답이 나는 좋다.





한낮의 미케비치를 벗어나 한 시장(Han Market, Chợ Hàn)으로 향했다. 그랩을 타고 이동한 그곳에 도착해 내리자마자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에 순간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생전 처음 맡아보는 고릿한 냄새는 단숨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것 같았다.


원인 모를 냄새와 눅눅한 습도, 이글이글 끓는 열기, 좁은 시장 내부 통로와 북적이는 인파. 머릿속이 새하얗게 번쩍이며 현기증이 일었다. 그 탓에 예정보다 일찍 지치고 말았다. 땅에 접착제라도 발린 양 발바닥이 쩍쩍 붙기 시작했다. 물 먹은 솜처럼 몸은 단숨에 무거워졌다.


숙소로 빨리 가고 싶었다. 보고 싶은 게 있어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와중에 옷도 한 벌 사고, 커피도 사 마셨으니 본전은 딴 셈이다.



Hoi An, Old town


해가 조금 떨어졌을 즈음 다시 슬그머니 바깥으로 나왔다. 여전히 습했지만 낮보다는 확실히 살 것 같았다. 


나는 예정대로 올드타운으로 향했다. 그리고 올드타운 골목에 도착해 그랩 택시에서 내린 그 순간, 바로 감탄을 터트렸다. 올드타운이 왜 유명한지 깨달았다. 소름과 함께.


난생 처음 보는 색다른 풍경이 시야에 넘치도록 차올랐다. 갖가지 조명, 불빛이 한데 어우러진 아름다운 야경은 더위와 습도에 피로해진 정신을 단숨에 깨웠다.


두근두근, 다시 설렘이 날뛰기 시작했다.


ThirtySeven Woodfired Grill + Bar

베트남, ThirtySeven Woodfired Grill + Bar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돌아다니다 배고픔에 지쳐 즉흥적으로 들어가게 된 음식점, ThirtySeven Woodfired Grill + Bar. 알고 보니 레스토랑이었던 이곳은 못지않게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푸른 잎이 건물을 감싸고, 따뜻한 원목이 인테리어의 주를 이어 공간에 따뜻함이 가득했다. 아늑했다. 그리고 이 레스토랑의 끝 문에서 마주한 드넓은 투본강은 이성을 잃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멋진 뷰를 반드시 사수하겠노라 야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오늘 밤, 모기 밥이 되더라도 투본강 앞에서 정면승부를 하겠다. 그리고 마침 빗줄기가 쏟아지는 바람에 급히 실내로 복귀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아예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테라스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곧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첫 음식은 그릴드 아스파라거스와 스테이크.


역시 스테이크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스테이크 한 입 먹고, 투본강 한 번 보고. 토도독, 떨어지는 이슬비도 한 번 보고나면 이게 힐링이구나, 천국이구나! 또 한 번 감탄을 하게 된다.


음식이 비워지는 것은 아쉬웠지만, 맛있다고 비우고 있는 것 또한 나니까... 어쩔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이날 이 순간은 나에게 잊지 못할 그리움이 될 것이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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