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광 Jan 31. 2021

겸손의 시간


우리 집에는 10살된 강아지가 있는데요 두어달 전에 당뇨병 판정을 받아서 아침저녁으로 인슐린 주사를 맞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강아지도 당뇨에 걸린다는걸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어릴적에는 팔팔하고 철없던 강아지가 지금은 늙어서 힘이 떨어지고 잠만 많이 자는게 좀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는 움직임이 좀 이상해서 알아보니 당뇨병 합병증으로 시력에 급격한 저하가 온 것입니다. 강아지는 수명이 짧아 나이를 빨리 먹기에 노화도 빠르고 이런 합병증도 빨리 오는 것이지요. 늙은것도 서러운데 실명까지 되는 상황은 참으로 우울할 것입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도 이제는 강아지와 이별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할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주는 우리집 강아지의 노화와 실명을 목격하면서 인생의 허무함과 유한함을 좀더 깊게 생각해 보는 한주였습니다. 저 역시 컴퓨터를 너무 오래보면 실핏줄 터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한때이니만큼 아껴서 써야하는데 젊을때에는 그것을 모르기 쉽습니다. 겨울이 와야 지난 가을이 얼마나 좋았는지 알 뿐입니다.


또한 제가 지도교수님이랑 대화를 해보면 아주 총명하시던 분이 요즈음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올해 만으로 90세이시니 그럴만도 할 것입니다. 이렇게 나이를 먹으면 강한 사람도 약해지고 유연한 사고를 하던 사람도 경직됩니다.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가 변할수 있다는 것은 내 생각도 나중에 변할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이야 나의 생활방식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다를수 있습니다. 그런 자신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신의 어리석음이 컸었다는 것을 드러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지금 현재의 내 생각을 확신하지 않는 절제, 어떤 하나의 정답이 있다기 보다는 다양한 접근 방식이 있을수 있다는 관용,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절제와 관용과 조심스러움을 한 단어로 겸손함이라고 한다면 그런 겸손한 자세가 단정을 피하고 다른 가설의 가능성을 열어놓게 되기에 지적 긴장을 유지하고 보다 균형잡힌 사고를 하게 될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들은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기에 호기심을 잃지 않고 소통능력이 높은 것도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내 생각에 겸손한 자세의 또다른 장점은 노화를 늦춘다는 것입니다. 노화라는 것은 현재의 편안함에 안주하여 새로운 변화를 잘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자세에서 노화가 더 빨리 찾아올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겸손함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횡설수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