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그곳에 갔다.
여전히 그 풍경 그대로 날이 저물고 있었다.
넓게 펼쳐진 하늘과 지평선, 멀리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의 잔잔한 소음.
물이 흐르고 새가 지저귀는 곳.
수 없이 거닐던 곳을 걷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는 순간이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근처에 작업실을 얻었을 때는 한겨울이었다.
잘린 벼의 밑동이 흙빛이 되어 사라져 가는 시점이었다.
처음 이곳을 거닐 때, 혹독한 추위와 바람이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은 끝내 도달할 수 없을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그 해를 보내면서 글을 쓰고 나면 논에서 산책을 했다.
늦은 저녁이나, 한낮에, 어두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땡볕으로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 같은 순간,
그리고 기분 좋은 온도로 변한 바람이 불어오는 순간,
나는 이곳을 걸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풍경을, 그리고 다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풍경을 보았다.
어김없이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그 시간이 나를 관통하고 있었다.
글쓰기가 진행되었고, 때론 막히고를 반복하면서 몇 개의 이야기를 써냈다.
좌절을 겪으면서 한 밤에 작업실을 찾아가
글을 썼던 순간도 있었다.
그때 나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붙들다가 논으로 나왔다.
식물도 휴식을 취하는 그 밤에 달은 밝게 그곳을 밝히고 있었다.
아름답던 풍경도 아픔이 되던 순간.
정말로 내가 그 이야기를 쓸 자격이 있을까?
끝내 지쳐버린 것을 깨달았다.
다시금 따뜻한 날이 찾아오고
다시금 글을 쓰면서
그렇게 시간을 흘러갔다.
이곳을 찾아온 지금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아픔과 좌절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지만
그 길에 있던 그 모든 것들이 함께 했음을 깨달았다.
글을 쓰는 순간이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마른 풀냄새와 어느 하우스에서 피워오는 장작 냄새가 겨울의 한기 속에서 풍겨왔다.
낮게 깔린 풀들이 긴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길가에 보이지 않는 작은 돌도 사선의 그림자를 바닥에 그릴 때, 그렇게 모든 것이 노을빛으로 물들어 갈 때까지 나는 거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