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스토리 (10)

첫 직장을 얻음

by 김재광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인데 누가 어떤 유명한 화가에게 닭 그림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 화가는 그림을 완성하는데 6개월이 걸린다고 하면서 그림값을 선불로 두둑히 받았는데 그 고객이 6개월이 다 되어서 찾아가보니 어디에도 닭 그림이 없어서 항의를 했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화가는 그 자리에서 30분만에 아주 훌륭한 그림을 그려주었다고 한다. 사실 그 6개월은 30분만에 닭 그림을 그리기 위한 연습 과정이었던 것이다. 박사과정 연구도 생각해 보니 그런거였다. 나중에 지나고 보니 그런 논문은 마음 먹으면 한달 만에 휘리릭 완성할 수 있는 것인데 논문을 한달만에 완성할수 있는 실력을 키우기 위해 몇년간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암튼 그렇게 첫논문을 한편 완성하니 자신감도 약간 생기고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그때부터는 배수진을 하지 않고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지냈다. 교수님과도 예전보다 훨씬 자주 만났고 연구가 진행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봄이 오고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사람모습을 갖추어 가듯이 내 연구도 조금씩 윤곽이 잡히면서 그럴듯한 논문의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었다. 이제 내 앞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학위 논문 완성에서 취업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 전에 job search 에서 아무런 성과가 없어서 나는 졸업을 일년 더 늦추고 좀더 연구를 진행해서 다시 한번 job 시장에 나가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가 1999년이고 미국은 10년에 한번씩 인구주택 총조사(센서스)를 하는 시기라 미국 통계청에서는 2000년 센서스를 준비하기 위해 많은 인력들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당시 미국 통계청의 통계 방법론 국장급에 클라크 박사가 있었는데 (미국은 행시가 없어서 전문가들이 높은 자리에도 제법 있다) 그 분은 아이오와 주립대 출신이고 풀러 선생님과 아주 각별한 사이었다. 그 클라크 박사가 풀러 교수님께 적당한 학생 있으면 보내 달라고 했었는데 교수님이 나를 추천하신 것이다. 내가 졸업을 하는 연도가 마침 센서스 직전이라 미국 통계청에서 모자르는 박사 인력을 채우기 위해 외국인 유학생인 나에게까지 예외적으로 잡 오퍼를 했던 것이다.

나 역시 학교를 가서 어설픈 영어로 티칭하는 것보다는 그런 곳에서 실무를 익히고 국가 통계에 대한 경험을 쌓는것이 전문가로서의 커리어에 더 도움이 되기에 기쁜 마음으로 잡 오퍼를 수락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서 거기 정부기관의 정식 직원이 될수 있는 길은 없었다. NIH 같은 곳은 같은 정부기관이지만 외국인 과학자에 대해 좀더 취업의 길이 있는데 통계청은 민감한 데이터를 다루는 곳이므로 그런 길이 없었고 정식 직원이 되는건 불가능했다. 유일한 방법은 내가 졸업을 미루고 CPT 라는 것을 사용해서 (이걸로 유학생이 비자없이 최대 일년까지 일할수 있다) 인턴 사원으로 일년 일하는 것이었다. 1년짜리 인턴사원으로 일하기로 하고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연봉이 5만불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졸업은 미루어졌지만, 정규직도 아니고 계약직이었지만, 그래도 첫직장을 얻은 것이니 너무 기뻤다. 1999년 9월에 이사짐은 먼저 보내고, 나는 집사람과 아이를 승용차에 태우고 아이오와에서 메릴랜드로 2박 3일간 운전을 해서 떠났다. 1994년 8월에 미국 아이오와 에임스에 처음 왔었으니 만 5년을 꼬박 채우고 출애굽이 아닌 출에임스를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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