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 생활
이렇게 메릴랜드에서 시작한 나의 첫 직장 생활은 나름 즐거웠다. 회사는 (Bureau of Census) 워싱톤 DC 안에 있지 않고 그 옆의 메릴랜드 주의 Suitland라는 도시에 있었는데 거기는 흑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서 그 동네에 집을 얻지 않고, College Park라는 도시에 얻어서 30-40분 운전해서 출퇴근을 했다. 우리 아파트는 그린벨트 국립공원에 인접해 있어서 아파트 앞에 숲이 제법 울창했고 College Park 에는 메릴랜드 대학이 있어서 그 동네에서 메릴랜드 대학을 다니는 학과 동문 선후배들과도 교제를 했다. 우리는 이동원 목사님이 설립하신 지구촌 교회를 다녔는데 거기는 교회가 제법 크고 신자들이 많았고 유성회(유학생 성경공부 모임)이라는 셀 모임에 가입해서 금요일 저녁에 모이는 성경공부 모임에도 참석했다.
회사는 여유로움 그 자체였다. 나의 보스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통계학자였는데 (통계학 석사 정도 가진 것으로 안다) 거의 매일 하루에 2시간 이상을 헬스클럽에서 시간을 보냈고 나를 만나면 어려운 질문 할까 봐 은근히 피하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는 탄력근무제 같은 게 있어서 하루에 8시간을 일하는 대신 9시간씩 일을 하고 그걸 모아서 2주에 한 번씩 월 또는 금에 쉬는 제도였다. 그런데 말이 9시간 일한다고 하지만 그 시간에는 인터넷 서핑하는 시간, 점심시간 등이 포함되었다. 회사 카페테리아에 가면 사람들이 2시간씩 죽치고 앉아서 수다 떨거나 심지어 카드게임을 하면서 노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만약 한국의 정부기관 식당에서 공무원들이 모여서 점심 먹으면서 카드게임을 하고 있다면 아마도 난리가 났을 것이다.
내가 소속한 부서는 DSSD (Decennial Statistical Studies Division)이라는 곳인데 인원이 대충 50명 정도였다. 그 부서장은 (한국으로 치면 과장) 소련계 성을 가진 여자였는데 제법 스마트했다. 미국은 확실히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일수록 높은 자리에 더 많이 포진하는 경향이 있다. 그 부서에서는 센서스 관련 일을 담당했는데 센서스는 10년에 한 번씩 하지만 그게 끝나고서도 사후 분석과 여러 가지 관련 업무를 했는데 인상 깊은 점은 문서화가 잘 되어 있어서 많은 과정들이 문서로 기록되어서 저장되고 공유된다는 것이다. DSSD는 통계적인 부분만 담당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산화하고 실행하는 부서는 별도로 있어서 프로그램 내용을 공문으로 작성해서 그 공문이 다른 부서에 전달되면 그 부서의 프로그래머가 그걸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짜서 돌리고 그 결과를 다시 우리 부서로 공문화해서 보내주는 방식이다. 굉장히 비효율적인 방식인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런 식으로 해야 책임소재가 분명해지고, 또 문서화가 철저하게 되어서 인력이 바뀌어도 일이 끊기지 않고 연속성 있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처음에는 긴장을 해서인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 먹자마자 뻗었다. 한 달 정도 지내고 적응이 되니 이런 곳이면 평생직장으로 지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유롭게 일이 진행되는 곳이라 회의를 하고 내가 결과를 가져오면 다들 깜짝 놀라면서 왜 이리 빨리 가져오냐는 식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센서스 사후조사 추정량의 분산 추정 공식을 개발하는 것이었는데 그 사후조사 샘플이 three-phase sampling 구조를 갖는다는 것을 표본설계 관련 공문을 찾아 읽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 회사에서는 학술적 용어를 쓰지 않고 자기들만의 전문 용어를 만들어서 사용했는데 처음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애를 먹었다. 암튼 나는 우리 팀원들에게 이게 three-phase sampling 구조라서 제법 난이도가 있는 문제라고 설명을 했는데 팀원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친절했고 나의 능력을 높게 평가해 주어서 그곳에서 즐겁게 지냈다. 나는 two-phase sampling 문제가 무응답 자료 문제와 동일한 구조를 가진다는 것을 착안해서 내 학위 논문 연구와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해서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했는데 그게 시뮬레이션 등으로 성공적인 결과가 나옴을 보여주니 내 보스는 매우 기뻐했었고 나를 무슨 best achievement award에 추천해서 회사 내의 상과 상금도 받았다. 그 연구 결과는 내 학위논문의 한 챕터가 되었고 나중에 페이퍼로 다듬어서 통계학의 탑 저널인 JASA (Journal of the American Statistical Association)에 실리게 되었다.