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체험
돌이켜보면 나는 두번의 유학 경험이 있었는데 한번은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을 입학하면서 충주에서 서울로 유학을 한 것이고, 두번째가 한국을 떠나 미국 아이오와에서 유학을 한 것이다. 물론 미국이 더 멀긴하지만 부모님 곁을 떠나 혼자 생활한 것은 처음이 아니였고, 방황은 그 전에 이미 충분히 했기에 유학에 와서는 별다른 방황없이 공부에 전념할수 있었던것 같다. 그런데 보니까 집이 서울인 친구들은 미국 유학 나와서 좀 방황을 하는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내가 대학시절에 서울에서 했던 방황은 일종의 예방주사였던 것이다.
유학 생활의 또다른 흥미로운 점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수 있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냐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관계망을 만드는 것이기에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 이미지가 기존의 내 삶과는 관계없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충주고등학교에서는 모든이가 인정하는 수재에 모범생이었지만 서울대에서는 노는거 좋아하는 날라리로 한번 이미지 변신을 했던 것처럼, 미국 아이오와에서는 공부의 화신으로 다시 한번 이미지 변신을 하게 된 것이었다. 만약 내가 박사공부를 그냥 서울대에서 했더라면 기존의 이미지가 하나의 편견이 되어서 나를 속박했었을 것이다.
그런 이미지 세탁을 위해서인 것만은 아니였지만 나는 그곳에서 한인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학과 선배가 그 교회를 열심히 출석하고 있었고 그 교회를 나가는 것이 유일하게 한국 음식을 맛볼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기숙사 음식은 너무 맛이 없었는데 그때에는 어차피 생존을 위해서 식사를 했기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건 내게 사치라고 생각했었다. 아뭏튼 한인 교회를 출석하면서 청년부에 소속되어서 재롱(?)도 떨고 재미있게 놀았었다. 금요일 저녁에 열리는 성경공부도 참석했었는데 성경이라는게 워낙 서구 문화의 기본이 되는 것이니 교양차원에서도 공부하는게 나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경공부에서는 요한복음을 나가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나는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독교의 가르침이 너무 생소하고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저걸 진짜로 믿는다는게 신기했다. 누구 하나 논리적으로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도 없었다. 자기도 처음에는 의문이 많았는데 나중에는 저절로 믿어진다 이런 이야기만 들었다. 그런데 요한 복음 진도가 나가면서 나중에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부분에서는 좀 충격을 받았다. 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말이 안되는 내용이라 오히려 이게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새 공부하고 선배 따라서 새벽기도 따라가기도 했었는데 초신자가 새벽기도까지 나오니 목사님이 좋아하셨다. 새벽기도가 끝나면 "하이비"라는 마트에서 파는 아침을 먹으로 가곤 했는데 그곳에서 1불짜리 아침을 팔았다. 계란에 토스트에 커피까지 포함해서 1불이었다. 그거 먹고 나서 하루를 끝내고 잠을 들곤 했었다.
중간고사 끝나고 11월 정도에는 공부가 많이 어려워졌다. 하루는 계량경제학 과목 기출문제를 풀어보려고 밤 9시부터 Physics Hall 의 학생 라운지에 자리를 잡고 (거기가 24시간 개방하는 곳이었다) 밤새 문제를 푸는데 이책도 찾아보고 저책도 찾아보는데 한문제를 못풀었다. 아침 6시까지 9시간을 한 자리에 앉아서 밤새 한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하는데 안풀리는 기분... 참담함이라는 단어로는 충분히 묘사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그러한 참담한 마음을 가지고 새벽기도에 가서 한탄을 했는데 그러기를 몇주 정도 하던 어느날, 아주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날 새벽기도 중간에 내 앞에 예수님이 있는것이었다. 눈을 감은 상태라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내 앞에서 나를 아주 온화한 눈빛과 긍휼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하얀 옷을 입으셨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어떻게 눈을 감고서 그걸 알았는지 모르겠다. 아뭏튼 예수님 앞에서 나는 감정이 폭발하고 엉엉 울었고 그때 예수를 처음 만났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엄청난 마음의 평화를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