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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광 Dec 29. 2020

꼰대의 추억

이제 올해가 얼마 남지 않고 며칠 후면 한국 나이로 한살을 더 먹게 됩니다. 나이를 한살 더 먹지만 그만큼 더 어른스러워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옛날 이야기 하면 나이 먹는 증거라고 하던데 더 나이 먹기 전에 과거의 일을 하나 회상하면서 본론으로 가려고 합니다. 굳이 이러한 경험을 나누는 것은 서로 다른 세대간의 대화가 어려운 이유가 경험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경험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소통이 어려워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엇그제 브런치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많은 문제들이 알고보면 소통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것은 소통을 위한 길닦기 작업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를 좀더 유식하게 표현하면 라뽀르(rapport)를 형성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대화를 하기 이전에 약간의 친밀감을 갖도록 하는 것인데 그럴려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그 가운데에서 접점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ㅋ)


저는 한국이 개발도상국이던 시절에서 청년시절을 보냈고 중년이 된 지금은 선진국이 된 자랑스런 한국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개도국 시절과 지금은 정말로 많이 다릅니다. 단순히 물질적 풍요의 차이가 있는게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도 많이 다릅니다. 제 고등학생 시절에만 하더라도 시내버스를 타려면 막 달려가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줄을 서지 않아서 막 달려가서 서로 타려고 힘을 쓰고 밀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야만적인 모습이었지만 그 당시는 그게 일상이었습니다. 미국처럼 휠체어를 탄 사람도 큰 불편없이 시내버스를 타는 것에 비하면 천지차이인 것입니다.


그러다가 88년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면서 외국인들의 시선도 있고 하니 우리도 줄을 서자는 계몽 캠페인이 열렸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새치기 하는 사람들도 있고 줄을 안서고 막무가내로 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수가 변하니 그런 사람들도 시대의 변화를 따라야 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정권 비판하는 것도 무척 조심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88올림픽이 개최되던 시절은 제가 대학생 시절이니까 그래도 대부분 기억이 납니다. 군사정권 시절이라 우울한 기억도 많았습니다만 나중에 유학 생활을 마치고 2002년에 한국에 돌아오고서는 한국이 많이 바뀌었음을 느꼈습니다. 아마도 IMF 구제 금융을 극복하면서 큰 체질변화가 일어난것 같은데요 나중에 알아보니 국제적으로도 그 시기가 몇가지 큰 변화의 요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세계화(globalization)가 일어난 것입니다. 예전보다 국가간 장벽이 낮아지고 많은 것들이 국제화 되면서 한국도 김영삼 정권 시절에 세계화의 흐름에 빠르게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둘째는 소련은 붕괴되고 중국이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몰락하고 독일이 통일되고 중국이 개방을 하고 투자를 받고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면서 국제 질서가 많이 바뀌게 된 것이지요. 미국에서 중국인 유학생도 그때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셋째로는 인터넷의 등장이 있었습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생활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사고방식이나 문화 자체가 바뀌게 되었지요. 이러한 세가지 큰 변화를 거치는 동안 한국은 개발도상국이라기 보다는 선진국에 가까운 문화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가장 크게 느껴질 때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들의 의식을 읽게 될 때입니다. 40대-60대는 개발도상국 시절의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고 30대 초반이나 그 이전 세대는 선진국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입니다. 이 둘의 차이는 아마도 지금의 미국 시민과 한국 국민의 차이만큼 거리가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얼굴과 피부색을 가졌어도 생각은 같지 않은 것이지요. 저 역시 그런 젊은 친구들을 만나서 가르치는 입장이니 제가 꼰대같은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19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더라도 제 가치관이 그 시절에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1980년대의 한국과 2020년의 한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라고 할수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살면서 한국의 문화를 고집할 필요가 없듯이 2020년에 살면서 1980년대의 사고를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꼰대의 추억은 단순히 그 시절이 좋았다는 이야기여서는 안됩니다. 젊은 시절이 과연 좋았는가 냉정히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들을 그럴듯하게 미화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이야기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꼰대의 추억은 그 시절의 야만과 나의 어리석음을 반성하면서 이제 과거와의 단절을 다짐하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는데 내 머리속의 지도 역시 그 변화를 반영하여 업데이트 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계속 학습해야 하고 그 변화를 직시하기를 거부하려는 내 안의 두려움을 차갑게 응시할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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