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
내가 대학에서 공부에 취미를 들이지 못하고 방황했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일단 그 당시 시대상황 자체가 (1987년 대학입학) 공부에 전념하기에는 사회가 너무 어지러운 것도 있었고, 나 역시 왜 사는가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할 때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에 취직해서 성실하게 사는게 너무 시시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살다가 나중에 죽는게 인생이라면 그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런 생각을 했던것 같다.
어쩌면 나의 방황은 내가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얻기 위한 과정이었던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이 설득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목표를 향해 결심한 대로 실행하는건 나름 자신이 있는 편이라 그 목표가 정말 의미있는 것인지를 의심하는게 중요했다. 그래서 모든걸 의심하다보니 아마도 허무주의에 깊이 빠졌다고 하는게 더 정확했을 것이다. 내가 대학 1학년때 동갑내기 여자친구를 사귀었는데 그때는 그게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열심히 좋아하고 매주 주말에 만나서 하루 종일 같이 놀고 저녁 먹고 헤어지고 그랬는데 그러다가 나중에 그 친구랑 헤어지고 관계가 끝나니까 말짱 그 시간이 꽝이 되는 것이었다. 그토록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 모든 시간이 다 의미가 없어진다는게 너무 허무했는데 어쩌면 인생도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학부 4년을 보내고서 대학원에 가서 금도암을 만나서 공부에 관심을 갖고 공부라는 것을 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학교의 수업이 지나치게 수리적으로 접근해서 도대체 이런걸 공부해서 어따 써먹나 하는 회의도 가끔씩 들었다. 그러다가 석사지도교수님이 샘플링을 하시는 분으로 정해져서 그분 밑에서 농업통계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그때 참여했던 프로젝트가 농가기본 통계하고 축산 통계 표본 설계 프로젝트였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키는대로 일을 했었지만 나중에 표본을 뽑는 과정에서 내가 seed 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샘플이 다르게 뽑히는게 흥미로왔다. 통계학을 통해서 샘플을 뽑고 그걸 어떻게 잘 뽑느냐에 따라서 예산을 절감할수도 있고 또 더 정확한 통계를 얻어내어서 국가 정책을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될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통계학이라는게 나 개인에게는 큰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국가적으로는 꼭 필요한 학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제대로 배워서 국가에 기여하는건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좀더 알아보니 통계학적 샘플링을 제대로 전공한 분들이 거의 없었다. 서울대와 동국대, 고려대, 그리고 공군사관학교에 한분씩 계시고 그분 밑에서 박사 하시는 분들이 한두분 계셨지만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분은 전무했다. 한마디로 이 동네가 무주공산이었던 것이다. 내 실력에 교수가 되기는 힘들겠지만 이걸로 유학을 가서 박사를 받으면 적어도 정부 정책 연구소 같은데에서 국가 통계에 기여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 운이 좋으면 나중에 지방 국립대 교수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박사받고 미국에 남는다는건 생각하지 못했고 돌아와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는게 일반적이었다.) 샘플링이야말로 내가 가야할 길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고 이것에 내 청춘을 올인하기로 결심한 것이 대학원 4학기 졸업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