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필요한 공부가 있어서 유투브를 이용해서 독학을 하고 있는데 강의자가 너무 친절하고 제대로 설명을 해줘서 큰 도움을 얻고 있었다. 강의자는 물리학자이고 취미활동으로 유투브에서 물리관련 필요한 수학을 강의한다고 한다. 그 채널은 구독자가 5만명이나 되고 각 강의마다 사람들이 강의가 얼마나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지 댓글로 감사를 표하고 있다. 남을 돕는거 자체가 보람있는 일이긴 하지만 이왕이면 효과적으로 도우면 실질적인 도움이 될테니 시간을 할애하는 입장에서는 좀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게 중요할 것이다. 교육이란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줄 알아야 효과를 볼수 있는 것이기에 공감능력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은 필요할 것이다. 학기 중에는 강의를 하기 바쁘니 공감능력 배양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이 없었는데 요 며칠 강의를 시청하면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몇자 적어본다.
첫번째 필요한 것은 연민이다. 그건 젊은 학생에 대한 연민일수 있고, 유투브 강의처럼 특정대상이 없는 경우는 먼저 공부한 사람으로서 후학에 대한 연민이다. 비록 자신은 고군분투하면서 걸었지만 후학들은 시행착오를 덜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게 일종의 연민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무식하고 서투른 상대를 그냥 비웃고 마음의 벽을 치는게 아니라 기꺼이 손을 내밀고 자신의 자원을 나눠주는 행동은 인간이 할수 있는 가장 고귀한 행동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연민의 마음을 갖고 끝까지 그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공감능력을 키우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두번째 필요한 것은 역지사지인데 여기서 역지사지란 지금의 나와 상대방을 비교하는게 아니라 과거의 나와 지금의 대상을 비교하여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을지를 회상해보고 유추하는 능력이다. 그런 면에서 역지사지는 어른이 할수 있는 것이다. (아이는 어른을 역지사지 하지 못한다. 그건 경험 바깥의 일이기 때문이다.) 어른은 아이 시절 어떤 부분이 어려웠을지에 대한 포인트를 최대한으로 찾아내 그 부분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할수 있을텐데 그게 역지사지의 핵심이다. 강의자가 학생을 아래로 바라보면서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아는게 아니냐 이런 식의 자세는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하는 것에 불과할수 있다. 그런 면에서 역지사지란 친절함의 다른 표현일텐데 여기서 친절하다는 것은 자기 기준이 아니라 상대방 기준이다.
셋째로 필요한 것은 존중이다. 공감이 어려운 것은 본질적으로 감정이란게 언어로 완전하게 전달되지 못하고 고유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 고유한 영역은 타인이 해결해주기 어렵고 본인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데 그건 오로지 본인의 의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무리 쉽고 잘 가르쳐줘도 마음의 벽을 쌓고 그걸 이해하기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거부감이 드는 바닥에는 신뢰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확률이 크고 그 신뢰를 회복하는게 우선일텐데 그걸 위해서는 존중이 있어야 한다. 비록 선생과 학생의 관계일지라도 상호존중의 바탕위에서 전달이 이루어질때 효과가 생길수 있는 것이다. 선생으로서는 당연히 나은 선택지를 보여주고 싶겠지만 그 본인의 감정을 절제하여 강의자의 감정이 학습자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고 최종 선택은 학생 본인이 할수 있도록 해야 진정한 존중이 이루어지는 강의라고 할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