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암의 추억 (4)

첫학기

by 김재광

군대를 나이 들어서 다녀 왔지만 제대하자마자 유학을 떠난건 신의 한수였다. 원래 군대에서 고생을 하다보면 학구열이 마구 용솟음치는데 그게 제대를 하는 순간부터 단조감소를 하다가 6개월 정도 지나면 약발이 다하고 결국은 정규분포(?)로 수렴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그 황금같은 6개월동안 미국 유학의 첫학기를 보낸 것이니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군대 제대(방위는 소집해제라고 부른다)를 불과 1달도 안남겨놓고 중대장한테 말대꾸 비슷하게 하다가 군기교육대에 잡혀갔는데 그곳에서 학구열 육성의 화룡점정을 찍는 경험을 했었다. 그건 이틀동안 하루종일 기합을 받는 것이었다. 원래 기합이라는게 벌을 받고나서 훈계를 들으면서 좀 쉬기도 하고 그러는걸로 알았는데 군기교육대에서의 기합은 그런게 아니였다. 그냥 아무 내용없이 50분동안 무미건조하게 기합받고 10분 쉬고 그걸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반복하는 것이었다. (1번 기합, 100회 실시 이런 식이다) 그때 94년 여름은 또 왜그리도 더웠는지...


그런 이유였을까 94년 가을에 시작했던 나의 첫 학기는 여러 면에서 기억에 남을만 했다. 필수 과목 두개를 신청하고 한과목이 여유가 남아서 풀러(Fuller)교수님의 계량경제학 과목을 신청했는데 그게 커다란 도전이었다. 아마도 그 과목에서 잘하면 교수님의 눈에 들어서 나중에 제자가 되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이리라. 그런데 나중에 돌이켜 보니 그 과목이 내가 아이오와 박사과정 통털어서 배운 과목 중에서 가장 어려운 과목이었다. 그걸 멋도 모르고 첫학기에 들었으니 ㅠㅠ


그 과목은 총 15주 강의에 14회의 숙제가 나왔는데 월수금 수업에 매주 금요일에 숙제가 나왔었다. 심지어 중간고사 시험을 보고 나갈때도 교수님이 숙제를 나눠주었다. 영어도 안들리고, 교재도 따로 없는 과목이었는데, 노트 판서 조차 필기체였다. 게다가 대부분의 천재들이 그렇듯이 그분도 그리 강의를 잘하지 못했었다. 연작이 봉황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봉황 역시 연작의 수준으로 내려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과목 공부를 위해 선배들에게 수소문하여 기출문제 10년치를 구했다. 뻥이 아니라 정말로 10년치.. 참고서적과 10년치 중간고사, 기말고사 문제가 있으니 그걸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었다. 중간고사 까지는 회귀 분석을 주로 다루어서 할만 했는데 그걸 넘어가니 난이도가 어려워지면서 다변량 모형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은 따라갈수 없는 내용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는 그 지식이 없었다.)


공부를 무리하게 하면서 잠을 3-4시간 밖에 못자니 나중에는 체력이 딸려서 결국 7년 넘게 피던 담배를 끊었다. 10년치 기출문제를 바탕으로 내용을 더듬어서 이해하고 새벽 6시에 선배따라 새벽기도 가서 울며불며 하다가 그렇게 기말을 치루었는데 기적적으로 그 학기에 올 A 를 받고 풀러 교수님의 눈에 들어서 연구조교로 채용되었다. 2년간 자비로 공부할 각오가 있었는데 한학기 만에 장학금을 받고 돈 걱정없이 박사 공부를 하게 된 것이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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